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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Dec 10. 2023

수액 처음 맞은 아이.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정말 아프다.


토요일 아침 아이는 열무김치 대를 가위로 총총 잘라 참기름과 함께 밥에 비벼 먹었다. 푹 익어 시큼한 열무김치를 좋아한다. 오전 일찍 부지런히 준비한 우리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떠났다. 아이가 차 타는 것보다 전철과 버스로 이동하는 걸 좋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요즘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정도를 제외하곤 내 손을 안 잡으려 한다. 아니면 본인이 피곤할 때는 끊임없이 안아달라 한다. 중간이 없다. 에스컬레이터도 혼자 올라타려고 해 아내와 나는 바짝 긴장한다. 때로는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도 본인이 찍고 싶어 한다. 스스로 해보고 싶은 게 점점 늘고 있어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당이 안될 때도 있다.


전철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손잡이를 잡고 싶어 한다. 당연히도 키가 너무 작아 스스로 잡을 수 없으니 어쩌겠나. 아이가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게 안아 올렸다. 흔들리는 7호선 전철 안에서 엉거주춤 서서 중심을 잡으며 몇 정거장을 가다 겨우 아이를 설득하여 손을 놓게 하였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앉았다. 나는 한숨을 돌렸다.


여행용 휴지도 하나 살 겸 대공원 역사 내 편의점에서 새우깡과 뻥이요를 샀다. 새우깡은 아이가 골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도로는 연하게 젖어 있었다. 겨울답지 않은 따스한 날씨에 봄비 같은 엷은 비가 내렸다. 몸이 곱아들 정도로 춥지 않아 좋았다. 아이와 밖을 나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새우깡을 번갈아가며 아이 하나, 아내 하나, 나 하나 입에 넣으며 정문으로 향했다. 아이는 맛있는 까까도 먹고 외출도 하고 즐거운지 신나게 걸었다. 핑크퐁과 아기상어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놀이터도 구경하고 동물원에서 코끼리, 사자, 원숭이, 알파카, 당나귀, 미어캣, 사막여우 등등도 보았다. 걷는 내내 줄기차게 새우깡을 하나씩 하나씩 먹었다. 아마 오전 내내 아이는 8,000 걸음은 걸었을 것이다.


핑크퐁과 아기상어 동상 앞에서 포즈를 잡는다.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느릿느릿 뻗대어 내가 좀 짜증이 났지만-수양이 많이 필요하다, 반성한다-, 아이는 평소보다 훠얼씬 착하게 있었다. 오랜 시간 걷다 집에 돌아와 우리 모두는 뻗어버렸다. 새우깡과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아이는 점심을 걸렀다. 아내가 저녁으로 돼지 뒷다리살을 총총 썰어 바삭하게 구웠다. 과자같이 맛있어 아이도 좋아했다. 장모님께서 담그신 총각김치를 물에 씻어 먹기 좋게 잘게 잘랐다. 점심을 건너뛴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 평소와 같이 치카치카, 워워퉤, 샤워를 마치고 아이는 금방 잠에 들었다.


학교 일을 좀 하고 빈둥대니 대략 일요일 오전 1시였다. 아내는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이가 깼다. 가끔 있는 평범한 일이었다. 아내는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며 잘 준비를 하고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아이와 나는 화장실 앞에 누워 아내를 기다리며 장난을 쳤다. 아이는 큰방에서 다 같이 자자 하였다. 잘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다 같이 큰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침대에 눕고 아내와 아이는 범퍼침대에 누웠다.


캄캄한 방에서 아이는 잠이 안 오는지 한숨을 쉬고 뒤척였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억지로 침을 뱉는 듯한. 어? 나는 번개같이 일어나 불을 켰다. 아이는 바로 누운 채로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는 손으로 바가지를 모아 아이의 토사물을 받았고 나는 혹시나 아이의 기도가 막힐까 안아 일으켜 세웠다. 하얀 거품은 아이가 저녁에 먹은 흰 밥이었다. 먹은 것을 거진 다 토해낸 듯했다. 아이의 잠옷 윗도리와 내 잠옷 어깨 부분, 범퍼침대의 일부와 바닥은 토사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이의 구역질이 거의 끝날 때 우리는 급하게 아이의 옷을 벗기고 샤워를 준비했다. 아내도 나도 적지 않게 놀랐겠지만 아마 아이 본인이 제일 놀라지 않았을까.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는 바닥을 닦고 아이와 내 옷, 침대의 이불을 싱크대에서 적당히 빨았다. 한 소동이 끝나고 진정이 된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는 다시 구토를 했다. 이미 저녁에 먹은 음식들을 많이 게워 내어서인지 밥풀 일부와 하얀 거품이 섞인 투명한 위액이 나왔다. 침대 위 이불과 시트도 닦고 베란다 건조대에 걸었다.


아이 스스로 아는가 보다. 본인이 토하면 이불과 옷을 치워야 한다는 걸. 거실 매트로 가서 자자고 하였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아이는 몇 번을 더 토했다. 때로 투명한 액체가 나오기도 하고 연한 노란 액체도 나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쓸개에서 나오는 소화액이 나오는 거라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였다. 장염기가 의심되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무엇을 먹었는지 되돌아보았지만, 우리가 전문의도 아니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새벽이 밝아오고 일요일에 진료를 보는 근처 소아과가 문을 여는 시간이 될 때까지 아이는 10번을 넘게 토하였다. 상당히 일찍 출발했지만 일요일 소아과는 붐볐다. 대략 30분을 넘게 기다리고 나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의 배를 지그시 누르던 선생님이 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리셨다. 최근에 또 노로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고. 진이 빠진 아이는 수액을 맞아야 한다 하셨다. 접종을 하거나 코로나 검사로 코를 쑤신 적은 있었지만 긴 시간 수액을 맞아본 적 없는데. 아이는 ‘주사’라는 단어를 캐치했는지,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 수액실에 들어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아이의 손목을 잡고 간호사가 오른손 손등에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았다. 으. 아이는 다행히 세게 울지는 않았다. 주사 바늘 뒤쪽으로 아이의 피가 살짝 고였다. 가슴 한편이 아렸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수액이 들어가지 않는단다. 오른손의 바늘을 빼고 솜과 테이프를 붙였다. 간호사는 다시 왼손 손등에 혈관을 찾았다. 바늘이 들어갈 때 아이는 잠깐 칭얼거렸지만 다행히 금방 멈췄다. 수액도 잘 들어갔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내와 아이는 침대에 누워 뽀로로와 타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 수액주사가 꽂힌 왼손을 주의하라 아이에게 설명하니 아이는 되도록 왼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기특하고 고맙고 미안했다.


벽에 걸린 티브이에서 하는 타요를 집중해서 보고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기억이 있다. 저녁때 좋아하던 양념통닭을 미친 듯이 먹었던 나는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배탈이 났다. 빨간색의 작고 둥근 쓰레기통도 기억난다. 밤새 어머니 아버지께서 그 빨간 쓰레기통으로 내가 토하거나 설사하는 것을 받아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셨다.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졸린 눈으로 나를 뒤치다꺼리해주셨던 부모님의 표정은 흐릿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계속 씻어서 물기 가득한 그 쓰레기통도.


이제 곧 수액이 끝나간다. 아이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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