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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Sep 25. 2022

퇴사 준비: 신발 세 켤레

세 켤레면 충분하길. 

'왜?'라고 묻는다면, 모른다 하겠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먼 길을 떠날 때면 그 어떤 것보다 '신발'을 먼저 챙기게 되더라고요. 저에게 신발은 특별한 의미가 있나 봅니다. 2011년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때에도, 튼튼한 트레킹화 1켤레, 그리고 나이키 에어 1켤레를 샀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퇴사를 앞두고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신발 세 켤레입니다. 트레킹화 1켤레, 어두운 색과 밝은 색 러닝화 각 1켤레. 신발을 구비하고 나니 든든하네요. 안심하고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발에 대한 애착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저와 신발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다 2021년의 경주 여행이 떠올랐어요. 천마총에 갔었는데요,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황금 신발이었습니다. 망자가 누워있는 발 쪽으로 정교하게 만든 황금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지요. 황천길을 가는 망자의 부장품 중 하나가 신발이었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고분(古墳)에서는 신발이 종종 발굴되죠. 저승길에 필수품인 신발. 그리고 또 어린 시절에 봤던 사극이 떠올랐어요. 항상 봇짐 밑으로 여분의 짚신 2~3켤레가 보였었지요. 그러고 보니 어디든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이들에게 신발은 필수품이었네요. 멈춤 없이 가야 한다면 미리 챙겨야 하는 필수 아이템.        


2021년, 경주 천마총 내부

신발이 닳도록 걸었습니다. 나이키 에어가 닳으니 걸을 때마다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소리가 크지 않지만 참 신경 쓰이더라고요. 저는 그 이후로 에어 모델을 사지 않습니다. 신발이 닳도록 걷고 또 걸었습니다. 캠퍼스가 넓어서 그랬기도 하지만, 제 감정을 다스리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걸었어요. 나를 갉아먹는 생각이 한없이 나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때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걸었습니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렇게 걸으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소진해요. 빈 공간에는, 소망의 긍정 에너지가 다시 차오릅니다. 그러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다시 생깁니다.


제가 퇴사하면서 신발을 무려 세 켤레나 구매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단순합니다. 순간순간 나를 공격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무기력을, 긍정 에너지, 소망 에너지로 바꾸고 싶어서인 것입니다. 세 켤레를 번갈아 신으면 닳는데 시간이 꽤 걸리겠죠? 근시일 안에 '내 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잡는다면 다행이겠지만 행여나 좀 더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님의 '낙화' 중에서 -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첫 발걸음을 뗀 나를 응원합니다.

지치지 않기를, 완주하기를 기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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