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떡국을 끓였다. 새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냉동 떡갈비를 굽고 떡국 네 그릇으로 아침 밥상을 차렸다.
방에서 아이 둘은 알록달록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있었다. "밥 먹자"는 내 목소리에 아이들은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S는 아이들 방을 빗자루로 쓸고 나와서 마지막에 앉았다. 나와 S가 아이들을 마주 보고 나란하게 앉았다. 일 년 중 절반을 다같이 밥 먹은 날이 없었다. 4살 아이가 명랑하게 말했다. "아빠 오늘은 배고파? 그동안 배가 안 고팠잖아." S는 "응, 배고파. 아빠도 같이 먹자."하고 대답했다. 9살 아이는 밝은 눈망울로 나랑 S를 번갈아 쳐다봤다. 찬찬히 표정을 살피더니 "휴, 드디어 화해했네" 한마디 보탰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식사하는 내내 아이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문득 그동안 아이들에게서 화목한 가족 식사를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해졌다. "엄마랑 아빠랑 싸워서 미안해"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앞으로 짧게 싸워야지, 다짐했다. 침실에 S를 두고 밥을 먹을 때는 음식 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같이 먹는 아침 떡국은 부드럽고 고소했다. 함께하는 식사는 내게도 이롭다.
아이들은 부모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줄어든 대신둘이 노는 법을 터득했다. 떡국을 한 그릇씩 비우고 사이좋게레고 놀이를 하러 갔다. 나는 육아가 힘들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헤쳐 가면서 말이다.
S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주방을 정리하는 내게 S가 물었다.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했잖아. 근데 나는 너를 잘 모르겠어. 너는 어떤 사람이니?"
"지금은 따뜻한 한 끼를 먹고 기분 좋은 '나'야.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달라고 한 건 나한테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은, 정상이라면' 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어. 난 너랑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들'과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 다수가 잣대를 들고 와서 나한테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 같아. 굴복시키는 화법 같기도 하고. 나는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해. 차이를 인정해 줬으면 해." S는 맹세코 나와 남을 비교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고 했다.
정상에 대한 집착은 화자였을까 청자였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개인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사전 조사서에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든데, 제가 정상인가요> 한 줄을 적었다. 상담 회차를 거듭하면서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안의 심판관과 남편의 말버릇이 손을 잡아서 다툴 때마다 괴로웠다. 무의식에 존재하던 정상에 대한 집착을 의식의 영역으로 데려와서 관찰하는 첫 단추를 꿰었다. 비판없이 나를 인정하고 남편의 말버릇을 고쳐달라는 부탁으로.
S는 손에 물기를 털고 가스레인지를 닦으며 물었다. "만약에 내 몸무게가 두 배가 되고 일주일 내내 씻지도 않고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라고 하면 어쩔래?"
개발자인 S는 직업적 특성상 최악의 경우를 상상한다. 한마디로 직업병. 간호학인 내 전공을 살려서 S를 간호해 본다. “뚱뚱해지면 건강을 해치잖아. 나는 자기가 아픈 거 싫어. 자기를 살살 달래서 산책을 시키고 샐러드를 먹인 다음에 깨끗하게 씻겨 줄 거야. 근데 자기는 안 그럴 사람이야. 왜냐면 싸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안 닦던 가스레인지를 화해하자마자 닦고 있잖아. 내가 깨끗한 거 좋아하니까. 자기 마음 다 알아.” S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달라는 말은 다소 무책임한 것 같다. 내 안에 정상에 대한 집착이 있는 줄도 모르고 괴로워했으면서, 나도 모르는 나를 무작정 S에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꼴이라니. 그보다 넓은 마음으로 내 안에 살고 있는 무수한 나를 발견하고 긍정하는 게 우선이다.
밝은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에서 레고 블록으로 캠핑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뒤통수에서 “나도 깨끗한 거 좋아하거든” 하며 가스레인지를 벅벅 문지르는 S의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