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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Sep 15. 2021

지금의 맨체스터 시티를 만든 승리

이 승리가 없었다면 블루문의 황금기는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안방 에티하드 스타디움 @풋볼 보헤미안
맨체스터 시티 경기장 가냐? 

유럽으로 떠나기 전, 어려서부터 함께 축구를 즐겼던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이 친구는 스스로를 맨체스터 시티 광팬이라고 자처할 정도로 ‘블루문’에 푹 빠져 있었는데, 이유가 있다. 본래 좋아하던 한 K리그 팀이 매년 재정적 이유로 항상 힘든 시즌을 보내는 것에 질려, ‘머니 파워’를 앞세워 단순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유럽 축구 중심에 우뚝 선 맨체스터 시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리얼 부(部)’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나? 

    

아마 이런 생각, 이역만리 지구 반대편에서 TV로만 맨체스터 시티를 지켜보는 이 친구만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맨체스터 본토의 현지인들이 더했을 것이다. 외신으로 접했던 현지 반응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개인 자산만 40조가 넘는다는 사실이 크게 화제가 되어 난데없이 ‘갑부의 대명사’가 된 일명 만수르, 즉 만수르 알 나얀의 재력 때문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돈으로는 우승컵을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한 말일 것이다. 그런 반응에 맨체스터 시티 골수팬이자 세계적 록 그룹 오아시스 리더 노엘 갤러거는 이렇게 말했다.     

젠장. 우리는 그간 거지였어. 그러니 돈 좀 써도 돼.
윤리? 상도덕? 지들은 물 쓰듯 돈 써놓고 우리가 돈 좀 쓰려니까 뭐 전통?
우리가 30년 동안 거지였다는 그 전통?     


옳거니! 이 외신을 처음 접했을 때 역시 옳은 말하는 ‘독설가’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이 틀렸고 갤러거가 옳았다. 돈으로 우승컵을 살 수 없다는 낭만주의 시각은 이제 버려야 할 시대다.  


UAE 자본이라는 보약을 먹은 후, 맨체스터 시티가 수집한 우승컵은 이런저런 대회를 모두 합해 열아홉 개다. 퍼거슨 감독이 떠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가져온 우승컵이 몇 개였더라? 아스널은? 시작부터 사족이 길었는데, 맨체스터 시티가 지금의 명성을 가진 빅 클럽이 된 가장 큰 원동력은 분명 ‘돈’이다. 천박한 속물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돈으로 영광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그런데 만수르의 그 어마어마한 재산 때문에 클럽이 성장했다고만 생각한다면, 너무 개연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노엘은 자신이 응원하는 맨체스터 시티를 ‘거지 구단’으로 표현했다. 1부 리그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고, 2부 리그와 3부 리그를 오가며 힘들었던 시기가 익숙했으니 꽤 정직한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수르는 세계적인 투자가 중 하나다. 아무 생각 없이 이런 팀에 투자할 리가 없다. 최강의 팀으로 키우면 ‘대박’ 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 돈뭉치를 집어던졌을 것이다. 그러려면 맨체스터 시티 스스로 최소한의 기반을 유지해야만 한다.     


가이드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며 설명한 맨체스터 시티와 질링엄전 @풋볼 보헤미안

그들의 근거지 에티하드 스타디움 외벽에는 그 실마리가 적혀 있다. 익살스럽고 살뜰하게 외지인을 반기는 현지인 큐레이터와 함께 스타디움 외관을 천천히 돌다 어느 지점에서 턱 하고 멈추더니 꼭 알아야 할 사건이 있단다.     


자, 저 사진에 대해 설명해드릴게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1998-1998시즌, 그러니까 1999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맨체스터 시티는 그때 프리미어리그에 없었어요.
그럼 디비전 1(2부 리그)에? 아니요.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었죠.
크리스마스 때만 해도 우리는 리그 12위였어요.
그리고 박싱 데이를 거치며 이기기 시작해 4위로 시즌을 마쳤죠.
결국 우리는 플레이오프에서 질링엄과 웸블리에서 맞붙었습니다.

후반 45분, 우리는 1-2로 지고 있었어요.
추가 시간은 4분뿐이었죠. 많은 시티 팬들이
‘안녕, 나 갈게’라고 말하며 스타디움을 떠났습니다.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믿어야만 했어요.

후반 추가 시간,
폴 딕코프가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답니다.
2-2!
연장전 끝날 때까지도 그 스코어가 유지됐죠.
승부차기에서 누가 이겼을 것 같아요?
맨체스터 시티!
여기서 이겨서 맨체스터 시티는 EPL 바로 밑 리그로 승격했습니다. 
정말 열정적이면서도 친절했던 설명이라 지금도 기억에 남는 현지 큐레이터 @풋볼 보헤미안

3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승격한 것일 뿐인데, 그게 대수냐고 물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1998-1999 시즌은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었다. 3부 리그에서 치른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시즌 중반까지 승격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순위에 머물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는 후반기 들어 놀랄 만한 도약을 하며 승격까지 내달렸고, 이 승격 덕에 1999-2000시즌 2부 리그로 복귀하자마자 다시 1부 리그인 프리미어리그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2000-2001시즌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한 후 맨체스터 시티는 1부 리그 클럽으로서 외견을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했고, 이후 외국 자본의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의 클럽으로 환골탈태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현지인 큐레이터는, 그리고 상당수의 현지인 팬들이 지금 맨체스터 시티를 만든 승리라고 1999년 질링엄전을 꼽고 있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이 질링엄 전보다 더 짜릿함을 안겼던 승리는 무척 많다. 이를테면 팬들이 끊임없이 회자하는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 라운드 퀸스 파크 레인저스전이 그러할 것이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손에 거의 넘어갔던 상황에서 경기 종료 직전 세르히오 아궤로의 천금 득점에 힘입어 반전을 이뤘다. 이 우승은 2010년대 맨체스터 시티가 무수히도 많은 트로피를 가져오는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영광도 결국은 역사적인 발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역사적인 발판이 바로 이 질링엄전이었다. 이 질링엄 전이 없었다면 프리미어리그행도, 만수르도, 케빈 더 브라위너 같은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도,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처럼 뛰어난 명장들도 이 맨체스터 시티를 찾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실로 한 편의 드라마이자, 위대한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현지 팬들이 이 질링엄전 승리를 그 어떤 우승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견해, 충분히 이해가 됐다.

맨체스터 시티의 환상적인 라커룸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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