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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Jul 02. 2024

매일 지각하더라도 틀린 인생이 아니라고?

근면함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3 스페인에서 온 마티아


매일 수업에 늦는 친구가 있었다.

 

유머가 넘치는 유쾌한 선생님도 가끔은 화를 낼 정도로 그 친구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늦었다. 조금 늦는 것이 아니라 기본 1시간부터 2~3시간을 늦기도 했다. 도대체 아침에 뭘 하길래 이렇게 맨날 늦는 거지? 비싼 돈을 들여 수업을 들으면서 아깝지도 않나? 아직 좀 철없는 스무 살 같네. 그의 불성실한 출결에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그 사람 자체가 삶을 제대로 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던 것 같다. 아직 중요한 걸 모르는 어린 친구가 이 귀한 수업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는 매일 수업에 늦었을지라도, 매번 교실의 모든 친구들에게 여유롭게 인사했다. 한창 수업이 진행되던 와중에라도 밝은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퍽 인상적이고 신기했다. 어떻게 지각을 해도 저렇게 밝게 들어올 수 있을까. 일 때문인지 수업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할 때에도 그 친구는 항상 밝게 인사했다. 수업의 맥을 끊는다며 싫어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고,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밝은 인사에 ‘어떻게 그리 떳떳할 수 있는지’라는 질문이 매번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천천히,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눈치 없게도 밝은 얼굴의 인사에 설명할 수 없이 좋은 에너지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가 아침 인사를 할 때면 오늘도 만나서 반갑다는 진심과 학교에 온 자신에 대한 기쁜 마음이 함께 뿜어져 나왔다. 여유롭게 챙겨 온 커피를 한 손에 든 그가 교실에 들어올 때면 왠지 모르게 그 환하고 여유로운 기운이 반가웠다.


그런 그는 수업에 늦었지만 적어도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추가로 주어지는 선택과제를 마다한 적이 없다. 때로는 영어 공부에 열정이 넘친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SNS에서는 건강에 좋지만 번거로운 음식들을 챙겨 먹고, 운동하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는 매일 일을 하러 가는 듯했고 그 틈틈이 서핑을 하러 가기도 하더라. 이 모든 것들은 천천히 나의 고정관념을 흐리게 만들었다.


매일 지각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 봐도 좋지 않지만,


그의 삶 안에서는 나름의 균형과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학교에서 좋은 학생은 아닐지라도 나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상 안에서 지각은 이유를 불문한 대표적 불성실함이었고 그 근면의 척도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정도와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지각을 매일 밥 먹듯이 한다면, 스스로의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로 곧장 해석해 왔다.

그는 나의 이러한 생각에 들어맞지 않는 변수였다. 학교에는 지각할지라도, 그의 삶이 충분히 의미 있고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충만해 보인다는 것이 참 이상하지 않은가?


 여전히 근면에 대한 그 기준은 나에게 유효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설명해주지 않으며 언제나 당연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작은 확장이 조금 일어난 것 같다. 이런 삶도 있다는 것. 나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나름 스스로에게 멋진 삶일 수 있다는 것.


지각이 곧 그 사람 삶 자체를 판단해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아니라는 것.



*이 글의 주인공들은 본명일 수도 가명일 수도 있으며,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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