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상황에 닥치는 거야말로 여행의 묘미라고
내가 내 입으로 목청높여 주장했지만
그 뜻밖의 상황 중에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은 게 바로 소매치기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내 앞에서
누군가 소지품을 가져갔다고 깨닫는 순간에 겪어야만 하는
분노와 짜증, 자책, 난감함, 한심함, 불편, 후회...
이 모든 불쾌한 감정들의 복합체는 정말이지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또 뒤져봤다.
인터넷의 세게에는 여행 중에 소매치기들을 실망시킬 수 있는 각종 요령과 비법들이
알고리즘의 섭리에 의해 줄줄이 사탕처럼 내 앞에 소개됐다.
정보를 쌓으면 쌓을수록 뭔가 자신감과 투지가 생성되었다.
흥! 내가 당할 줄 알아?
수고를 무릅쓰고 이 모든 정보와 경험을 영상으로 제공하는 분들께 감사가 치솟았다. 정말 이 시대의 고귀한 나눔정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내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아이템을 차곡차곡 저장한다.
지퍼로 잠글 수 있는 가방,
지퍼고리를 가방의 고리와 연결해서 이중으로 잠글 안전핀.
동전지갑과 휴대폰과 가방을 줄과 고리로 연결해서 크로스로 매야만 한다.
그리고 그 위에 큼지막하고 펑퍼짐한 외투를 입는다.
소매치기에 대항하는 나의 외관을 상상해 보니
모든 소유물을 소지하고 다니는 노숙인이 연상된다.
애써 귀엽게 봐 주면 짧은 다리로 직립한 곰돌이의 모습이랄까…
무장한 김에 소매치기들을 위해 조언을 남길까 한다.
이봐 소매치기들....요즘 수입이 어때? 신통치 않지?
정보가 다 샜어. 방법이 다 알려졌다고.
당신들의 표적인 우리들은 서로 연대하여 정보를 나누고 있다는 걸 몰랐나 봐?
요즘 세상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모른다고?
자기 영역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는 한, 도태되는 건 뻔한 이치야.
곧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후기>
유럽에선 멋부리고 다녀야 한다면서?
그것이 예의이고 그래야만 무시도 안 당한다면서?
곰돌이는 안 되겠니?
펑퍼짐하면서도 옷태가 나는, 그런 외투를 구입하기 위해 또 쇼핑을 해야 하나?
여러가지를 궁리한 끝에 찾아낸 착장의 절충안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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