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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Jun 20. 2024

8. 오늘이 그날

줄을 설까? 말까?

출발 날짜를 오늘로 잡은 것은 꼭 투표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날.

사전투표를 꼭 하고 가기로 마음먹었으므로, 공항에는 한 시간 정도 더 일찍 나간다.

다행히 수속도 오래걸리지 않고 끝났다.

공항에서의 사전투표, 좋은 경험이고, 좋은 이야깃거리다. 꼭 인증샷 찍어야지

그런데 대체 투표소가 어디야?


이리저리 두리번거린 끝에 한층 위에 있다는 투표소에 도착했는데...     

와아, 이렇게 줄이 길 줄이야

지역 불문, 두 줄로 통합된 유권자들의 줄이 상상 이상으로 길다. (혹은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아! 두 줄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다들 탑승시간이 촉박할 텐데


우선 불만부터 터져 나온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투표할 사람들이 늘어나서 줄은 점점 더 길어진다.

이럴 때가 아니지, 우선 선다.


빨간 조끼를 맞춰입은 아줌마 팀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서히 올라왔다가 이 줄을 보고 놀라서 그냥 뒤돌아간다.     

내 앞으로 몇 명이나 될까? 30명? 아니 50명은 될 것 같은데....

어떡하지? 비행기 타러 뛰어가기는 정말 싫은데....

포기할까? 아, 하지만 개표 결과를 보며 후회하는 것도 만만찮게 싫은데.....  


   

그때 익숙한 복장의 비행기 승무원 몇몇이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온다.

그렇지, 승무원들도 투표를 하고 비행기에 올라야 하니까, 아마도 그들을 위한 투표 줄이 따로 있을 거야.

하지만 승무원들은 머뭇거림 없이 이 긴 줄의 끝에 가서 선다. 나보다도 뒤다.

앗! 승무원들도 똑같이 줄을 선다.

그러고 보니 내 앞에도 승무원 복장이 눈에 띈다. 아까는 왜 못 봤지?

  

승무원 중 한 명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그대로 순서를 지킨다.

이럴 때 참 생뚱맞게도 코끝이 시큰하다.

국민으로서든 직업인으로서든 자기 역할에 충실한 작은 영웅들이여! (오바다 오바!)

그 엉뚱한 감동으로 나는 줄을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사실, 줄은 예상 외로 빨리 줄어들어 어느 덧 내 앞의 줄보다 내 뒤의 줄이 훨씬 길어져있다.      

투표는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질서정연, 능수능란, 척척진행....

늘어선 줄을 보며 가졌던 걱정과 갈등이 무색하게

투표를 마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공항 안을 빈둥빈둥 돌아다니다가

넉넉하게 비행기에 오른다.       


오늘도 좋은 결정을 한 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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