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하여
몇 년 전 암으로 투병하다 작고한 박정요 선생의 장편소설『어른도 길을 잃는 다』는 매우 따뜻한 소설이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상처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어떤 원망의 마음 대신 그 시절, 그리고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향한 마음이 어쩌면 저리도 따뜻할까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것이 암으로 몸이 많이 상한 상태에서 써내려간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작가의 성품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좋을 남도 땅끝 마을 사람들의 핍박과 수난의 세월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이 소설은 정부주도의 강력한 산업화와 월남전 참전, 비인간적 분단 이데올로기의 공고화로 요약되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의 남도 농촌으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해방 이후 좌우의 대립과 한국 전쟁의 참화를 거쳐 오면서 형성된 분단 이데올로기와 그 속에서 신음하는 아버지와 노인을 비롯한 민중들의 삶을 핍진하게 재현하는 한편,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녀차별의 질서를 내면화한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그 자녀들의 갈등을 만화경처럼 펼쳐 보인다.
작중 화자인 소녀는 역사 속에 현현하는 선조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어떻게 앞 세대의 삶을 내면화하고 새 삶을 개척해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다. 동학의 패배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도 좌절하지 않고 바닷가 마을을 일군 선조들, 핍박과 수난 속에서 자존을 지켜낸 노인, 그 선조들의 삶에 애써 눈 돌리며 가족을 지켜온 할머니, 첨예한 좌우대립 속에 유폐되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도 소녀는 그들 모두 자기 몫의 삶을 올곧게 감당해왔음을 자각한다. 한 바닷가 소녀의 내면과 삶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지난날과 오늘을 돌아보는 길이 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많은 작가들이 나중에 친일로 돌아섰고, 그들은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자신의 행위를 변명한다. 당대를 살지 않았던 우리가 일제에 협력하면서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그들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그 엄혹했던 시절에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했던 농민에 대해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보다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겠다. 그 시절에도 목숨을 바쳐가면서 무장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갔던 이들도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후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공동체가 위기에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가르치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문단의 일부에서 대표적인 친일문학상으로 지탄받고 있는 동인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데에는 친일행위야 잠깐이고 더 많이는 우리 근대문학에 남긴 그의 공로를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공과를 모두 평가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얼핏 그른 말 같지 않아 보이면서도, 그러나 누군가를 기리고 기념한다는 것은 그의 삶의 자취를 후대 사람들이 본받자고 하는 것일 텐데, 해방 직전까지도 총독부의 문을 두드리며 자발적 친일을 한, 자기생존에 급급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에게 우리는 무엇을 본받을 수 있을까. 문학은 그처럼 쉽게 삶과 분리 가능한 것일까.
문제는 적잖은 상금을 받고 나면 그 인물에 대한 평가나 그 언론사가 지닌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여성 작가의 입장을 가만 생각해 본다. 내게 그 상을 준다고 했을 때 나도 어쩌면 거부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바라보지 못한 조급함 탓에 자칫 길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리라는 예감이 든다. 괜찮은 작가가 망가지는 경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