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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Jun 25. 2024

나와의 안녕에 울어주는 사람

그녀의 눈물에 담긴 아쉬움이 무색하게도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2 일본에서 온 나나


유난히 마른 체구에 커다란 귀걸이를 한 중년 여성을 어학원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얼굴 곳곳의 작은 주름을 가릴 정도로 크고 맑게 빛나는 눈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다른 반에 새로 온 학생이겠거니. 그렇게 지나치나 싶었는데, 항상 나와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와 이미 안면을 튼 사이라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반짝이는 주얼리가 아니라서 더 돋보이는 커다란 귀걸이가 예쁘다며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줍은 미소로 고맙다고 답하는 그녀가 참 귀여웠다. 아직은 부족한 영어로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줄곳 우리의 대화를 호기심 가득 채운 눈으로 끄덕이며 들었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두세 번 함께하며 알게 된 그녀의 간략한 사연은 이러했다.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왔으며, 스무 살이 넘은 딸이 있고, 어학연수를 떠나온 엄마에게 일본 과자를 보내올 정도로 딸과 다정한 사이라는 것. 인절미와 김 사이 어느 구수한 맛의 과자를 좋아한다는 것. 


누군가 나를 향해 울어준다는 그 영광스러운 감동으로


아쉽게도 언어의 장벽과 시간적 제약으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몇 주가 더 지나 내가 어학원을 마치는 날이 다가왔다. 따로 연락해서 만날 정도로 친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괜히 더 마음이 가는 애매한 사이인 그녀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가 놀란 눈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너무 놀라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향해 울어준다는 그 영광스러운 감동으로 한동안을 그렇게 있었다. 단지 두세 번 함께 점심을 먹었을 뿐인 딸뻘 친구에게 이렇게 마음을 담아준다니,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함부로 가늠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다시 꼭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지만, 인생에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안녕이라는 것을 그녀는 그 세월 속에서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영광스러운 감동을 이렇게나마 제멋대로 해석해 보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딸을 키우고, 직장생활을 해온다는 것은 그저 제자리에 머무르려 해도 애씀의 연속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이 모나게 무뎌지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이렇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의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이 참 애틋해지더라.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을 하고 싶어. 너에겐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는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일 거라 믿어
'리틀 포레스트'에서

리틀 포레스트에서 문소리가 연기한 '혜원의 엄마'가 떠올랐다. 


적지 않은 나이에 충분히 자리 잡아온 직장을 그만두고 낯선 땅, 새로운 공부, 온통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의 시간을 결심한 그녀는 당연하게도 어딘가 심지 단단한 사람일 것이다. 결코 쉽지 않았을 도전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꿈꿔왔을 테고, 이곳에 오는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결심이 필요했겠지. 결심의 무게가 분명 가볍지는 않았으리라는 짐작에 그녀가 더욱 빛나보였다. 


무게만큼 그녀의 인생에서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그녀의 눈물에 담긴 아쉬움이 무색하게도 우리가 언젠가 정말로 다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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