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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Oct 28. 2019

독일을 만든 위대한 승리
‘베른의 기적’

Tor! Tor! Tor! Tor! Tor fur Deutschland!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을 정복한 당시 서독의 우승 멤버와 결승전 축구공 @풋볼 보헤미안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 한국 전쟁이라는 시련을 딛고 세계무대에 선 ‘태극 전사’들이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첫 번째 월드컵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회가 벌어지는 스위스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고행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지역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방한해야 했던 일본 선수들의 방한을 거부해 경기 자체를 못할 뻔했다.

      

적지 일본에서 두 경기를 치르는 걸로 정리가 되었는데, 이마저도 부담 백배인 상태에서 치렀다고 한다. 경기를 앞두고 “만약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라는 이 대통령의 서슬 퍼런 명령이 선수들에게 떨어졌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을 꺾고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어도, 이후가 문제였다. 모두가 굶주려야 했던 시절, 선수단은 항공편과 배편을 통해 여러 곳을 거쳐 스위스로 향했다. 첫 경기 헝가리전을 앞둔 당일 아침에 가까스로 당도해야 했으니 선수들이 겪었을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축구수집가 이재형 제공

홍덕영·최정민 등을 앞세운 한국은 헝가리전에서 0-9 참패를 당했다. 이 경기는 역대 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점수 차의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힘이 약했던 한국 축구의 어두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스코어다. 그런데 당시 헝가리가 ‘매직 마자르’라 불릴 정도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한 팀이었다는 점, 경기 당일에야 겨우 현장에 도착했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0-9 패배는 외려 엄청난 선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알고 보면,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경기다. 도리어 세계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한국 선수들은 박수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대회를 한국과 비슷한 마음으로 치른 나라가 있다. 독일, 더 정확히 그 시절 이름으로 표현하면 서독이다. 당시 독일인들의 처지는 만신창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두 차례나 일으킨 세계 대전에서 연거푸 패하며 최악의 전범국 신세에 빠졌고, 국토는 동서로 갈가리 찢겼다. 대외적으로는 ‘악의 축’이라는 나쁜 이미지에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니. 희망은 눈곱만큼도 살필 수 없는 나라가 바로 그 시절 독일이었다.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 당시 서독 선수들이 착용했던 유니폼 @풋볼 보헤미안

그런 그들이 여전히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끽했던 대회가 바로 이 스위스 월드컵이었다. 서독은 이 대회에서 ‘최강’ 헝가리를 물리치고 아무도 예상치 않은 우승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승리가 이뤄진 곳이 스위스의 베른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당시 서독의 우승을 ‘베른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다.     


기적이 벌어진 스위스 베른이 아닌 도르트문트에서 그 흔적을 살필 수 있었다. 경기가 벌어진 방크도르프 슈타디온은 지난 2001년 철거되어 현재의 스타드 드 스위스라는 새 구장으로 바뀌었고, 베른의 기적이 있었던 장소라는 입간판만 남아 있을 뿐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도르트문트에 자리한 독일 축구박물관에 온다면 ‘베른의 기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도르트문트 중앙역 맞은편에 조성된 독일 축구박물관은 지난 2015년에 개관했다. 2006 FIFA 독일 월드컵 이후 남은 월드컵 잉여금을 통해 조성되었으며, 도르트문트는 독일 축구의 모든 것을 담을 이 박물관을 유치하고자 열세 도시를 상대로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여야 했다고 한다.      


독일 축구의 모든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이 박물관에서 가장 크게 조명하는 파트는 두 가지다. 먼저 소개할 파트는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정상 등극이다. 가장 최근에 거둔 월드컵 우승인 데다, 통독 이후 처음으로 FIFA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당시의 쾌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독일인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브라질 월드컵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조명하는 우승이 바로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 즉 베른의 기적이다.      


독일 축구박물관에서는 이곳을 방문하는 팬들에게 가장 먼저 베른의 기적에 대해 알린다.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을 비롯해 프리츠 발터·헬무트 란·한스 샤퍼 등 서독 선수들의 모습은 물론이며 결승전 당시 관중석의 생생한 모습, 방크도르프 슈타디온에서 뜯어 온 목재 스탠드 등 당시 현장 분위기를 충실히 재현해놓았기 때문이다.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서 서독 선수들에게 건네진 '매직 마자르' 헝가리의 페넌트 @풋볼 보헤미안

또한 우승을 확신하고 피치로 들어왔을 푸스카스 페렌치의 손에 들려져 있던 ‘최강’ 헝가리의 페넌트와 당시 결승전 공인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우승했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한 중계진의 음성이 담긴 당시 TV 중계 화면 등 대단히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골! 골! 골! 골! 독일의 골입니다! 독일이 3-2로 역전했습니다! 저를 미쳐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종료! 종료! 종료! 경기 끝났습니다!(Tor! Tor! Tor! Tor! Tor fur Deutschland! Drei zu zwei fuhrt Deutschland! Halten Sie mich fur verruckt! Halten sie mich fur ubergeschnappt! Aus! Aus! Aus! Aus! Das spiel ist aus!)” - 당시 결승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 헤르베르트 짐머만


“골! 골! 골! 골! 독일의 골입니다”는 당대에는 큰 인기를 끈 유행어였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일본 원정 경기에서 송재익 캐스터가 한 “후지산이 무너집니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이라 이해하면 편하겠다. 어쨌든 짐머만 캐스터이 남긴 이 말은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독일 내에서 뭔가 큰 성공을 이루었을 때 쓰이는 속담처럼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흥분된 목소리 역시 독일 축구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짐머만만큼이나 크게 흥분한 채 기사를 송고했던 독일 기자들의 타자기까지도 전시해놓고 있다. 경기 결과나 우승컵만 전하는 게 아니라 경기 전후로 이 기적을 접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노력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서독 선수단 열차를 환영하는 당시 서독인들의 모습을 미니어쳐로 재현해놓았다. @풋볼 보헤미안

그런데 가장 뇌리에 남았던 건 따로 있다. 서독 선수단의 귀국 현장을 재현해놓은 장난감 모형이다. 줄리메컵을 품고 특별 열차에 오른 선수단이 스위스 베른을 출발해 독일 지겐 역에 도착한 풍경을 묘사해놓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지겐 역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쏟아져 나온 인파에 뒤덮였다. 선수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옆 사람 무등을 타거나, 다리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비단 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었다. 당시 선수단이 탑승한 기차는 예정된 시간에 역에 도착하지 못했다는데, 이는 폭설 등 기상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철로 인근에 사는 서독인들이 우승컵을 가지고 돌아오는 선수단을 보기 위해 레일 위로 뛰어들어 이동을 막는 경우가 숱하게 빚어졌기 때문이다.      


즉, 이 특별 열차는 흥분한 팬들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겨우 지겐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큰 문제가 됐을 일이지만, 나라 전체가 거대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분위기이니 웃으며 넘어갔을 듯하다.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그저 국제 대회에서 낸 커다란 성과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그 이유가 가장 크긴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당시 스위스 월드컵 우승은 서독인들에게 단순히 국제 스포츠 대회 우승 정도로 마름질할 수 없다.      


서독 축구의 레전드 프란츠 베켄바워는 “전후 시대를 거치며 불행하게 살아간 이들에게 베른의 기적은 특별한 영감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설인 울리 회네스는 “네덜란드를 상대한 1974 서독 월드컵 결승전에서 터진 게르트 뮐러의 결승골, 아르헨티나와 맞붙은 1990 FIFA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페널티킥 결승골은 그저 ‘골’에 불과하다. 하지만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란의 역전 결승골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골”이라고 말했다.      

헤르베르트 짐머만 캐스터가 사용했던 방송용 마이크 @풋볼 보헤미안

비단 축구인들만 자화자찬해서 남긴 말들이 아니다. 스위스 월드컵 우승이 독일인들에게 끼친 심리적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까지 발표됐을 정도로 독일인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가 요아힘 페스트는 베른의 기적을 두고 “국가의 진정한 탄생”이라는 말을 남겼다. 단순히 축구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독일의 시작이 바로 그 베른의 기적에서 시작됐다고 본 것이다.      


일리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베를린의 라이히스탁(국회의사당)에 소련의 붉은 기가 걸리는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잿더미가 되어버린 국토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패전국 혹은 전범국의 사람들이라는 낙인은 그들에게 심각한 무력감을 안겨주었고,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전후 독일인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전후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우승한 선수들의 분투 덕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즉, 베른의 기적은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 전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페스트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독일의 진정한 출발점이 바로 베른의 기적이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서독-헝가리 결승전 중계 영상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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