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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ug 21. 2021

돼지국밥 맛집 찾아 삼만 리

부산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6년 5월)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뜨끈한 돼지국밥이 생각난다.




 "우웩. 돼지국밥? 그게 뭐야. 그런 걸 왜 먹는 건데."


 아내와 연애하던 무렵, '돼지국밥'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꺼내자마자 강렬한 거부반응에 맞닥뜨렸다.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돼지국밥이라는 음식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던 사람. 경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음식의 이름부터 낯설게 들리나 보다. 혹시나 '돼지고기가 들어간 탕국', 이 아니라 '돼지들한테 먹이는 풀죽' 같은 걸 상상하게 되는 걸까. 그러고 보면 돼지국밥이라는 이름의 조어법이 이상하기는 하다. 삼겹살 구이, 소머리 국밥, 돼지갈비찜, 도가니탕 따위처럼 재료의 어느 부위를 특정하지 않고 그저 돼지라는 가축 이름에다가 국밥이라는 요리명을 붙여놨다. 돼지국밥이라는 단어만 들어서는 이게 대체 돼지의 어디를 어떻게 했다는 건지, 돼지에게 먹이는 건지 사람이 먹는 건지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개화기 위정척사파라도 된 양 완강한 거부의 표정을 짓고 있던 아내의 오해를 풀기 위해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내 오늘 기필코 자네의 굳게 걸어 잠근 빗장을 풀고 '신문물'의 짜릿한 맛을 느끼게 해 주리라.

 "아니, 이거 절대 이상한 거 아니고 너네 서울 사람들이 먹는 순댓국하고 비슷한 거야. 순댓국에서 순대만 빼고 나면 돼지국밥하고 얼추 비슷해."

 "진짜야? 확실하지? 먹어보고 이상한 거면 죽는다."

 고작 점심 한 끼 때문에 목숨을 걸게 됐다. 아직 앞길이 구만리인 청춘인데 이렇게 쉽게 생을 저버릴 순 없다. 국밥집으로 가는 내내 별것 없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문제의 음식에 대한 좋은 상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소위 국밥플레인이었다. 그러니까 이 음식은 말이지, 돼지 뼈를 우려낸 진한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말아먹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물인 향토 음식으로서, 여하튼 거 한 번 잡숴보면 뻑 갈 것이외다, 나 이 사람 맛있는 거 좋아하는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


 아내는 국밥집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는 그 순간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 두 그릇이 나왔다. 콧속으로 냄새가 일부 스며들자 아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잘 끓인 돼지국밥은 진한 냄새부터 이미 사람을 홀리는 법이다. 첫 숟갈에는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가, 다대기와 부추를 잔뜩 집어넣은 두 번째 숟갈부터는 어라, 하고 놀라더니 어느새부턴가 이거 정말 맛있다면서 성마르게 수저를 놀린다. 이마에서 땀까지 주르륵 흘려대며 정신없이 먹는다. 이제 내 명줄에는 문제가 없리라는 걸 확했다.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거 봐, 내가 맛있을 거라고 했지? 서울 촌놈 같으니라고."

 "그러게. 괜찮네. 먹을 만하다. 오늘은 살려 주마."

 둘 다 뚝배기 그릇 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싹싹 긁어먹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였다.


 그날 이후,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아내가 먼저 돼지국밥 타령을 한다. 날도 추워졌는데 국밥 한 그릇? 비단 손이 곱은 계절뿐만이 아니다. 찜통 같은 더위에 몸이 지치니까 국밥 한 그릇? 날씨 좋은 봄가을에는 걷기 좋으니까 산책하고 나서 국밥 한 그릇? 그렇게 사시사철 이 음식을 즐겨 먹게 됐다. 그렇게 생각날 때마다 집 가까이에 있는 홍대 앞 체인 국밥집 간다. 자리에 앉아 각자 국밥 한 그릇, 그리고 장수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신다. 다음 코스는 홍대 CGV로 가서 영화를 보는 건데, 돼지고기와 부추와 막걸리를 먹었으니 트림이 나오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있나. 참을 수 있을 만큼 참다가 종내에는 숨죽여서 끄윽 트림을 하는데 입을 틀어막아도 누릿한 냄새 부스러들이 스며 나온다. 고약한 냄새가 느껴질 때마다 아내와 나는 남몰래 얼굴을 마주 본다. 이번에는 너였구나, 아까는 나였어. 이해한다는 양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를 교환한다. 그때 우리 양 옆에 앉았다는 이유로 까닭모를 불쾌한 냄새를 맡아야만 했던 관객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아내는 이제 서울 사람의 음식인 순댓국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니, 잊은 걸 넘어서 여러모로 순댓국보다는 돼지국밥이 훨씬 더 낫지 않느냐는 걸 보니 나보다 더 돼지국밥의 열렬한 숭배자가 된 듯하다. 눈 먼 장님이라도 된 듯 일방적이고 지극한 사랑을 쏟아 붓는다. 흡사 혁명의 전위를 이끌던 운동권 극좌들이, 전향한 이후에는 자신이 그동안 속했던 집단을 부정하고 그동안 투쟁의 대상이었던 극우의 편에 서는, 그런 기묘한 광경을 보는 것 같달까. 의외로 쉽게 돼지국밥의 세계로 귀순시킨 아내와 함께 서울의 이런저런 국밥집을 찾아다녔다. 유명한 집도, 오래된 집도, 누군가 소개해 준 집도 가 봤지만 우리 입맛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돼지 누린내가 심하지 않아야 하고, 구수함보다는 시원함이 강한 밀양식은 별로, 국물요니까 곁들여 나오는 김치와 깍두기는 당연히 괜찮아야 하며, 부추는 넉넉하게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이런저런 걸 따지다 보니 생각보다 우리 마음에 꼭 들어서 단골로 삼을 만한 가게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저 가깝다는 이유로 체인점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다.


 부산에 여행 갔을 때도 맛있는 돼지국밥집을 찾아 헤맸다. 부산, 하면 역시 돼지국밥과 밀면인데 아내는 밀면 따위는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이라며 오로지 국밥 외길을 걸으려 했다. 어느 날엔 부산 서면에 있는 돼지국밥 거리를 찾아갔다.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면 첫 번째로 나오는 유서 깊은 국밥집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어차피 그 집이 그 집이겠거니 하고 아무 데나 가까운 데로 골라서 들어섰다. 하지만 오리지널 부산의 맛은 그동안 잔뜩 기대한 것에 비해 별로였다. 어째 홍대 앞에 있는 국밥 체인점보다 맛이 못한데.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한 숟갈 뜨고는 아내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일에야 알게 됐다. 부산 출신 친구나 후배들한테 물어보니 정작 부산 사람들은 서면 국밥 골목 같은 델 가질 않는다고. 어차피 집 앞에 단골집이 하나 둘쯤은 있기 마련이라 굳이 거기까지 찾아갈 일이 없다고 한다. 돼지국밥에 조예가 깊은 부산 출신 후배 K는 유독 안타까워했다.

 "아, 슨배님. 스면 같은 데는 외지인들이나 가는 뎁니더. 븟싼 사람들은 안 가예, 그런 데."


 여태껏 먹어 본 돼지국밥 중 최고는 어디였을까. 고등학생 때 학교 앞 가게에서 시켜먹던 국밥이 듯싶다. 나뭇잎이 벌겋게 물드는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올 때 즈음, 싸늘한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 있다. 추워진 공기 때문에 반팔 옷 너머로 드러난 팔뚝에 닭살이 돋는 날. 이런 날은 딱히 약속한 것도 아닌데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하나둘씩 친구들이 모인다. 이심전심이었다.

 "오늘 쪼매 쌀쌀한데. 역시 이런 날은 국밥 아이가?"

 "야야,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주문해야 된다이. 4교시 끝나고 주문하믄 배달 늦어서 몬 묵는다."

 "국밥 묵을 사람 손! 하나 두이 서이 너이 다슷."

 그렇 국밥을 꼭 먹어야만 하는 날이 있다. 적으면 네댓, 많은 날엔 열댓 명까지 합심해서 국밥집에 주문을 넣었다. 아무리 늦어도 4교시 시작 전엔 주문을 해야 했다. 점심시간 때가 닥쳐서야 전화하면 배달이 밀려 오래 걸리는 데다 도착할 때 즈음이면 먹을 시간이 남질 않았다.


 전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매불망 기다리던 배달 오토바이 도착. 철가방을 통째로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 비가 들지 않는 체육관 지붕 아래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국밥은 교실에서 먹으면 냄새가 도통 빠져나가질 않으니 바깥서 먹어야 한다. 자기 차지의 뜨끈한 뚝배기를 하나씩 고 자리에 앉는다. 먹기 전엔 당연히 부추(경상도 지역에서는 '정구지'라 부른다)를 잔뜩 넣어줘야 제맛이다. 비 내리는 추운 날이라 팔뚝이며,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맨발에도 소름이 슬몃 돋았지만, 국물 한 모금이면 속에서부터 뜨끈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르르 퍼져 나간다. 이제부터는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바람이 불어서 춥건 별무소용으로 걸신들린 듯 국밥을 퍼 먹게 된다. 까이꺼 추위 따위. 정신을 차려보면 얼굴이며 등짝이며 온몸에 땀이 흥건하고, 배도 부르고, 입에선 달큼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뚝배기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깨끗하다. 그렇게 배불리 먹은 다음 5교시엔 늘 졸았다. 졸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그때만큼 맛있는 돼지국밥을 또 먹을 수 있을까. 제깟 게 인생을 몇 년이나 살았다고 마치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처럼 그때 그 맛을 그리워했다. 다행히도 환상은 금방 깨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 오랜만에 모교 앞 국밥집에 들렀을 때였다. 항상 배달만 시켰었지 매장에서 직접 먹는 건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국밥을 먹는데, 이건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 먹던 맛이 아니었다. 혹시 사장님이 바뀌셨나. 이상하다 이상해. 혼자서 속으로 한참이나 구시렁거렸다. 식사를 마치고서 실망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서는데 한 번 더 실망했다. 내가 알던 국밥 가격이 아니었다. 괜히 사장님께 툴툴거렸다.

 "사장님, 가격이 올랐심니꺼? 학생일 때는 5천원이었던 거 같은데예."

 "에이그. 학생은 5천원, 성인은 6천원입니더."

 그날, 더이상 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추억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맛의 감각도 잃었고, 지갑에서 애꿎은 천 원짜리하나 더 잃었다. 지난 추억은 억의 서랍장에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 둔 채로 남겨둘 때 아름다운 것이었다. 함부로 잘못 꺼냈다간 온전한 형태를 잃고 곧바로 산화하고 부패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어디선가에서 정말 맛있는 인생 돼지국밥을 또 한 번 만날 날이 있지 않을까. 다음번 부산여행 때 기대해 봐야겠다. 그땐 진짜 부산사람에게 제대로 된 맛집을 물어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산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6 5월, 부산에서)

내리자마자 바다 짠내가 코를 가득 채우는 부산역


해운대 바다


롯데 자이언츠의 마햄을 추억하며


부산 서면 돼지국밥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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