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요한 크루이프 루트 ③
네덜란드 축구 명문 아약스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 속 전쟁영웅인 아이아스에서 유래됐다.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와 진검승부를 벌여 승리까지 거뒀었던 아이아스를 클럽의 이미지에 투영해 최강팀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투영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일리아드 속의 아이아스가 도리어 아약스에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신화 속 아이아스는 이인자였지만, 아약스는 왕년의 유럽 일인자 그리고 100년이 넘는 네덜란드 프로축구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흠모할 대상을 아득히 넘어선 클럽, 바로 아약스다.
이 아약스의 터전은 바로 암스테르담 아레나‘였다’. 굳이 과거형을 강조한 이유는, 1996년 개장한 이 스타디움의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 2016년 3월 아약스의 슈퍼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가 폐암으로 타계하면서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정확히는 1년 후인 2017년 크루이프의 이름이 헌정됐다. 안타까운 사망을 기리기 위함이 아닌, 크루이프 탄생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가 네덜란드 최고의 축구 경기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전의 크루이프와 직접적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은 곳이다. 크루이프의 모든 아약스 커리어는 요한 크루이프 루트 ①에 소개한 드 메어에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가 요한 크루이프 루트에 포함된 건 이유가 있다. 네덜란드 축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이 경기장에 가장 걸맞은 네덜란드 축구인이 크루이프 이외에 누가 있겠는가? 아약스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유럽 최정상권에 위치시킨 ‘슈퍼 레전드’에게 스타디움의 이름 정도 헌액 하는 예우는 외려 모자라는 느낌마저 준다.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이 경기장은 온통 크루이프의 얼굴로 도배를 해놓았다. 경기장 외곽 4면에 크루이프의 대형 얼굴이 들어간 통천이 걸려 있다. 뿐만 아니다. 갓 데뷔했을 때, 전성기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다 말년에 다시 돌아왔을 때의 경기 모습, 그리고 아약스의 감독이 되어 선수들을 지시하는 모습이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게이트에 새겨져 있다.
내부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아약스가 낳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액자 전시가 되어 있는 공간에 크루이프가 떡하니 대형 사진으로 걸려있기도 하다. 아약스가 배출한 스타들의 아버지라는 느낌을 주는 구도라 퍽 인상 깊었었다.
클럽의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다. 크루이프가 중심이 되어 유럽과 세계 최정상에 올랐던 1970년대 아약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현지가 아니면 접하기 힘든 푸릇푸릇했던 크루이프의 현역 시절 플레이 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약스의 위대한 역사 중 크루이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 긴 하다. 크루이프가 아약스의 모든 걸 대변한다고 말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크루이프 없이 아약스의 과거와 오늘을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박물관에 차지하는 크루이프의 지분은 매우 크다.
심지어 경기장 밖 구석에는 캠프 세도로프라는 네덜란드 그라피티 그룹이 남긴 작품도 있다. 등번호 14번이 새겨진 아약스 유니폼을 입고 지시하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의심의 여지없이 크루이프다. 등번호 14번은 크루이프의 트레이드마크였고, 이 때문에 아약스의 영구 결번 역시 14번이다.
경기장 안팎 할 것 없이 온통 크루이프의 이미지가 덧칠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경기장을 다녀봤고 전설의 이름을 다른 스타디움도 숱하게 방문해봤지만, 이처럼 특정 인물 하나에 집중하며 기리는 곳은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가 유일하지 싶다.
요란하고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크루이프를 위함이었다고 재차 떠올리니 금세 당연한 치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축구팬들에게는 꼭 추천하고픈 장소다. 물론 크루이프에 대한 예우뿐만 아니라, 아약스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는 필히 방문해야 할 코스다.
에스플라나데 드 메어,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까지, 유럽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정취를 모두 맛보지 못한 건 아쉽긴 하다. 하지만 괜찮다. 크루이프의 발자취를 쫓아다니며 위대한 전설을 떠올리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암스테르담은 오래도록 크루이프의 도시로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