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번 여행에 대해 알리지 않을 수 없다.
거의 한 달 정도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야 오해나 불편을 피할 수 있고
미리 알리고 갈 정도의 친분이라는 걸 서로 확인하는 과정은 그 관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알림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일상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약하기 마련이고
그 일상을 훌훌 집어던지고 놀러 가는 나는
본의 아니게 자랑질, 혹은 염장질을 하게 될 위험이 있다. 자랑질이나 염장질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말하는 기술이 그래서 필요하다.
최측근들에게 여행을 알리며 첫마디는 이렇게 꺼냈다.
“한 달쯤 어디 가요.”
그리고는 이 여행이 얼마나 불가피한 선택인지에 대해 짧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하지만 더 늙기 전에 꼭 홀로 여행을 하고 싶어서요."
‘더 늙기 전에’라는 말 한마디가 비슷한 또래인 상대에게 깊고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믿는다!
예상했던 대로 상대의 반응도 짧고 절제된 언어로 돌아온다.
“잘 생각했어요, 축하해요!”
그 말속에 이런 생각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다.
(이미 혼자 여행을 하기엔 늦은 것 같은데... 고생깨나 하겠네. 에효...)
그래서 상대의 반응은 이런 말로 마무리된다
“어디 가든 꼭 사진이랑 톡 해 줘요."
(과연 무사한지 궁금해서 말이죠.)
"나도 여행을 좀 다닌 편이지만 내 돈 내고 가는 건 못하겠던데."
뭔 소리냐? 여행은 기본적으로 돈 쓰러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통역하러 다니면서 호텔이랑 식사랑, 다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만 다녀 버릇했더니만..."
상대의 반응을 접하고 나는 크게 웃으며 말한다.
"그건 이제까지 여행을 못 해 봤단 말이잖아."
그렇다. 여행은 갈까 말까 갈등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어디로 갈까, 뭘 타고 갈까, 어떻게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까, 가서 뭘 할까?
그러다가도 그냥 가지 말까,
숙소의 위치는 어디가 좋을까,
알아보고, 물어보고, 찾아보고, 고르고 설레고 걱정되고
그러면서 몇 날 며칠을 꾸역꾸역 하나씩 선택하고 결정하고
예약하고 취소하고 또 예약하는 것이
감히 말하건대, 스토리구조의 '기'와 '승'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 여행은 중간지점을 넘어 ‘전' '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여행의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는,
선물을 전달하고, 수다를 떨며 경험을 나누고 경비계산을 맞춰 보는 작업... 거기까지가 여행이다.
아! 아직까지 자기가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친구야
널 어째야 좋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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