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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l 06. 2021

동생 걱정일랑 하지를 말어

거제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5년 7월)

동생의 요리 실력은 제법이었다




 2015년 여름. 다음 해 초에 있을 결혼식을 앞두고서, 예비 아내를 제외한 '아직까지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을 가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이제 곧 아내가 될 여자 친구에게 합류하겠냐고 물었지만 당연히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떠나게 된 2박 3일의 여행.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니 기왕이면 해외로 그게 어려우면 바다 건너 제주도라도 갔으면 했는데, 직장생활을 이제 시작한 동생이 워낙 바쁜지라 멀리 나가기가 어려웠다. 결국 결정 곳은 동생의 일터가 있는 거제였다.


 여행 전에 진주 고향집에 들렀다. 부모님이 꾸린 행장을 보니 초등학생 때 거제 몽돌해수욕장으로 갔던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찾아봤더니 그때의 기억은 빛바랜 필름 사진으로 갈무리되어 앨범 한구석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싸구려 플라스틱 선글라스를 제법 폼나게 쓰고 튜브를 몸에 끼고서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장면 같은 것들. 어린 나도, 3살 더 어린 동생도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부모님도 지금과는 달리 주름 하나 없고 달뜬 얼굴들이시다. 사진에는 묘한 힘이 있는지라 앨범을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양 생생하게 그때가 환기됐다. 헤엄치던 중 갑작스러운 파도 때문에 입에 가득 머금게 된 짭조름한 바닷물의 내음, 여름 햇볕에 바싹 익어 뜨거우면서도 매끈매끈하게 손끝을 간질이던 몽돌의 촉감, 집으로 돌아오던 차 뒷좌석에 앉아서 듣던 김종서의 시끄러운 노랫소리까지. 이런 눈 코 입 귀와 손끝의 기억들이 어떻게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들른 남해안의 바다. 여름의 바다에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우리 가족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람선을 타고서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의 절경도 구경하고, 외도에 들러 각양각색의 이국적인 화초들에 감탄하고, 신선한 회와 매운탕으로 배도 잔뜩 불리고, 오후의 햇살에 반짝거리는 바다의 윤슬을 넋을 잃고 함께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덧 노을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등지고서 백사장 산책을 하며 이야기도 나눴다. 여행의 묘사가 매일 먹는 쌀밥처럼 식상한 건 아마도 평범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게다.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에서도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가족 여행이라는 건 거의 10여 년 만이었다. 남자아이라면 으레, 사춘기가 오는 중학생 즈음부터 부모님과 뭔가 함께하는 걸 싫어하게 된다. 친구가 뭐가 그리 좋은지 자나 깨나 친구 우정 의리 따위 타령을 하느라 바쁘다. 친구들이 뭐 하나 해 준 것도 없는데 왜 그리도 친구들하고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을까. 부모님하고 함께 다니면 괜히 나를 어리게 생각할까 봐, 그래서 얕잡아 보일까 봐 그랬지 싶다. 그땐 왜 그리도 빨리 어른인 척하고 싶었는지. 채 여물지도 않은 것들이 다 자란 양 흉내를 내고 다니는 꼴이었다. 뒤늦게나마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좀 더 일찍, 더 자주, 가족 여행을 함께 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저녁에 숙소로 들어오니 배가 고팠다. 어머니께서 요리를 하시려는데 동생이 앞을 막아선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늘은 자기 차례라고 한다.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아니, 맛있는 걸 차려주는 요리사가 되겠다면서 큰소리를 친다. 제가 요리의 고수가 되었단다. 뭘 믿고 저러는 거지. 하긴 동생도 대학 입학 때부터 홀로 객지에 나가 살았으니 어느덧 자취 경력 10년 차의 경지에 이르렀다. 저 어린것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혼자서 잘 해내고 있다. 그러니까 속는 셈 치고 한 번 믿어본다. 믿고 맡겼더니 나름 자취 요리 고수께서 돼지고기며 김치에 이런저런 장들을 넣어 뚝딱뚝딱 지지고 볶고 하면서 꽤나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름하야 '사천식 돼지고기 볶음'이라는데 한 입 떠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이거 진짜인데 진짜. 낯선 동네의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처럼 동생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내가 알던 동생이 맞는지 왠지 낯설다.


 동생의 요리를 잠자코 먹기나 할 것이지 괜히 거들먹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마, 기억나나? 행님이 어릴 때 니 해 먹인다고 '꼬마 요리사 노희지' 보믄서 빵도 만들고 아이스크림도 해 주고 팬케이크 같은 것도 꾸워 줬던 거. 그때 잘 멕인 보람이 있다이. 제법 하네 진짜로."

 "그땐 먹을 게 없으니께 죽지 몬해서 먹었지. 지금 먹으라믄 그걸 우째 묵노, 사람 먹을 만한 기 아니었다 그거는."

 동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괜히 말했다 싶었다. 기껏 정성스레 먹이고 키웠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렇다.


 이러니 동생 키워봤자 헛일이다.


 어머니께서도 옛날 이야기 삼매경을 거드셨다. 가족들이 모이면 종종 하시는 말씀인데 이번에도 또 하신다. 마음이 무척 아프셨다면서도 자꾸 이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와 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께선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는 늘 나와 동생 둘만 남아 있었다. 우리 둘은 형제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서로의 보호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크게 다쳤다. 다행히 그날 근무가 없던 날이어서 집에 계셨던 어머니와 함께 귀가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며 울고 있는 동생을 허겁지겁 병원으로 데려갔다. 나는 어렸던지라 밖에서 기다리고 어머니께서 동생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가셨다. 급 부분 마취를 하고 귀를 꿰매는데 목청 좋은 동생이 고래고래 아프다며 악을 쓰며 울었다. 병실 밖에까지 다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우는 와중에 동생은 '엄마'가 아니라 '행님'을 찾았다. 엄마는 회사 가느라 만날 집에도 없었으면서 지금 뭐하러 여기 있냐면서. 울면서 형을 찾았더란다.

 "엄마 싫다! 행님 들어오라케라! 행님아!"


 이러니 아들 키워봤자 헛일이다.


 그랬던 동생이 잘 자라 줬으니 퍽 대견하다. 혼자서 대학도 무탈하게 졸업하고, 매일 운동하며 몸 관리도 철저하고, 사회생활도 성실하게 하면서, 무엇보다 요리도 참 잘하게 됐다. 똑같이 자취를 10년 넘게 했던 나는 스승님인 꼬마 요리사 노희지의 가르침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북엇국의 간을 맞춘답시고 참기름 따위를 콸콸 쏟아붓곤 하는데 말이다. 동생을 둔 나 같은 형이나 오빠, 혹은 누나나 언니들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염려하는 에 비해 동생들은 더 대단하며 알아서들 잘 자라는 존재들이니까. 혹여나 동생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동생이 누굴 보면서 자랐겠나, 본인이 어떠한지부터 우선 돌이켜 생각해 볼 일이다. 여하튼 나의 동생에겐 그저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밖엔 할 게 없다.


 아니, 그런데 마냥 고마운 건 아니고, 이거 곱씹을수록 적이 괘씸하다. 내가 그 어린 나이에 두꺼운 요리책까지 펼쳐놓고 공부해가면서 그렇게나 잘 먹여 키웠는데. 그걸 죽지 못해 억지로 입에 넣었다고 기억하고 있다니. 이게 키워 준 형님한테 할 말인가. 짜아식이 말이야.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거제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5 7월, 가족들과 함께한 거제에서)

거제 와현해수욕장 전경
바닷가에서 발견한 게 한 마리
거제 외도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거제 외도 전경



(20198월, 아내와 단둘이 함께한 거제에서)

해금강 유람선을 타고
거제 바람의 언덕에서
고운 자태를 자랑하던 거제 몽돌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눈부시던 남해 바다 (by Canon QL17 g3 필름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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