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부터 달랐다. 뜨뜻하고 무거웠다. 6시간 전에 떠나온 인천공항이 그리웠다. 입국심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고 둘째 아이는 품에서 잠들었다. 현지 시각으로 자정이 지났으니 인천 기준으로는 새벽 두 시쯤 되었을 거다. 공항 바깥으로 나오자 예약해 둔 리조트 셔틀버스가 있었다. 웰컴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리조트 직원은 앳된 얼굴에 짙은 화장만큼이나 무겁게 피로해 보였다.
셔틀버스에 올라타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안과 밖의 온도차가 컸다. 싫어하는 밤 비행기를 타고 와서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밤 비행기를 싫어하고 S는 여행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밤 비행기를 타고 푸꼭으로 여행을 왔다. 넷이서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다.
차창 밖으로 듬성듬성 가로등이 나타났고, 가로등 불빛은 황량한 흙길을 비추고 있었다. 딴 나라가 아니라 딴 세계처럼 보였다. 리조트 로비에 도착해서 자는 아이를 소파에 눕히고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했다. 작은 체구에 유창한 영어를 쓰는 그녀는 분주했다. 그녀는 혼자서 서류를 정리하고 방까지 짐을 옮겨주었다. 체크인이 늦어서 미안하다며 망고빙수 쿠폰을 한 장 챙겨주었다.
방에는 디저트와 와인, 영어로 쓴 손 편지가 있었다.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낯선 필체로 적힌 내 이름이 묘하게 마음을 움직였다.
내가 방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S는 테라스부터 찾아서 나갔다. 니코틴을 충전하고 있을 거다. 흡연자인 S가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에는 '공항에는 흡연구역이 멀다, 기내는 금연이다, 비행시간이 너무 길다'가 있다. 이륙 직전까지 S는 니코틴 껌을 손에 쥐고 도대체 여행을 왜 가야 하냐고 물었다. 자꾸만 시간이 쫓아와서 도망가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진짜 여행의 이유는 일단 떠나보아야 알게 된다.
눈앞에는 새하얀 침대시트에 드러누워 자고 있는 둘째 아이가 있다. 통통한 뺨과 팔다리는 여전히 말랑한데 길이가 제법 길어졌다. 첫째 아이는 엑스트라 베드에 엎드려서 <윙카>를 읽고 있는데 책이 꽤 두툼하다. 니코틴을 완충한 S는 창문을 열고 편안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자는 아이 빼고 셋이서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웰컴 푸드를 맛보았다. 코코넛 쿠키는 바삭했고 얼음물에서는 패션후르츠 향이 났다.
반복되는 일상이 깃들어있는 집을 떠나오니 스포트라이트가 우리만 비췄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가야 하는 곳과 해야 하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마음이 한껏 풀어졌다. 곁에 있는 S와 아이는 세상 유일한 존재로 빛나고 있었다. “진정한 발견이란 새로운 땅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라고 프루스트가 말했다. 나는 새로운 땅에서 익숙한 사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 나를 천천히 토닥거렸다. 지난한 시간을 매듭짓고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살아온 나날 전부를 껴안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