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의 거인 페예노르트를 찾아가다 ②
왠지 모르게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숨이 탁 막혀 온다. 뭔가 사전 지식을 쌓아두지 않으면 막상 찾아가더라도 까막눈이 되어버릴 것 같은 장소라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그뿐인가? 마치 장례식장처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시물을 천천히 구경해야 하는 분위기에 왠지 모르게 짓눌린다. 갑갑하고, 답답한 데다, 준비가 없으면 막막한 그런 장소, 그래서 재미가 없다는 선입견이 가득한 곳, 바로 박물관이다. 축구 박물관도 박물관의 일종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성과를 냈으며 지금 보시는 이 트로피가 바로 그때 따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트로피가 우리에게는 이만큼이나 있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듯한 이미지다. 막상 틀린 말도 아닌 게, 한국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축구 박물관의 전시 방식이 그렇다. 물론 우승이나, 당시 유명했던 선수들을 소개하는 건 의미가 있다. 그 우승이, 그 선수들의 노력이 바로 히스토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스토리의 나열은 솔직히 재미없다. 우리는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더라도 앉은자리에서 문자화된 히스토리 정도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히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 히스토리를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하는 건 스토리다.
네덜란드 명문 클럽 페예노르트의 박물관을 방문하고 나서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페예노르트 박물관 역시 네덜란드 프로축구 리그인 에레디비시에나 유럽 클럽대항전 우승 트로피가 주된 콘텐츠이긴 하다. 이 우승컵만큼 명문임을 증명하는 건 세상에 없다. 선수들의 흔적도 살필 수 있다. 페예노르트 1군 팀에서 활약했던 단 두 명의 한국 선수 송종국과 이천수의 흔적도 체계적으로 정리된 페예노르트의 전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큐레이터는 “이천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송종국은 정말 잘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페예노르트 박물관이 독특했다고 기억에 남은 이유가 따로 있다.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지도 못한 전시물 때문이다. 조류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박제된 갈매기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서다. 네덜란드의 부산 같은 위상을 지닌 항구도시 로테르담의 연고 도시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그런 단순한 이유로 박물관 한 구석을 차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간 낭비일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방긋 웃는 듯한 포즈를 취한 이 갈매기는 사실 비운의 주인공이다. 어디선가 한국에서 길 가던 사람 한 명이 번개에 맞아 감전될 확률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0.0002%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갈매기는 이와 비슷한 확률로 목숨을 잃었다. 늘 그랬듯 바다 근처를 날아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인간들의 놀이터인 축구장을 찾았다가 그런 화를 당했다.
사연은 이렇다. 1970년 11월 15일, 드 쿠이프에서 페예노르트와 스파르타의 로테르담 더비가 스파르타의 안방 스타디온 스팡겐에서 열렸다. 1-1로 무승부로 끝난 이 경기의 주인공은 이상하게도 선수들이 아니라 바로 갈매기였다. 이 갈매기는 아마도 생전에 즐겨 찾았을 스타디온 스팡겐 상공을 날아다니다, 페예노르트 골키퍼였던 에디 트레이텔의 골킥에 격추되어 잔디로 추락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황당한 일화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굉장히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페예노르트 박물관은 당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놓았는데, 제목이 이렇다.
“에디 트레이텔, 비행하던 갈매기를 맞추다(Eddie treytel schiet meeuwinde vlucht dood).”
이 갈매기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괜한 소유권 논쟁까지 만들었다. 페예노르트는 경기 중 잽싸게 죽은 갈매기를 가져와 자신들의 박물관에 전시했다. 스파르타의 안방에서 사는 갈매기가 페예노르트 선수가 찬 볼에 맞아 죽은 것을 두고, 지역 라이벌과 경쟁 관계에서 자신들이 우위에 서고 있음을 상징하는 길조라 여겼다. 페예노르트 박물관에 전시한 이유다.
반면 스파르타 팬들은 5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일을 두고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아마도 적진에 묻힌 아군의 유해 송환을 바라는 마음이지 싶다. 이 갈매기가 자신들의 홈에서 살았고, 죽은 곳도 스타디온 스팡겐이니 당연히 갈매기를 자신들의 박물관에 모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사연 때문에 페예노르트와 스파르타의 라이벌 관계를 일각에서는 ‘더 데드 시걸 더비(The Dead Seagull Derb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에레디비시에의 대표적 더비 중 하나인 로테르담 더비에 이야깃거리를 불어넣은 셈이다. 단순히 로테르담의 진정한 주인을 가리자는 식으로 재미없게 흐를 수 있는 로테르담 더비를 이처럼 맛깔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랍고 흥미진진했다. 이게 바로 시시콜콜한 스토리가 만든 재미다.
축구 박물관을 논하다 난데없는 갈매기 타령을 했으니, 끝까지 갈매기 이야기로 끝을 맺으려 한다. 46년 후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A리그 경기에서도 축구장에 나타난 갈매기가 화제가 됐었다. 겁도 없이 필드에 내려앉은 갈매기가 하필 강하게 굴러온 볼에 맞아 부상을 당한 것이다. 당시 시드니 FC 골키퍼 다니엘 부코비치가 동료들에게 경기를 중단하자고 호소한 후, 다친 갈매기를 필드 밖으로 안전하게 탈출시켰다. 의료진(?)의 적절한 대처 덕에 이 갈매기는 금세 건강을 되찾아 경기장 관리 요원과 함께 인간들의 놀이를 즐겼다는 후문이다. 난데없이 축구공에 맞아 죽어 저승을 떠돌고 있을 로테르담의 갈매기는 무척이나 부러워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