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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n 21. 2024

하자 있는 삶

고등학교 때였다. 어릴 때부터 달고 살던 아토피를 고쳐보겠다고 한의원에 갔다. 약 꼬박꼬박 먹고 밥과 김치만 먹으며 몇 개월을 보냈다. 한의원에서 하라는 대로 다했는데도 아토피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인생 최악의 끔찍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한의원에서 피부과로, 다른 한의원으로, 약국으로, 시골로... 갖은 방법으로 피부를 낫게 해보려 했지만 다 헛수고였다. 진물로 뒤덮인 얼굴과 몸으로 잠이 들 때마다 다음날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죽고만 싶던 그 하루하루에 책을 읽었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온몸에 진물이 나고 쓰라리고 각질이 떨어지는 그 매 순간 내가 정말 죽을 수 없다면, 살아있을 이유가 필요했다. 닥치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었다. 책을 읽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순간에만 육체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모른 척할 수 있었다.


그즈음 공지영이 딸에게 쓰는 편지를 묶은 에세이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읽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왔다. 나는 다른 멀쩡한 나뭇잎과는 다른 벌레 먹은 나뭇잎인데, 그래도 괜찮다고. 왜냐면 그 벌레 먹은 나뭇잎은 나밖에 없으니까. 다른 벌레 먹은 나뭇잎과도 다르게 생긴 유일한 나뭇잎이니까. 그걸로 이미 완전하다고. 이대로도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나는 피부가 멀쩡한 다른 친구들과 다르고 어쩌면 평생 이렇게 다르게 살아야 할 거고, 누가 봐도 나는 다른 게 보이고 그때마다 눈을 피하거나 설명을 해야 할 거고. 그런 내 삶이 하자 있는 삶이라고, 나는 하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글을 읽고 아 아토피 있는 나도 이대로 완전하구나. 나 같은 아이도 있어야 하는 거구나. 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글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내 삶을 부정하고,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위로해 준다.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잠시 멈추고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더 괜찮아질 수도 있다고도 말해준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에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조금만 더 살아보자고. 내일은 좀 더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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