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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Nov 02. 2019

뒷뜰로 간 영웅의 동상

암스테르담 크루이프 루트 ②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에 자리한 기념 명패 @풋볼 보헤미안

“암스테르담에서도 올림픽이 열렸었던가?”


에스플라나데 드 메어를 등지면서 다음 크루이프 루트의 코스였던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향하면서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었다. 


만 마흔이라는, 나름 적잖은 나이를 살아온 만큼 내 기억 속 올림픽 개최 도시도 제법 된다고 생각했다. 스케치북에 국기와 금·은·동 차트가 그려 대회 내내 그 메달 체크한다고 시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의 1988 서울 올림픽부터 대회를 지켜봤으니 올림픽 시청 경력도 나름 30년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네덜란드에서 올림픽이 열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긍심이 강한 네덜란드인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중국이나 동구권 국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올림픽 이름만 따온 경기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서야 대단한 실례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 정문에 자리한 니케의 동상과 오륜기 문양 @풋볼 보헤미안

경기장 정문에 자리한 승리의 여신 니케의 위엄 넘치는 동상, 하늘 높은 곳에 자리한 오륜, 메달리스트 이름이 적힌 명판을 확인한 후에야 이 장소가 세계 스포츠사에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축구사에 관해서도 꽤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무대였다. 벤피카가 레알 마드리드를 물리치고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했던 1961-1962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비롯해 1976-1977 UEFA 컵 위너스컵 결승, 1980-1981·1991-1992 UEFA 컵 결승 2차전 등 굵직한 메인이벤트가 치러졌던 유서 깊은 경기장이다. 


게다가 이 경기장에서는 20세기 초반 세계 축구 최강자라는 가리는 중요한 대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축구다. 1930년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에서 FIFA 월드컵이 위대한 출범을 알리기 전만 하더라도, 올림픽 축구는 명실공히 세계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무대였다.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따낸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풋볼 보헤미안

즉, 암스테르담 올림픽 축구는 월드컵이 탄생하기 직전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최강을 가린 마지막 대회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며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섰으며, 이 우승이 우루과이가 초대 FIFA 월드컵을 유치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과거의 승부가 세계 축구사에 끼친 영향이 결코 적다 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로테르담의 드 쿠이프와 더불어 오랫동안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으로 쓰였으며, 심지어 아약스마저도 종종 이 경기장에서 유럽 클럽 대항전 경기를 치렀다. 홈구장이었던 드 메어의 관중 수용 규모가 UEFA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한때 6만 4,000명이라는 대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었다. 


즉, 아약스에게는 ‘어나더 드 메어’였으니, 아약스와 네덜란드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크루이프를 다루는 ‘크루이프 루트’의 주요 스폿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 내에는 요한 크루이프가 은퇴 후 공을 들인 재단 사업을 벌이는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풋볼 보헤미안

이 경기장에 바로 요한 크루이프 재단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크루이프 재단은 지난 1997년 크루이프가 네덜란드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재단이다. 어린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체력을 기르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암스테르담을 비롯해 네덜란드 곳곳에 운동장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장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크루이프 코트’라 부른다. 지난 2016년까지 200개가 넘는 크루이프 코트를 건설했다는데, 위대한 전설의 선행을 돕기 위해 지자체는 물론이며 여러 네덜란드 축구 클럽, 클라스 얀 훈텔라르를 비롯한 네덜란드 축구 스타까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 뒤편에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크루이프 코트는 크루이프 재단이 만든 다른 미니 운동장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준다. 크루이프의 모습을 한 동상 때문이다. 

서독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크루이프의 돌파를 형상화한 동상, 네덜란드 내에서 정말 유명한 동상이다.  @풋볼 보헤미안

네덜란드 조각가 에크 판 잔텐이 만들었다는 이 동상은 1974 FIFA 서독 월드컵 결승전 당시 크루이프의 경기 모습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그 경기에서 크루이프는 전반 2분 서독의 페널티박스 안을 기습적으로 파고들어 베르티 포그츠의 파울을 유도해냈다. 키커로 나선 요한 네스켄스의 깔끔한 득점으로 네덜란드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은 네덜란드가 지금까지도 세계 최정상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1978년에 베일을 벗은 이 동상은 본래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 정문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방문객에게 네덜란드 스포츠 성지에 왔음을 알리는 대문 구실을 한 것이다. 이 동상이 지금의 크루이프 코트로 옮겨온 건 지난 2007년의 일이다. 크루이프 코트 조성을 계기로 이 동상이 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뒷마당으로 이전된 셈인데, 이는 크루이프의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자신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꿈을 키우게끔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크루이프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개인적인 감상일 수 있으나 동상 어깨너머로 크루이프 코트를 바라보면, 크루이프가 영원토록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길 원해 동상을 옮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 

마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영원히 보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풋볼 보헤미안

사족을 달겠다. 에스플라나데 드 메어·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보며, 불현듯 이미 철거된 동대문운동장, 지난 수년간 심심찮게 철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과 효창운동장이 뇌리에 스쳤다. 단순하게 체육 시설로만 여겼기에 도시 계획에 따라 없앨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타디움은 그냥 경기장이 아니다. 심지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큰 대회가 열린 경기장의 경우에는 여러 나라에서 문화재와 비슷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암스테르담 올림픽 주경기장만 하더라도 지난 1987년 네덜란드 국가 주요 기념물로 등재되어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에스플라나데 드 메어의 경우처럼 불가피하게 경기장을 철거하더라도 반드시 그 장소에는 그 흔적을 남겨 사람들이 영원토록 추억할 수 있도록 한다. 


흘러버린 시간을 그저 과거로 치부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중한 힘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은 알고 있다. 구석진 곳에 흉물스럽게 남은 전광탑 일부를 제외하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동대문운동장의 옛 터를 떠올리면서 씁쓸했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너무 쉽게 지우는 건 아닐까?

크루이프 코트, 어린이들이 뛰노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크루이프의 일생의 사업 중 하나였다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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