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헛발질과 이불킥을.
2025년 4월 5일 토요일 오후 6시. 나는 경기도 어느 지역의 한 모임 장소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들 앞에 어색하게 서 있을 것 같다. 그들보다 약간 일찍 태어나 좀 더 길게 살아봤다는 이유로, 또 그 자리를 마련한 이와 오랜 세월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나보다 늦게 태어난 이들과 진로와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 초대받은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준비할 시간은 꽤 길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강의 준비 때처럼 장면을 떠올려봤다. 보통 강의를 준비할 때 장면을 떠올리고, 청중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흐름이 잡혔기 때문이다. 첫 대면에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입을 열 때의 첫 단어는 무엇으로 할지, 어떤 메시지를 강조할지, 흐름의 속도와 강약을 어떻게 할지 대략 떠오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당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 어쩌나... 이제 2일 남았다.
특강 날이 다가오니 초조해진다. 1시간 무보수 특강이라고 대충 할 수는 없는데, 내 소듕한 지인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는데.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 작곡가의 마음, 글 한 줄도 써지지 않는 작가의 마음이 딱 이렇겠거니. 이럴 줄 알았다면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거절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수락했을까? 강사료는 없고 밥 한 끼로 '떙'이라 했다. 통장이 텅장인 시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분명 뭔가 나를 끄는 것이 있었을 텐데. 나는 도대체 2030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발등에 불이 떨어져 오늘은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온 힘을 다해 집중해 봤다. 역시 닥쳐서 해야 뭐가 나오다 보다. 이야기의 큰 줄기가 잡혔다. 이제 열심히 미래를 향해 달려갈 이들에게 나는 이것을 말해줘야겠다.
애매하지만, 애정합니다.
애매하다. 뭐 하나 뾰족한 것이 없다. 20대에는 방황도 하고, 첫 직장은 소위 말해 '변변한 직장'이 아니라 이직할 때 경력 산정도 안 된다. 이직도 자주 했다. 한 곳에 적어도 오래 머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대들이 보기에 전~~ 혀 경력이라 할 수 없다. 박사 학위를 소지했지만 연구와 논문 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며 최근 5년 이내에 새롭게 시작한 일들에 모든 자원을 다 쏟아붓고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재정적으로도 형편없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는 더욱 재정적으로 불안정하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애매하다. 겉보기에는 있어빌리티가 높아 보일 까냐만, 실속은 없다.
실속 없이 애매하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헛발질, 때로는 우매함과 미숙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내 발자취를 애정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다행스러운 것은 내 경력을 애매하게 만드는 호기심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내 삶의 큰 동력이라는 것이다. 그 힘 덕분에 4월 5일 특강도 수락했고, 또 계속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애매함은 '나 다움'이고, 이런 고유함은 내 약점이면서 동시에 내 강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헛발질과 이불킥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 같다.
어떤 진로가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인지, 이 길인지 또는 저 길인지 누군가 확실하게 알려주면 참 좋겠는데, 그러면 낭비 없이 살겠는데, 실수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정진할 텐데. 그런데 삶에는 정답이 없고, 확실한 것이 없고, 계획대로 가지 않고, 또 예측 가능성도 낮다. 오늘 최선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내일은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삶에서 중요한 진로 결정과 직업 선택에 주저하거나 망설이고 염려와 걱정, 불안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애매하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나는 모든 결정과 그에 따른 경험에 최선을 다했다. 내 모든 것을 쏟았다. 그래서 애정한다. 돌아보면 가장 나다움을 잘 담아낸 애매한 흔적들. 지금까지는 명확하지 않고 뾰족하지 않았던 애매한 것들이 언젠가는 뾰족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것에 흥미를 갖고 새로운 애매함을 만들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더 나이가 많아져도, 더 애매함이 더해져도 나의 고백은 여전할 것이다. 애매하지만,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