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침잠만 없는 게 아니었다. 생체 시계도 없는지 평소처럼 기상했다. 푸꼭은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이 빠른데 아이들은 현지 시각 7시 반부터 방구석 탐험을 시작했다. 여러모로 예민한 S가 다음으로 일어났고 나는 셋이서 암막 커튼을 걷고 감탄하는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오션뷰. 윤슬이 빛나는 바다 위에 갓 태어난 흰 구름이 떠있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창밖을 감상했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풍경이었다.
우리는 성실한 배꼽시계를 따라 조식을 먹으러 리조트 1층으로 내려갔다. 직원은 창가 쪽 자리와 음식이 가까운 쪽 자리 중에고르라고 했다. 주변에 식당이 없는 리조트라 붐비고 있었다. S는 더위보다 붐비는 걸 못 견뎌하는 사람이고 나는 기념품보다 현지의 날 것, 바람 햇살 풍경을 수집하는 사람이라 야외 테라스로 정했다. 직원은 아무도 없는 테라스로 우리 가족을 안내하며 싱긋 웃었다. 그의 양 볼에 보조개가 파였다. 속으로는별난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S는 흰 죽 같은 콩지를 먹고, 나는 패션후르츠를 오독오독 씹어먹었다. 삼시세끼 과일식을 먹고픈 나는 조식뷔페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이 맛에 여행을 오는 것 같아" 오물거리며 S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 제육볶음 먹고 싶어" 습도 때문인지 대답하는 S의 눈망울이 촉촉했다.
괜스레 미안해져 초록색 수목으로 눈을 돌렸다.쨍쨍한 태양 아래 활짝 피어난 하얀 플루메리아를 발견했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식사를 마친 우리 아이들이 떨어진 플루메리아 꽃을 줍고 있었다. 플루메리아 꽃말은 '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한다. 야외테라스에서 좋아하는 열대과일을 먹으며 S와 함께 아이들을 구경한 순간은 플루메리아스러웠다.
하루 일정은 먹고 놀기 뿐이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모래성을 만들었다. 파도가 휩쓸어가면 다시 땅을 파고 더 높이 모래성을 쌓았다. 성이 무너질 때마다 아이들은 "한번 더"를 신나게 외쳤다. 모래성 쌓기의 재미는 허물어지는데 있었다. 수차례 모래성이 허물어지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달구어진 세상을 식히는 비였다.
아침에 바다 위에서 갓 태어난 구름이 비를 뿌렸을까. 비는 바다가 되고 바다는 다시 구름이 된다. 매번 같은 양은 아니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순환한다. 아마 우리 부부관계도 싸우고 화해하는 일의 반복일 것이다. 한바탕 치열하게 싸우고 나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애정을 나누겠지. 싸우지 않으면 될 일이라고? 떠나야만 알게 되는 여행처럼 싸워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