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4 Getaria
45000보를 걷고 아주 지쳐버린 저녁. 매일매일 산 하나를 오르는 산티아고 북쪽길의 첫날이었다.
18, 20Km 지점에 예쁜 마을들을 두고 굳이 한 마을 더 가서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었을 때보다 왠지 더 지치는 건 피로누적 때문일거라 위로해본다.
북쪽길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산세바스티안은 예쁜 관광도시였다. 너무 핫하다 못해 열악한 컨디션의 호스텔 도미토리가 50유로에 육박할 정도였다. 높은 물가에 놀란 마음을 잠재우며 스페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핀초도 먹으며 저녁을 보냈다.
느지막히 출발해서 걷는 길 동안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지만 바다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목표에 알맞은 풍경이었다.
내내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이 떠오르는 멋진 풍경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계속 걸으며 절벽을 넘고 바닷길도 걷고 작은 산들도 넘었다. 생각한 것보다 북쪽길은 훨씬 어려웠다. 체력에는 나름 자신이 있던 나였기에 부엔까미노 앱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고도 차이를 우습게 봤던 것 같다는 반성아닌 반성을 하며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상태에서 걷다보니 사람의 생각이 단순해졌다. 무엇보다 길을 걸으며 보이는 평화 속의 소들이 정말 부러웠다. 그저 저 모습처럼 나도 벌러덩 누워버리고 싶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웃겨서 다시 웃었다.
북쪽길 풍경은 정말 예뻤다. 기대했던 멋진 바다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반복되는 산길에 풍성한 숲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나의 상태가 그 풍경들을 온전히 예쁘게 바라봐주며 즐길 수 없었을 뿐이다.
오늘의 목적지보다 조금 가까운 마을 짜라우츠를 지나며 급하게 아이스크림을 수혈하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길을 걸었다. 바다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여유로운 분위기에 힘들다는 생각만 반복하는 나의 머릿속에 못내 서운했다.
힘든 와중에도 바다를 즐기고 있는 10대들을 보는 것은 여전히 부럽고 멋진 일이었다. 한국에서 정말 보기 힘든 풍경이기에 해외를 다니며 여러번 목격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목표한 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오전 9시에 길을 나섰으니, 총 8시간을 걸은 셈이었다.
북쪽길의 난이도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수도없이 들었고, 그저 나의 흥미를 위해 강행한 결정이었다. 하루 종일 순례길을 왜 왔는지, 왜 북쪽길로 마음을 바꾸었는지, 이 길은 언제쯤 익숙해질지 하는 여러 생각들을 반복했다.
덕분에 한편으로는 제주도 자전거종주를 할 때 힘들어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 나는 정말 한계를 계속 건드리며 길을 걸었다.
도착 시간이 늦어진 만큼, 슈퍼에서 야무지게 저녁 거리를 사들고 알베르게로 갔다. 피곤은 하지만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시드라도 시도해봤다. 신맛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것 또한 그저 귀한 문화 체험이었다.
그렇게 아주 피곤한 몸에 약간의 알코올까지 들어가니, 온 몸이 저릿저릿한 듯 이른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