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6 Deba
6시에 일어날 예정이었지만 늦잠을 자버린 오늘 아침. 덕분에 아침을 먹으며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은 언제나 제각기 매력이 있다. 이런 곳에는 살아봐도 괜찮겠다 하는 곳들을 종종 마주친다. 작은 마을들이 참 예쁘게, 그리고 잘 살아있는 것 같아서 종종 부럽다. 한국은 젊은이들이 사라진 지방 마을이 많은데, 이곳은 각자 제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 보인다.
오늘도 등산의 연속이었다. 내가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요즘 더 확실히
느끼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왜 이 길을 왔을까 생각했다. 사서 고생이라지만 너무 ‘굳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말이다.
이렇게 절벽이 펼쳐지는 길을 많이 걸었다. 오르막을 걷는 그 한걸음 한걸음에 힘들어서 이런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평탄하다는 프랑스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또 반복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매번 힘이 들면 다른 길을 탐내왔던 것은 아닐까. 분명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내가 선택한 결과로 나의 길을 걸어왔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힘이 들 때마다 나는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야겠다고 말이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도 마찬가지 아닌가. 프랑스길에서 보니 해안가의 북쪽길이 탐났고, 막상 또 이곳에 와보니 평탄한 그곳이 부러운 것이다. 선택을 한 뒤에 나의 결심을 믿고 뒤돌아보지 않는 것. 나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내 앞에 펼쳐질 길을 보고, 그곳에서 좋은 점을 찾고, 노력하는 것.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아니 꼭 북쪽길을 끝까지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결심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장담은 못하지만, 지금의 이 의미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길을 계속 걷다가 너무 힘이 들면, 그 안에서 덜 힘든 길을 택해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설령 결국 프랑스길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 전까지는 다른 길을 너무 섣불리 쳐다보지 말자. 해볼 때까지 해보고, 더 이상의 미련이 아주 남지 않았을 때 고민해도 늦지 않다.
갤로퍼와 복숭아.
이곳에서 다양한 차들이 참 많은데, 반가운 갤로퍼를 발견했다.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 한국의 옛날차를 발견하는 것이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이곳의 사람들에게 갈아치워 바꿔야할 대상이 아닌 듯 하다. 그저 더 갈고 닦아 아껴가는 그 문화가 나쁘지 않아보였다.
복숭아는 기회가 될 때마다 사 먹고 있다. 그 명성에 비해 평범한 납작 복숭아는 맛에 비해 귀여움이 독보적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이기에 언제인가부터 신화처럼 '차원이 다른 맛의 납작복숭아'라는 소문이 퍼졌던 것 같다. 맛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보다 평범한 맛의 납작복숭아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하면서 유럽에 대한 선망의 이미지가 담고 있는 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동네 정육점에서 하몽과 라콘을 사 먹었다. 국물 없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보상받는 것 같은 사치이다. 바닷가 앞 벤치에 자리를 펼쳤다. 햇살은 적당했고 해변은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자유로워보였다. 각종 햄들과 바케트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나서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온통 땀에 젖은 옷으로 바다에 들어가니 춥지도 덥지도 않은 여름의 시원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물결에 몸을 맡기고 한동안 미역이 된 것 마냥 몸을 띄웠다. 햇살이 참 맑았고, 행복한 수영이였다.
저녁으로는 타파스를 몇 개 먹다가, 파에야를 먹고 싶어 온 동네를 뒤졌는데 겨우 찾은 곳의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게다가 8시가 넘은 시각에도 타파스와 주류 말고는 아직 주방을 오픈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어서 마땅히 먹을 것도 없었다. 음식점은 대부분 동일한 바 형태의 곳들 뿐이었다. 스페인의 느긋한 식문화는 우리랑 정말 크게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던 하루였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지만 식당들은 모두 비슷한 형태로 맥주, 타파스, 그리고 아주 늦은 저녁을 판매하고 있었고 음식의 종류도 거의 비슷했다. 메뉴별로 시간대별로 다양화되어 있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스페인 사람이 한국에 놀러 오면, 천지가 개벽할 그런 차이였다. 내내 호주에서 만난 나의 스페인 친구에게 한국의 식당들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