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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n 24. 2024

아빠가 울던 날

젊은 날에는 경상도 산골 광산에서 일하고, 형을 따라온 서울에서는 연탄배달, 중매로 엄마를 만나 결혼한 후로는 줄곧 공사장 막노동을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린 우리 아빠. 술을 너무 좋아해 엄마 속을 새까맣게 썩이다 간에 이상이 생기고 입원까지 하고 나서야 아빠는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가끔씩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에 술 한 잔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아빠.


아빠는 내가 어떤 거지꼴로 있어도 제일 이쁘다고 하고, 내가 과식해서 급체라도 하는 날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버선발로 달려 나가 까스활명수와 약을 사 온다. 시골 촌놈이 어떻게 서울에 와서 나랑 동생처럼 이쁜 자식을 낳았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 아빠. 아기원숭이를 닮은 얼굴로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다녀서 동네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아빠지만, 그런 아빠의 얼굴에도 슬픔이 드리운 날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앓던 아토피를 고쳐보겠다고 한의원에 갔다가 명현현상으로 온몸이 뒤집어지고, 마지막 방편으로 삼촌이 살고 있는 시골에 가서 지낼 때였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면 나을 거라 믿었던 기대가 무색하게도 내 피부는 더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얼굴에 두껍게 진물 딱지가 앉았고 온몸이 상처로 따가워 잠을 자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빨갛고 울퉁불퉁한 괴물이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동생의 학교 때문에 서울에 있었는데, 내 상태가 심각해진 것을 들은 아빠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빠는 진물 딱지로 뒤덮인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고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아빠의 작은 두 눈이 눈물로 가득 차올랐다. 아빠는 그때 가슴이 쿵쿵 뛰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할 수만 있다면 나 대신 자기가 아프고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 그 후에 몸에 잘 맞는 약을 찾아서 사회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내가 평생 갖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평범한 삶을 감사히 살았다. 그 시절 내 아픔이 너무 커다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나만 힘들고, 나만 아프다고 생각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뜨거운 아빠의 눈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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