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반년 전 닭갈비집에서 시작된 사건이 있다. 물컵을 쏟는 아이도 없고 포크를 떨어트리는 아이도 없이 S와 단둘이 평일 점심 식사였다. 매콤한 닭갈비 맛은 똑같은데 S가 다른 사람처럼 말했다.
"자기는 주 4일 출근하니까 좋겠다. 나는 서울 갔다 왔더니 너무 피곤하네. "
"주변에 나처럼 집안일 많이 하는 남자 없지?"
"솔직히 너 육아휴직 때 살림은 내가 다 했잖아. 너보다 편하게 육아휴직한 사람 있으면 한 명만 데려와 봐."
S는 아리수를 잘못 먹고 온 모양이었다. 슬슬 기분이 나빠진 나는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S가 싫어하는 '아무 말도 걸지 마'하는 굳은 표정이 되었을 거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그러니까 S가 꺼내놓은 고통의 크기 같은 것들 말이다. S와 나, 나와 타인, 타인과 S. 고통이란 것을 측정할 수 있다면 세상에 수많은 싸움은 사라질 것이다. 고통 무게를 달아보면 누가 제일 아픈지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이미 숟가락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고 S는 먹을 만큼 먹고 식당에서 나왔다.
S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소리쳤다. "왜 또 시작이야"로 시작해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악다구니를 쓰다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정적을 뚫고 세탁기에서 짧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S는 방문을 열고 나와서 거실 건조대에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뭐 때문에 화가 난 거냐고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머릿속에서는 뭐라도 한마디를 하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손가락은 네이버 부동산에서 원룸 투룸을 찾아보고 있었다. 젖은 빨래를 툭 털어 건조대에 널고 있는 S 앞에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서 월세나 전세를 물어봤다. 나는 그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가야 했다. S는 젖은 빨래 중에서 내 속옷과 양말을 골라내어 사방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시작한 점심 데이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 지붕아래 모난 아이 둘이 싸우기 시작했다.
나의 유년 시절에 엄마는 바빴다. IMF 때 아빠가 실직하고 엄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했고 고단함은 술로 풀었다. 동네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구토를 하다가 화장실 앞에서 잠들었다. 하나뿐인 화장실에 가려면 잠든 엄마 옆을 살금살금 지나가야 했다. 볼일을 보러 들어가면 게슴츠레 눈을 뜨고 꼬인 혀로 "다 너 때문이야"라고 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이 장면은 보기가 괴로워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그럴수록 선연하게 눈앞에 나타나서 피할 수가 없다. 내게는 누군가 나쁜 기운을 끼쳐올 때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는 자기 의심이 본능적으로 피어오른다. 닭갈비 점심에서 S의 말이 그랬다. S가 나 때문에 고생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익숙한 감각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소라게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가는 게 무슨 죄란 말인가.
어린이 S는 바닷가 앞 빨간 지붕 이층 집에서 살았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가본 그 집은 바닷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서해안의 아름다운 일몰보다 일순간 덮쳐온 바닷가의 짙은 어둠이 오랫동안 기억난다. S의 부모님은 바쁘셨다. S는 바닷가에서 혼자 모래놀이를 했고 컴퓨터가 생긴 순간부터 화장실이 딸린 이층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가 친구이자 놀이터였다. 무엇을 잘해도 못해도 S는 혼자였다. 집 안에서 존재가 흐릿했던 S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꿈을 품었다. 집 밖에서 어떻게 지냈든 가정에서는 서로에게 귀한 관심을 기울일 사이를 갖고 싶었다. 귀한 관심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존재의 인정.
결혼식 사진 속 우리는 환하게 웃고 있다. 자기 안에 어떤 어두운 아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S의 과거 따위 상관없었다. 그 시간을 통과해 온 현재의 S가 중요했고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앞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신혼이 끝나고 한 달에 서번씩 싸우기 시작했다. 맛없는 음식을 싫어하는 S가 "이건 국이 아니라 콩나물 삶은 물이잖아. " 하는 말로 시작되기도 했고 수건 관리에 철저한 내가 "젖은 수건 빨래 통에 담지 말라고 했잖아."로 시작되기도 했다. 이유와 상관없이 싸우는 방식 때문에 더 싸웠다. 나는 소라게가 되어 슬금슬금 도망치고 S는 똑똑 두드리고 말을 걸었다. 집을 나가려는 내 행동에는 S의 심연에 살고 있던 아이가 나타나서 젖은 빨래를 집어던졌다. 결혼생활 9년 만에 나는 시간의 허리를 잘라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소라게를 닮은 소녀와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있는 소년을 발견한 사건이었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