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인구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출생률이 사회문제화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중앙 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출산장려책을 제시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주요 정당이나 여러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도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제시하는 데 빠지지 않는 것이 결국 주거안정과 출산에 대한 재정지원책이다. 그 절박함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을 경제적 요인으로만 이해하면 근본적인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
구병모 장편소설『네 이웃의 식탁』(민음사,2018)은 ‘변화 없는 현실과 불편한 타자들’에 관한 소설이다. 변화 없는 현실이란, 여성의 사회적 책무가 여전히 미래의 노동력으로서 아이의 출산과 양육에 있다는 것, 더구나 아이의 양육은 거의 전부거나 아니라도 여성의 몫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그대로라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 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이웃 사이에 암묵적 위계를 통해 발생하는 피곤한 관계, 더구나 그것이 언제나 선을 넘을 듯 말 듯 애매모호한 말과 행동으로 접근해오는 이웃의 남성일 때 발생하는 참을 수 없는 불편함에 관한 것이다. 물론 그 불편함의 근원에는 언어라는 기호를 통해 수행되는 이데올로기적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독일 출생의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Maria Mies)는 그의 저서『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사람이 노동력으로 나타나는 생산적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는, 인구통제가 주된 문제가 될 때에만 오로지 가족과 노동력으로서의 여성에만 관심을 둔다.”고 말한다. 미즈의 경우, 자본주의는 가부장제 없이는 작동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여성 착취와 억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의 견해를 빌어 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우리의 몸과 삶에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강요로부터의 자유 곧 독립성의 문제야말로 소설 내 인물들의 삶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 여러 이유 중에서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주거 불안정이나 육아에 대한 어려움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미비가 더욱 문제가 아닐까 싶다. 유아 위탁시설이든 양부모나 심지어 친부모들에게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학대 혹은 살해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더 많은 지혜를 모으는 것이 출산장려금을 주겠다는 유인책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또 다른 문제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그만 끝내고 싶을 때, 죽음을 각오하면서 이별을 통보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기를 바란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살해’라는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관련 기사들이 미처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부모나 친족까지도 서슴없이 살해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도 추세처럼 보인다. 이 왜곡된 성과 인간에 대한 태도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관계를 맺고 헤어지는 각각의 사정에 대한 진실은 차치하고라도 분명한 것은 그러한 종류의 데이트 폭력과 살해, 가정폭력과 살해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아이 낳을 결심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만 유난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왜 우리 사회가 이처럼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바람직한 대안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정부든 지자체든 아무리 파격적인 출산장려금으로 유인해도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