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을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일상적인 사회라면 그것을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죽음들이 너무 많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업체의 젊은 노동자가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어 죽었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에는 태안화력발전소의 빛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작업하던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몸이 두 동강 난 채 무참히 죽었다. 2년 후인 2020년 9월 10일에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화물노동자가 또다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희생된 노동자는 태안화력발전소 1부두에서 차량으로 스크류를 옮기는 과정에서 2톤 무게의 스크류에 하체가 깔려 출혈이 심해 숨졌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그런 종류의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해마다 2,400명, 하루 7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는다고 한다. OECD 가입국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허술하기 이를 데 없이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예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중한 업무에 따른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는 이미 사회문제화 되었지만 과로사는 사실 현장 노동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2015년 8월 15일 서울남부지법 이모 판사가 영등포구 자택에서 숨을 내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쓰러졌다. 남편이 119구급대를 불러 근처 이대목동병원에 옮겼지만 이 판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검찰은 병원의 의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과로에 의한 급성심장사로 결론 냈다. 서른일곱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아이가 순식간에 엄마를 잃었다. 2018년 11월 19일에는 40대의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쓰러지기 전 열흘 전에 시부상을 치루고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새벽까지 판결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2018년 9월 7일에는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안지청에 근무하는 서른다섯 살의 젊은 검사가 쓰러졌다. 119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숨져있었는데 사인은 과로사로 추정됐다. 밤늦게까지 사건처리를 하고 귀가하다 죽은 그는 서른 살의 아내와 겨우 세 살 된 아이를 남겼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숨을 거둔 노동자들의 죽음을 보고 겪을 때마다 우리 사회가 과연 사람이 먼저인 사회인지,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은 하고 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노력이야 하겠지만 성과를 얼마나 내는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한 저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과로사의 문제 역시 심각하지만 앞에서 예를 들었던 소위 엘리트 계층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계층 내지 계급적 적대감이 커서 그럴 것이다.
우리 못지않게 일본에서도 과로사 문제가 심각한 데, 다카하시 유키미와 가와히토 히로시가 지은 책『어느 과로사』(건강미디어협동조합,2018)에는 다카하시 마쓰리라는 한 젊은 여성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유명 광고 회사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청춘을 스스로 마감하게 된다. 신입 사원으로 과도한 연장 근무, 업무와 상관없는 일의 지시, 여성 직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위계적인 회사 분위기 등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만 24세였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지만 우리 사회의 평범한 직장인들의 삶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행복한 삶을 가꾸어가는 것이 보장되고 격려받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과중한 업무 부담과 성과 위주의 사회시스템을 어떻게 개혁해 나갈 것인지 더 늦기 전에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긴 누군가의 몫을 빼앗고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