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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pr 23. 2021

아빠가 된다는 건 나를 잃어버린다는 걸까

쉿! 아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

 때는 어리바리 신입사원이었을 무렵. 당시 속해있던 부서에는 만화 <미생>의 오 과장처럼 눈이 항상 벌겋게 충혈된 선배 한 분이 계셨다. 매일 밤 이어지던 회식의 여파인지, 혹은 주말에 부업이라도 뛰는 건지. 어느 날엔 툭 건들면 눈에서 빨간 물이 주르륵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말을 건넸다.


 “과장님, 눈이 왜 그렇게 시뻘게지셨어요? 오늘 유독 심하신데요.”


 “아아. 어제 밤새도록 아들 과학 보고서 써 주느라고. 요즘에 이런 건 원래 부모가 다 해 주는 거야.”


 C 과장은 바람이 다 빠져가는 풍선인 양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초등학생 아들의 과제를 해 주느라 집에서도 쉴 시간이 없단다. 요즘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요한 시대라고 하더니만 학부모들은 그렇지 않는 듯. 인터넷 검색과 각종 참고 도서, 여유가 있는 집은 전문가와의 인터뷰까지 동원해가며 자기 자식의 과제를 대신하느라고 난리라고 했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을 보면 이게 초등학생이 쓴 건지 대학 교수가 쓴 논문인지 구분을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것들이 올라온다고. 과연 사교육이 횡행하는 나라답다.


 비단 과제뿐이랴. 평일에는 숙제며 수행평가를 도와주고, 주말에는 아이 손을 잡고서 박물관이니 미술관이니 하는 곳들을 인기 연예인의 빡빡한 스케줄마냥 쉼 없이 돌아다녀야 한단다.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라는 틀에 박힌 대사를 날리면서. 대체 왜 저러고 사는 건가 싶었다. 이건 마치 아이 뒷바라지만이 일생일대의 목표인, 소위 ‘종놈의 삶’이 아닌가.






그 후로 몇 년이 흘렀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이제야 그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기실 이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째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해라기보다는 체념과 순응, 포기 같은 단어들이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울 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시금 노동의 반복이다.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고 싶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얼른 씻고 나와서 밥을 씹는지 마시는지 모를 만큼 허겁지겁 삼킨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다시 육아의 세계로 출근. 이제 11개월을 지나 돌이 가까워진 아이는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집 안 모든 곳을 기어 다니고, 기는 게 지루해지면 주변의 아무거나를 붙잡고 일어서기도 하고, 요즘은 마치 등산하듯 소파 위로 낑낑거리며 기어 올라갈 때도 있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어느새 책장에서 책을 꺼내서 마구 흩어 놓기도 한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아이가 행여나 다치기라도 할까 봐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렇다 보니 내 비루한 육체는 만성피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하도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더니 도가니가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며칠 전엔 무릎 보호 밴드를 하나 샀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는데. 걱정되는 마음에 운동을 하겠답시고 거실에서 유튜브의 15분짜리 ‘홈 트레이닝’ 영상을 따라 해 봤는데 고작 5분 만에 꺼 버리고 말았다. 끝까지 따라갔다간 숨이 차서 쓰러질 것 같았다.


 당분간은 그동안의 모든 취미 생활과도 단절이다. 아이 없이 둘만 있을 땐 늦은 밤까지 거실에서 음악을 들었더랬다. 주말이면 회현 지하상가 중고 LP숍에서 숨은 명반들을 디깅하고, 새벽까지 심야 방송과 해외의 인터넷 라디오도 찾아 듣곤 했다.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손으로 쥐었다 폈다에 어느덧 능숙해진 아이는 서랍장에 꽂아 둔 LP판과 CD를 마구 집어 꺼낸다. 아차, 하는 사이에 소중한 컬렉션 몇 개가 박살나버렸다. 키가 부쩍 크더니만 이제는 오디오 본체를 노리고 손을 뻗는다. 아내와 함께 극장에서 마블 영화 보기, SNS에서 인기라는 맛집이며 카페, 맥줏집 다니기, 계절마다 훌쩍 떠나던 국내와 해외여행까지. 이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매년 봄이면 창덕궁에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를 보러 갔었다. 일찌감치 예매를 해서 후원을 한참 동안 걷고,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아서 좋아라 하는 소박한 분위기의 낙선재를 톺아보고, 정전인 인정전 내부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매화나무를 감상하는 게 이 계절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안은 채 처음으로 들렀던 창덕궁은 예전의 봄과는 달랐다. 아이에게 위험하지 않은 길로, 아이가 피곤하지 않을 만큼의 짧은 거리만, 시선은 아이를 향해 고정한 채로 걷다가, 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금방 차로 돌아왔다. 홍매화는 자세히 봐야 예쁜데 언감생심, 스치듯 안녕이었다.


 이렇게 요즈음의 모든 사건과 행동과 관심은 아이가 우선이다. 먹는 것도, 나가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아이가 먼저, 그 다음이 아내와 나의 차례이다. 아이는 정해져 있는 거대한 상수값이고 나머지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 대해서만 자유가 허락된다. 이렇듯 내 의지로 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게 정말 ‘나의 삶’이 맞는 걸까. 육체적 고통의 토로나 취미 생활의 단절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서,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대로 된 아빠가 맞는가, 아빠이면서 나라는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이런 것도 못하다니 그동안 제대로 살아왔는가,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다른 아빠들은 마치 돌아온 ‘슈퍼맨’처럼 잘 하던데,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여태껏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존재론적 죄책감에 빠진다. 건실하게 직장생활도 버텨내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누가 보더라도 주어진 '사회적 책무'를 충실하게 이행한 삶이었건만. 롤플레잉 게임으로 치면 자유의지가 넘치는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동네 어귀에 서 있는 한낱 NPC 중 하나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


 이쯤 되면 20세기 청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외쳐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나다운 게 뭔데!”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녀석이 우리 삶의 궤도에 갑작스레 끼어든 커다란 바윗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참말로 멋지고 근사하게 생긴 돌멩이긴 하다. 허나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탓에 앞으로 나아가려면 한참을 돌아서 가거나 아예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늦은 밤까지 잠에 들지 않는 아이와 놀아주다 기진맥진해진 채 앉아 있으면 머릿속에 아이를 권유하던 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더니, 다들 그렇게나 아이가 있는 삶이 좋다면서 나를 유혹하고 설득했었다. 아이가 셋인 Y 선배는 낳아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좋은 세상인지 나쁜 세상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뿔싸, 당했구나. 현란한 말발의 약장수에게 당해서 나도 모르게 만병통치약 한 박스를 받아 온 시골 영감님이 된 기분이다.


 그렇게 한참을 후회와 의문과 철학적 고민의 늪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념을 떨쳐냈다. 까르르 웃는 잘생긴 돌멩이, 아니, 아이 얼굴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왔으니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나 맑고 티 없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종의 소리가 이럴까. 웃음소리뿐 아니라 얼굴이 뽀얗고 보드라운 것이 생긴 것도 봐줄 만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지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참말로 잘 생기고 귀엽다. 바라보고 있는다고 약장수의 말처럼 만병이 통치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다. 이 정도면 내 삶을 조금은 희생해도 될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진 아이가 주는 효용보다 내 삶의 희생이 더 크게 느껴지니,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까지는 꽤나 멀었다.






 엊그제는 동기들과 밥을 먹고 회사 앞 산책로를 걸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이 예찬론을 펼치고 있는 나. 내내 육아에 대한 고통만을 얘기했었지만 본심으로는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던 걸까.


 “아이가 없었으면 저는 뭐 하면서 지냈을까요?”


 아이를 키우기 전, 둘만 있을 땐 매일같이 비슷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소파에 누워서 각자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고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까무룩 잠들곤 했다. 주말에는 남들처럼 소위 핫하다는 카페며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사진을 찍곤 했다. 그다지 의미 있던 삶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으니 왠지 예전보다는 조금 더 ‘유의미한’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명의 인간을 만들어내고 발달시켜 나가는 건 보람찬 일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은 뭘 하고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등의 말을 덧붙였다.


 “아니,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M 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이를 그렇게나 싫어하던 네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는 놀람과 함께 너도 이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묘한 동지 의식이 섞여있는 표정이었다. 역시나 20세기 청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다시 외쳐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나다운 게 뭔데요! 예전의 나는 어땠는데요!”


 그래도 아직까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은 아이 얼굴로 바꿔놓지 않았다. 부모가 되면 으레 SNS를 아기 사진으로 도배를 하던데 그런 흔한 부모가 되기는 싫었다. 자기소개할 때 “저는 진이 아버지입니다.” 따위 말을 하는 것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에 매몰되어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겠다는 실존주의적 몸부림이다. 물론 이런 덧없는 저항이 얼마나 더 갈지는 모르겠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만큼 아들 녀석이 너무 귀엽고 잘생겨서, 나의 취향이고 습관이고 가치관이고 뭐고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설마. 내 눈에만 예뻐 보이는 건가.




아들 녀석이 LP판과 CD를 깨 먹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오디오를 노린다
이거 다 내 거야. 아무도 건들지 마
아이 맞춤 코스로 봄의 궁궐 나들이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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