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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Aug 01. 2022

02. 애인(愛人)

사랑노래가 많은 이유

옛날 옛적, 물 맑고 공기 좋은 경상북도 울진군과 평해군. 그 경계에 위치한 애인군.


애인군이라 함은, 사랑 애(愛) 사람 인(人). 사람 간의 정과 사랑을 중시하는 곳이라.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난 200년 전, 도요토미가 울릉도, 독도를 거쳐 이곳에 정박했을 때도, 흐드러지게 핀 배꽃과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아름다워 열흘을 머물렀다고 한다.


천하의 도요토미도 애인군 백성들에게 칼을 휘두를 수 없는 무언의 기운을 느꼈으니. 그 정도로 애인군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 하겠다.


어느 날, 평산 신씨 시조 숭겸 11대손 구월 도령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정자에 앉아 바다의 짠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바다에서 은색의 무언가가 번쩍번쩍 거리거늘. 저것이 은갈치인가 고등어인가. 구월은 궁금하여 바닷가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은색의 무언가를 번쩍 들어 올리니 그것은 한 손에 들어오는 백자로구나. 구월이 물기를 소매로 닦으니, 백자의 입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오더니 어느새 그의 앞에 흰색 도포를 입은 여인이 서있더라.


"구월 도령,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소."


구월은 놀라 자빠질 뻔했지만 오래 품고 있던 소원을 말하기로 했다.


"유중의 마음을 얻고 싶습니다."


유중이라 함은, 구월과 같은 서당에 다니는 안동 김씨 12대손이다. 그는 한척하고도 조금 더 컸고 몸은 올곧은 것이 수려한 소나무를 보는 듯했다. 옥색 두루마기와 머리에 쓴 복건이 꼭 맞는 것이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다시 보게 되는 외관이었다.


함께 공부한지는 어언 3년. 구월은 유중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웃을 때 폭 들어가는 보조개와 붓을 쥘 때 드러나는 손의 힘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구월, 안됩니다."


백자 여인이 말했다.


"왜 안되오. 여기는 애인군이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오!"


하지만 여인은 구월의 소원만을 결코 들어줄 수 없었다.


그 연유라 함은 구월을 만나기 전, 이미 옆 마을에 옆집 도령을 흠모한 한 도령의 사랑을 이어주려 했거늘, 그들은 마을에서 쫓겨나 전국을 배회하다 추위에 얼어 죽고 만 것이다. 제 아무리 애인군이라 한들, 사랑하는 이들의 명을 빼앗는 일만은 할 수 없었다.


백자 여인은 구월을 열흘 내내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끝내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여인은 백자로 들어갈 수 없어 지천으로 떠돌게 되었다. 그리고 구월은 다음 해 피눈물을 흘리며 옆집 아가씨와 혼례를 치렀다.


소문에 따르면 빈 백자는 동해바다에 300년 동안 떠다녔고, 여인은 지금까지 지천을 떠돌며 구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대신 전하고 다니거늘. 백자 여인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구월의 사랑 이야기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한다.


*


2022년, 대한민국, 서울.


"야, 심심한데 노래 좀 틀어봐."

- 오키.


�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그리워한 죄~


"딴 노래"


� 사랑 그게 뭔데 날 울려~ 날 울려~ 어떻게 니가 날 떠나가~


"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별에 미쳤냐? 가사가 죄다 사랑, 이별이냐?"

-너 가사에 왜 사랑이야기가 많은지 몰라?"

"뭔데?"

- 옛날 옛적, 물 맑고 공기 좋은 경상북도 애인군에 구월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백자 여인이 그들의 사랑을 이뤄주지 못해 백자에 영영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노랫말로 구월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는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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