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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26. 2021

무서워서 뉴스를 못 보겠다

세상은 아이에게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루는 회사 동기들과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뉴스며 포털 메인 화면을 도배하던 때. 동기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아동 학대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다들 이제 막 돌을 맞이했거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라 남의 일 같지 않았을 터.


 “엊그제 방송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 봤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M 형이 말했다.


 “도저히 끝까지는 못 보겠던데요. 근 몇 년간 봤던 영상 중에서 제일 끔찍하더라구요.”


 H 형이 몸서리를 치며 대답했다. 고작 16개월 먹은 아이였던 정인이는 복부 장기 파열로 죽음에 이르렀다.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지려면 얼마큼의 충격이 가해져야 하는지 실험을 해 봤는데, 소파에서 펄쩍 뛰어내려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를 밟아야지만 그 정도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H 형은 TV에서 재연되는 실험 장면을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끔찍한 장면에 절로 두 눈을 질끈 감게 되더라고.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경쟁에 따른 오보라고 밝혀졌지만, 부모의 방임으로 인해 어린 형제가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화재가 났던 ‘라면 형제’ 사건, 대낮 만취운전 사고로 인도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6살 꼬마 아이가 차에 치어 죽은 사건도. 그뿐 아니라 몇 해 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각종 아동 학대며 사건 사고들에 대한 기억이 줄을 지어 소환됐다. 그런데 말없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K 형. 일과 육아에 치여 사는지라 최근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단다.


 “나는 요즘에 뉴스를 안 봐. 퇴근하고 집에 가면 딸애들 둘이나 보느라 TV 볼 시간도 없어.”


 “저는 뉴스를 보긴 하는데, 요즘엔 아이하고 관련된 뉴스밖에 눈에 안 들어와요.”


 K 형의 말에 맞장구치며 말했다. 나 역시 요즘 바빠서 TV를 볼 시간이 없다고. 그나마 가끔 짬이 나서 TV를 틀면 이상하게도 아이와 관련된 뉴스만 눈에 들어왔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더니, 아이를 키우니 눈에 아이만 보이게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작년 5월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봤던 뉴스도 아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가정의 달’ 특집 기사였는데 조리원에서 학대를 당해 영구 장애가 생긴 신생아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걸 조리원에서 보고 있다니.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뉴스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방금까지도 웃으며 인사하던 조리사 쌤들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치고 죽는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고작 11개월 동안에도 아이에겐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잠자코 앉아 있다가 뒤로 자빠져서 바닥에 뒤통수를 쿵, 하고 부딪치는 건 흔한 일이다. 누워서 갖고 놀던 장난감이 얼굴에 떨어지는 바람에 다치기도 했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던 날도 있었다. 요즘엔 기어 다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책장이나 소파, 혹은 주변 사물들을 짚고 일어서는 아이. 두 다리만으로 서 있는 모습이 일견 대견하면서도 위험한 순간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일어서다가 책장 선반에 머리를 부딪치고 집 안 가구들의 모서리에 찍히기도 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다리 근육 때문인지 종종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기도 한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면서도 동시에 혹여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몸서리친다.


 아이를 키우기에 이 사회는 얼마나 안전할까.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14세 이하 아동 10만 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18년에 2.43명이다. 2011년에 4.21명이었던 수치가 꾸준히 감소하는 중이지만 연간 100~200명의 아이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질병이나 타살을 제외하고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만 세었는데도 그렇다. 사고 유형별로는 교통사고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매년 100명 안팎의 어린이가 차에 치여서 세상을 떠난 셈이다. OECD 국가들 중 경제력으로는 10위권이다 자랑하면서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순위는 작년 기준 21위에 그치고 있다. 그동안 뉴스에 나오지 않았던 민식이가 적어도 수십 명은 됐을 거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이나마 더 나아졌을까.


 비단 조심해야 할 게 자동차뿐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던 작년부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다. 엄격한 거리두기 탓에 출생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할 뻔했다. 전염병이 옮을 새라 모든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영아기를 무탈히 보냈다 하더라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종종 일어나는 학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CCTV에 녹화된 매 맞는 아이가 우리 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후에 학교에 입학하면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을 겪으며 고통받을 수도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에서 발표한 <2021년 자살 대책 팩트시트>에 따르면 자살 위험이 있어 관심을 가져야 할 집단으로 분류된 초중고 학생은 2019년에만 무려 8만 1,900명에 달한다. 남자아이다 보니 군대도 걱정이다. 멀쩡히 들어갔다가 멀쩡하지 않은 몸으로 나오는 게 군대 아니던가. 직장에서는 갑질, 아니, 취업부터가 쉽지 않을 터. 직장도 구하고 결혼도 시켰으면 자식을 다 키운 걸까. 글쎄, 그때가 되면 또 어떤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지. 일생에 걸쳐 세상에는 아이에게 위험한 것들 투성이다. 걱정도 많으면 병이라는데 아비 된 입장에서 걱정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아이 낳으면 얼마를 줄게, 따위 돈 몇 푼 쥐어주겠다는 정책에는 코웃음 치게 된다. 어른도 살기 힘든 ‘위험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라니. 그것도 아동 행복도가 국가별 순위에서 몇 년째 최하위권인 이 나라에서. 어쩌면 아이를 낳는다는 건 고난의 대물림이 아닌가, 하고 아이에게 미안해질 때가 있다. 정인이 사건의 보도 이후 SNS에서는 ‘정인아 미안해’라는 손팻말을 든 사진이 줄지어 이어졌다. 처음에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이 못내 고마웠다. 하지만 매일같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똑같은 게시물들을 보면서 거부감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미안하기는 한 걸까, 미안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걸까. 화풀이라는 유행에 동참하기 위한 ‘유희적’ 미안함의 행렬이 아닌가, 하고 의심됐다. 아내는 내 심보가 스크류바처럼 배배 꼬인 사람이라서 그렇단다.


 하염없이 미안해한다고 해서, 소리 높여 분노만 토해낸다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동 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 처벌 이전에 사건 사고 예방을 위한 의무 교육이나 공백 없는 제도 수립,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아동 센터 및 시민단체와 연계한 보호 체계 구축 등등. 지금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협의하고 행동에 나서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갈 참이다. 그동안 해 왔던 매월 말의 적십자사 기부나 유니세프의 물건 구매, 복지관 봉사활동 같은 것들 외에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운전하고 건널목에서는 무조건 한 번 멈추며, 아이에게는 조심하거나 지켜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동 주민센터에 생활 안전을 위한 정책들을 종종 건의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에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어둬야겠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아이의 팔다리에 멍이 들어 있거나 낯빛이 어둡지는 않은지, 윗집이나 옆집에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이상하진 않은지, 혹은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만나게 될 친구들의 옷차림이나 목소리와 행동이 어떠한지까지. 관심이 애정을, 애정이 변화를, 변화는 예전보다 나아진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결국, 아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과 다를 바 없을 거다.




아버지, 나를 잘 키우십시오ㅡ 라며 내게 삿대질을 하는 모습
날 울리지 마세요!
사방팔방으로 기어 다니고 뛰어 다닐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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