세상 무심한 아들이 아빠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by 라트

조심조심 까치발로 걸어서 아들이 자고 있는 방 문 앞에 도달하였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게 문고리를 돌린다. 조용히 문을 열어 보니 아들은 침대에서 자고 있다. 아니 아직 자고 있는지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가서 아들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본다. 아들의 숨이 나의 손가락에 와닿는다. 아들이 자고 있다. 그럼 됐다. 조용히 다시 뒷걸음질을 쳐서 방을 나온다.


아들은 북한의 김정은도 두려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생이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아들은 요즈음 모든 일이 예민한 상태이다. 나와 아내는 하루하루 매 시간이 조심스럽다. 불면 꺼질세라 떨어지면 깨질세라. 아들의 마음에 어떠한 심한 상처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매사에 조심하고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다니 나와 아내가 조심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사실 아들의 성격은 밝고 쾌활하였다. 명절에 가족 모임이 있어서 친척들이 모두 모이면 앞에 나가서 커다란 목소리로 신나게 '떴다 떴다 비행기'를 목청껏 불러 대서 모든 가족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태어난 아들은 항상 신이 나 있었으며 좌충우돌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뛰어다니며 놀곤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고 밖에 나가 노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항상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며 누구와도 대화를 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사소한 이야기를 하려도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 해야만 했다.


아들의 성격이 바뀐 것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작은 교통사고가 난 후인 것으로 기억된다. 워낙에 활동적인 성격이어서 그날도 정신없이 뛰어 나가다가 아들 친구의 엄마가 운전하던 자동차에 치여서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하였다. 아들의 다리 골절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서 수술도 하지 않고 뼈가 잘 붙어서 퇴원을 하였지만 그 후로 아들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활달하던 성격은 소심해졌으며 항상 활기에 넘쳐 있던 생활도 바뀌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나태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많던 친구들과도 모두 헤어졌는지 친구를 만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아들과 식사를 하거나 함께 있을 때에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으나 아들은 전혀 듣고 있지 않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할 일만 끝나면 곧바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 게임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전혀 미동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에 무심코 검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검도를 배운 사람은 볼펜 하나만 가지고도 타인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너도 검도를 배워 볼래?'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들이 반응을 보였다.


검도! 그래 한 번 배워볼게.


전혀 기대하지 않고 했던 질문에 답변을 한 것도 신기하고 의외인데 아들의 대답이 긍정적으로 자신이 검도를 배워본다고 한다. 내 안에서는 커다란 놀라움이 있었지만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한 번 해 보라고 대답을 하고 당장 내일 검도 도장에 등록을 하러 가자고 했다. 아들은 다시 시큰둥하게 자신이 혼자서 등록하러 간다고 하면서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며칠이 지난 뒤에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없었다. 아내에게 아들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니 검도하러 도장에 갔다고 한다. 아들은 그 사이에 검도 도장에 등록을 마치고 오늘 처음으로 검도를 하러 간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아들이 들어왔는데 어제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굴에는 혈기가 돌고 있었고 동작에서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아들이 말을 했다.


다녀왔습니다.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아들의 목소리였는지 나는 놀라고 당황하여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아들의 생활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릴 때의 그 활기찼던 시절까지는 아니지만 검도를 시작하기 전보다 생활이 활기차 졌고 말 수도 늘어났다.


검도를 다니기 시작한 후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아들이 뜬금없이 이야기를 하였다.


나 과학고 가 볼까?


으응! 과학고? 그래 네가 가고 싶으면 한 번 가보지 뭐.


대답은 그렇게 하였지만 참으로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과학고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전문학원에 다니면서 선행학습을 하여 과학고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진도를 모두 마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들은 지금 중학교 2학년도 거의 마쳐가는 시점에 있었으며 과학고 입시를 위한 준비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아들이 무언가를 하려고 목표를 세운 것에 감동을 받아 무조건 해 보자고 했으며 그때부터 과학고 진학을 위한 정보를 찾아서 보기 시작하였다. 과학고 진학을 위해서는 현재 하고 있는 아파트 가정집에서 하고 있는 과외 정도로는 안 되고 시내 중심에 있는 학원 밀집지역에 있는 전문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과학고 입시 전문학원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았다. 전문학원에서는 아무나 학생을 받지 않고 테스트를 거쳐서 합격해야 다닐 수 있다고 하였다. 테스트를 받은 결과 아들이 다닐 만한 학급이 없어서 자신들의 학원에서는 받아 줄 수 없다면서 아들 정도 실력의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다른 학원을 소개해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은 소개받은 학원을 방문하여 수강 신청을 하였다. 학원비도 그동안 아파트 단지에서 공부하던 과외 수업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비쌌다. 전문학원 수업료는 우리 집의 한 달 생활비와 맞먹는 큰돈이었지만 아들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데에 무엇이 아까울쏘냐.


아들은 전문학원을 다니면서 수업이 어려워 고생은 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 다녔다. 그저 잘 다녔다. 잘 다녔다고 하여 수업을 잘 따라가고 다른 학원생들만큼의 실력을 갖추어 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 온 학생들과 이제 막 시작한 학생과의 실력은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하여 따라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준비한 아들은 과학고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였지만 아들의 합격은 사실이었다. 과학고 입시 준비를 1년도 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합격이 된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었다.


합격에 대한 기쁨도 잠시이고 이제 과학고에서 수업을 따라가야 했다. 이미 고등학교 2학년 과정까지 선행학습으로 끝내고 입학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했고 교사들도 이미 학생들이 기본 과정은 끝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고에 입학하자마자 받게 되는 수업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과학고들이 그렇듯이 아들이 입학한 과학고도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하루 24시간에서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시간을 빼고는 공부만을 하는 생활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육체 활동은 하였지만 이는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시간에 포함되는 정도의 활동이며 시간이었다.


학생들 간의 경쟁도 엄청나서 다른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고 있지만 과학고에서는 무리해서 공부하는 학생을 단속하는 상황이었다. 밤을 새우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정해진 시간이 되면 모두 점등을 하고 자고 있지 않는 학생들을 단속하러 다니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도 일부 학생들은 생리문제를 해결하러 간다는 핑계로 책을 싸 들고 화장실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하니 정말로 엄청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한 아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미 고등학교 2학년 과정까지 끝내고 들어온 다른 학생들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갔고 아들의 성격은 다시 중학교 2학년 때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는 듯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면 말이 없어졌고 다시 아들의 눈치를 보는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하여도 듣는지 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다시 아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과학고에서는 학부모 상담 시간이 있어서 학교를 방문하여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함과 동시에 아들이 공부하는 학습실을 방문하여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나와 아내도 처음으로 아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방문하여 학습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들은 수업 중이었으므로 우리는 아들이 평상시에 공부하는 학습실을 둘 만이 방문하게 되었다.


많은 책상들 중에서 아들의 책상을 어렵게 찾아갔다. 아들의 책상을 살펴보고 어지러워진 것들을 정리해 주는데 책상 앞 윗 쪽에 어디선가 본 듯한 문구 하나를 발견하였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순응하자.'


앗! 저 문구는 내가 아들에게 해 준 말이다.


아들이 내 말을 듣고 있었구나.


아빠가 이야기해도 전혀 듣지 않는 줄 알았던 세상 무심한 아들이 아빠의 말을 듣고 있었고 그 말을 글로 써서 책상에 붙여 놓고 자신이 공부하는 데에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구나.


자식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는 행위를 정성 들여하다 보면 콩나물이 튼실하게 자라는 것처럼 자식들도 건강하게 바르게 자라 가는 거였다. 그리고 모든 것은 순리에 따라 흘러가고 자라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들은 과학고 2학년에 조기 졸업하여 대학 입시에 합격하였으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 아니었으므로 3학년까지 정상으로 다니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대학을 마치고 자신의 모교 대학원 연구실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고 있다.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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