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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21. 2021

첫니가 나려고 간밤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벌써 일 년, 아이의 돌을 맞이하며

 통잠이라는 거 별것 아니더구먼. 이제 갓 부모가 된 사람들은 왜 다들 아이 잠 때문에 고생하는 거지. 우리 아이는 백일 즈음부터 통잠을 자던데. 아마도 잠이 많은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봐요.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눕히기만 하면 채 5분도 안 돼서 잠에 빠져드는 사람이었다. 한 번 잠에 들면 바로 옆에서 흘러간 90년대 댄스 가요 리믹스를 틀어놓고 층간소음 따위 신경쓰지 않고 쿵짝쿵짝 춤을 춰도 모를 만큼 깊은 잠을 자는, 그런 사람. 정말 아빠를 닮아서인가. 여느 아이와는 달리 일찌감치 하루 저녁에 여덟, 아홉 시간씩 쭈욱 잠을 자 주는 아이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아이가 자꾸만 오밤중에 깨기 시작했다. 그날도 갑자기 벼락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저 눈을 반쯤 뜨고서 칭얼거리는 게 아니라 송곳처럼 귓구멍을 후벼 파는 비명과 비슷한 소리였다. 놀란 마음에 비몽사몽 간에 머리맡의 안경을 더듬거려 찾아 쓰고 아이 침대로 바삐 달려갔다. 울부짖는 아이를 서둘러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한참을 토닥거리며 아이를 달랬다. 울음소리는 점차 잦아들더니 다시금 평온한 적막이 찾아왔다. 잠든 아이를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고 까치발로 살금살금 방을 나가려는데, 아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만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또다시 운다. 나라 잃은 설움이 북받친 우국지사처럼 통곡을 한다. 그렇게 날이 새도록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고생했다. 최근에 없던 일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달래도 울음이 잦아들지 않고, 간신히 재웠더니 금방 깨서 우는 이유가. 쪽쪽이도 입에 잘 물고 있고, 아랫도리를 만져 보니 기저귀 갈 때도 아니고, 밥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지라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혹시나 해서 체온계를 대 봤지만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연유를 몰랐지만 어찌저찌 다시 아이를 꿈나라로 반송시키기는 했다. 1년가량의 육아 기간이 무색하게도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육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통잠이 어쩌니, 이 정도면 할 만하니, 하며 아는 척을 했었구나. 그동안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보는 이도 없는데 괜히 민망해졌다.


 전쟁 같은 지난밤을 보내고 난 뒤 아침. 아이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데 낯선 모양새로 입을 오물거리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입 안을 자세히 살펴보고 손가락까지 넣어 봤더니 비 온 뒤 죽순처럼 빼꼼 돋아난 이가 만져졌다. 생글생글 웃는데 어젯밤과 달리 아랫니 하나가 하얗게 돋아난 게 이제사 눈으로도 보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운’ 것처럼, 첫니가 돋아 나려고 간밤에 그리도 울었던 게로구나.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생경한 감촉이 밤잠을 설치게 했을 터. 요즘 들어 자꾸 칭얼거리고 밥도 잘 안 먹고 침을 많이 흘렸던 게 이앓이를 하느라고 그랬던 것이었다. 보통 6개월 전후로 첫니가 난다던데, 우리 아이는 왜 이가 안 나는 걸까, 그동안 계속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비로소 하얀 이를 영접하는 순간. 태어난 지 336일째 되는 날이었다.


 첫니를 만나고 한 달여가 지난 5월 2일, 드디어 아이의 첫 돌을 맞았다. 이제 이는 아래위 각각 2개씩, 총 4개가 보인다. 입을 활짝 벌리고 웃을 때마다 듬성듬성 나 있는 이들의 모양새가 우습다. 이가 비어있는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 숭숭 새어 나올 것 같다. 어렸을 때 이를 뽑은 아이에게 어르신들이 ‘이빨 빠진 개우지’라며 놀리시던 말도 생각났다. 그렇게 놀려주고플 만큼 귀여운 모습이다. 그런데 아내에게 말했더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란다. 대체 개우지가 무슨 뜻이냐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경상도에서 ‘범의 새끼’를 이르는 말일 거라 대답해줬다. 이게 서울 사람은 모르는 사투리였구나. 아이의 첫니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를 뻔했다.


 비단 첫니뿐이랴. 코로나 19라는 역병 때문에 돌맞이 잔치도 못했건만 아이는 벌써 이렇게나 자랐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땐 자기 고개를 가누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던 것이 이제는 걸을 채비를 한다. 언제부턴가 고개를 빳빳이 세우더니 혼자서 뒤집기를 했다. 뒤집자마자 기어가기를 시작했고 기는 걸로는 성에 안 차 하더니만 어느 날부터는 주변의 물건들을 잡고 일어섰다. 요즘엔 바퀴 달린 보행기를 잡고서 한 발 두 발 걸음마를 시도한다. 종종 보행기에서 손을 떼고 두 발로만 서서 균형 잡기 연습을 한다. 남사당패 외줄 타기 하듯 두 팔을 휘휘 저어가며 똑바로 서려고 애를 쓴다. 어 어 어 어라, 아이쿠.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이가 쓰러지려 하면 재빠르게 잡아준다.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두 발 자전거를 연습하는 아이를 도와주는 모양새 같다. 몇 년 후의 일을 미리 연습하는 셈 치자.


 한 번에 고작 분유 20ml씩 먹던 게 다였는데 이제는 이유식을 먹는다. 분유 가루에 물을 탄 음식 따위가 아니라, 쌀에다가 각종 고기와 채소들을 다져 넣은 죽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식욕도 왕성해서 매 끼마다 100ml짜리 통에 든 걸 모두 해치운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후식으로 과일도 먹고, 간식으로 치즈나 요거트, 쌀 튀밥 과자 같은 것들도 계속 먹는다. 자기 전엔 야식(?)으로 분유 240ml를 꿀꺽꿀꺽 마셔줘야 한다. 이제 곧 이유식도 졸업하고서 밥과 국으로 된 유아식을 먹을 날이 머지않았다. 숟가락질 준비도 해야겠다. 잘 먹으니 좋긴 한데, 매일같이 아이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해야 하니 아내는 영 죽을 맛이다. 분유 먹일 때가 좋았지, 하면서 한숨을 쉬곤 한다.


 빠빠, 엄마, 맘마와 까까, 빠이빠이 같은 단어들을 알아듣고 제 입으로 말하기도 한다. 요즘엔 빠빠를 넘어서서 제법 정확하게 ‘아빠’라는 소리를 낸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아빠라고 부르는데,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더 잘하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를 승리감에 도취된다. 정작 아내는 그러든가 말든가 착각은 자유지, 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실상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모르겠는데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이거라고 소리친다. 에듀볼 장난감을 향해 이거, 턴테이블 옆에 올려진 피규어들을 보며 이거, 원숭이 인형을 가리키며 이거, 식탁 위의 과자 봉지를 향해 이거. 그럴 때마다 아이를 안고서 그쪽으로 가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벼락같은 울음소리로 즉각적인 응징을 내린다.


 아이는 지도 벌써 남자라고 TV에 여자 연예인이 나오면 헤벌쭉하게 입을 벌리고서 쳐다본다. 가장 좋아하는 여자는 걸스데이 혜리. 부동산 어플 광고가 나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금세 TV 앞으로 기어 온다. 곧이어 혜리가 “다방!”이라고 외치면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는다. 혜리만큼이나 자동차도 좋아한다. 산책을 나가면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느라고 상모 돌리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남자아이라서 정말 자동차 따위를 좋아하는구나. 그러다가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 아래의 바퀴가 굴러가는 걸 유심히 살펴본다는 것을. 자동차 바퀴, 자전거 바퀴, 심지어 집에 있는 보행기와 미니 바이크의 바퀴까지. 이제는 뭐든 둥글게 생긴 건 무조건 굴리려는 버릇이 생겼다. 88 올림픽 때였으면 ‘굴렁쇠 소년’ 선발 대회라도 내보냈을 게다. 이렇게 본인의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요즘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건 블록들이 담겨 있는 구체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이다. 두 개의 반구로 분리되는 속이 빈 공 안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 별 모양 등의 블록들이 담겨있는 장난감. 반구들의 표면에는 블록을 집어넣을 수 있게 각각의 모양과 똑같이 생긴 구멍이 나 있다. 각기 모양에 맞는 블록을 집어넣으면서 모양에 대한 인지능력을 키우게 하는 거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공을 그저 굴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공이 두 개의 반구로 쪼개진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손에 힘이 없어서 우리처럼 공을 비틀어서 분리하지는 못했다. 공을 열기 위해 한참을 씨름하던 아이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다. 두 손으로 마구 돌리다 보면 박이 쪼개지듯 공이 열리면서 블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 그렇게 공을 굴리기만 하면서 갖고 놀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동그라미, 세모, 네모, 별 모양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듯했다. 주로 동그라미 블록을 손에 쥐고 흔든다. 두어 달 전 쯤엔 드디어 동그라미 구멍에 동그라미 블록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뭔가 해냈다는 듯 기쁜 얼굴로 들썩들썩 춤을 추는 아이. 최근에는 더욱 발전했다. 세모와 별표 블록도 제 모양에 맞는 구멍에 쏙쏙 집어넣고, 맞지 않는 구멍에 블록을 집어넣으려다 안 되면 반구를 돌려가면서 맞는 구멍을 찾아낸다. 그전엔 동그라미 구멍에 별표 블록을 억지로 집어넣으려다 실패하면 짜증을 내고서 블록을 집어 던져버리던 것이, 참 많이도 발전했다.


 인간의 발달이라는 걸 책에서나 배웠지, 실제로 눈앞에서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이 성장하는구나. 가르쳐 주지도 않았던 걸 스스로 익혀가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한 생명체에게서 정신 세계의 확장이 일어나고 영혼의 고유함을 갖추게 되는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인간 역시 유물론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건 결국 정교하게 짜인 기계와 별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유물론이든 관념론이든 철 지난 사상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아이는 이렇게 점점 성장하는 중이다. 반면에 나는 좋은 아빠로 성장하고 있기는 한 걸까. 엊그제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내버렸다. 이유식을 먹이던 중이었다. 아기의자에 앉아있기 싫다며 자꾸 탈출을 시도하길래 결국 바닥에 앉혔다. 숟가락을 들이밀었더니 한 번은 받아먹고 두 번째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장난감을 향해 기어간다. 허겁지겁 따라가서 다시 입에다 넣어주고 그 짓을 계속 반복. 그마저도 싫다고 입에 든 걸 사방팔방으로 뱉어내질 않나, 갑작스레 으앙 하고 울질 않나, 숟가락을 쳐서 날아가 버리게까지 하니. 성이 안 날 수가 없다. 인상을 쓰고 큰 소리를 내면서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말귀도 알아듣지 못할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짜증 내지 마. 진이가 보고 배운단 말이야.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면 안 돼.”


 하지만 아내 역시 다음날 저녁을 먹이다가 화를 낸 듯했다. 아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아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입을 꾹 닫고 거칠게 숨을 씨근덕거리며 말없이 아이에게 밥숟가락만 거친 손놀림으로 건네준다. 그렇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인데 얌전히 밥을 먹고 있을 리 없지. 분명 난리를 쳤을 게다. 다 이해한다는 듯 아내에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도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래도 화내면 안 돼. 아이가 보고 배운단 말이야.


 아이를 낳은 뒤 쉴 새 없이 육아 전선에서 고군분투한 지 어느덧 1년.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쉬이 지치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아이에게 닮고 싶은 아빠의 모습보다는 못난 아빠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아내 역시 본인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며 한숨 쉬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만 간다. 아무래도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미성숙한 존재인가 보다. 우리도 낼모레면 불혹의 나이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나.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하고, 불안하게 흔들거리지 않게 해야지. 나도 아내도, 언제 다 커서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는 훌륭한 어른이 될는지. 아들과 함께 우리도 더 자라야겠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것이 바로 돌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다.




건치 미소
조만간 걸을 테야
책에 나온 자전거 그림을 보더니만 거실에 세워 둔 미니 자전거를 가리킨다
모양에 맞춰 블록을 끼워 넣는다
요즘 돌 사진은 어찌나 예쁘게 찍어 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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