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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n 14. 2018

개미와 베짱이의 삶 사이에서

경주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6년 6월)

1. 개미와 베짱이의 삶 사이에서

큰이모부가 생각나게 하던 감은사지 석탑



 오랜만의, 아니, 실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갔던 경주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감은사지 석탑이었다.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던 한 쌍의 3층 석탑.


 '원래 이렇게 거대했었나?'


 고개를 힘껏 젖혀 올려야만 간신히 탑 꼭대기가 보일만큼 크고 높다. 이게 바로 통일신라 시절 만들어진 탑의 위엄인가. 저 멀리 동해안의 세찬 파도가 들이치는 바다에 큰 바위로 이뤄진 문무왕릉이 보인다. 괜스레 엄숙해다. 감은사는 지금은 터만 황량하게 남아있지만 예전엔 굉장한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거닐다 보니 무왕릉과 감은사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나서 마치 여행 가이드라도 되는 양 아내에게 명을 시작했다.

 "여기 절 아래 수로가 있었는데 저어기 먼바다로까지 연결됐었대. 바다에 있는 문무왕의 혼이 이곳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하려고 길을 낸 거지. 삼국을 통일한 왕 죽어서도 나라 걱정을 한 거래."

 "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데. 배운 사람 티가 나는데?"

 "러게. 이런 걸 어디서 배운 걸까. 분명히 책에서 읽은 기억은 없는데."

 

 한참을 '어디에서 들어봤던' 얘기를 신나게 하던 중 깨달았다. 아 맞다, 이거 우리 큰 이모부가 해 주신 이야기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선생이 아니라 나의 이모부. 어릴 때,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즈음이었나, 이모부를 따라서 역사 답사 기행이랍시고 경주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용이었다. 거의 20여 년 전인데도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무척 인상 깊었던 이야기였나 보다.


 이모부께서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즐겁게 사는 사람'이셨다. 고등학교 교사 일을 업으로 하셨는데, 실은 선생이라기보단 한량에 더 가까운 분이다. 틈만 나면 전국 고속도로와 지방국도 지도를 챙겨서 여행을 다니시고, 틈틈이 낚시도 하시고, 수영이며 이런저런 운동도 빠지시지 않고, 웬일로 집에 계실 땐 가만히 쉬질 못해 바둑 공부도 하시고, 텃밭에 농사를 지으신다며 갑자기 밭을 일구시질 않나, 별의별 걸 다 하셨다.


 이에 반해 또다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셨던 나의 아버지께서는 이모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다. 매일같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시고, 술 담배도 일절 하지 않으시고, 특별한 취미도 없으셨는데 굳이 하나 찾자면 주말에 가족들과 뒷산 오르기 정도였을까. 시골 큰집에 쉬러 가는 날에도 잡초를 베거나 장작을 패거나 보일러를 손 보는 등 부단히 일만 하셨다. 어린 마음에 괜비교를 하기도 했다. 왜 아버지께서는 이모부처럼 여가 활동이라고는 없이 일만 열심히 하시나요. 일개미도 아니시면서요.  


 삶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두 분의 삶 중에서 나의 경로 설정에 참고하고픈 나침반을 하나 고르자면,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이모부의 삶이었다. 개미보다는 베짱이에 가까운 유쾌한 삶. 누가 더 낫다기보다는, 청소년 소설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는 심정에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도 이모부도 두 분 다 대단하셨다는 걸 실히 깨닫는 중이다. 즐기면서 살기도, 지독하게 성실하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살아내기가 어려운 게 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철부지 시절에는 나이만 먹으면 절로 어른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내 명의로 된 집도 사고 차도 굴리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아 기르고, 쓴맛 나는 술도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어른의 삶. 그런 게 예전에는 이모부도, 아버지도 살아내셨던 '평범한 삶'이었다. 이제는 그런 삶은 아무나 꿈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죽도록 노오력한다 하더라도 우리 앞의 세대 땐 당연했던 것들 중에 집이든 결혼이든 혹은 출산이든, 두어 개 정도는 포기해야 간신히 살아낼 수 있는 게 '요즈음의 삶'이다. 아버지 세대, 그들이 부럽기도, 동시에 밉기도 하다.


 이모부는 아직 여전하시다. 은퇴하신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뭔가 재밌는 놀잇거리가 없나 하고 목말라하신다. 이런 분이야말로 유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표본이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수백만 에 달하는 비싼 라이카 카메라를 덜컥 지르시더니 야밤에 별 사진을 찍겠다며 이모가 주무실 때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가시기도 했단다. 이모가 잠에서 깨면 오밤중에 어딜 나가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으실 게 뻔하니 새벽에 소리 없이 살금살금 나갔다면서, '들키지 않고 밤에 담을 넘는 법'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으신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내게 귓속말도 하신다.

 "필요하면 너한테도 꽁으로 전수해 주마."


 그렇게 이모부는 다 좋은데 딱 하나, 나한테 SNS 친구 신청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 좋아한다고 해서 꼭 온라인에서도 친구가 되어 일상의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2. 천  된 유적이라고 밥을 먹여주진 않으니까

첨성대 주변의 아이들을 홀리고 있던 네온 불빛의 노점상 아저씨(a.k.a. 피리 부는 사나이)



 늦은 밤에 첨성대로 갔더니 노오랗게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어찌나 환한지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데도 '아! 앞에 있는 저건 첨성대구나' 하고 알아다. 갑작스레 눈이 부셔서 잠시 동안 눈을 떴다 감 끔뻑거려야 했다. 별을 관측하려고 지은 건물인데 관측대가 이렇게 밝으면 대체 어떻게 하늘의 별을 보나. 경주에서는 서울과 달리 밤하늘의 별을 좀 더 많이 눈에 담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여기저기 조명들 때문에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전 세계의 밤하늘 환경을 보호하고자 불철주야 애쓰는 '세계 어두운 밤하늘 협회(The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에서 퍽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낮에 이미 첨성대를 봤던지라 밤에 또다시 본다고 해서 별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눈길이 가는 건 첨성대 옆에서 형광 노리개를 팔고 있는 노점상 사장님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마한 저거, 이름을 잘 모르겠는데, 하늘로 날리면 슈웅 하고 솟구쳤다가 팔랑팔랑 거리면서 바람개비처럼 내려오는 '발광 발사체'를 고 계신다.


 사장님이 장난감을 날리는 법을 시연하는 모습은 나뿐 아니라 주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리개를 하늘 높이 있는 힘껏 던졌다가, 마치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나는 별일 없이 산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다. 내려오는 팔랑개비가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마침내 추락하기 직전에 힐끗 낙하점을 가늠한 뒤 고작 몇 걸음 옆으로 혹은 앞뒤로 움직인다. 절대 서두르거나 허둥대는 법이 없다. 그리고 여유롭고 느릿하게 슬쩍 손을 뻗어서 노리개가 땅에 처박히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정확하게 낚아챈다.

 "와우, 브라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름의 진기명기를 보여 준 사장님께 박수갈채를 보냈다. 주변 사람들도 홀린 듯 그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 저마다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라는 걸, 그 노리개를 구매한 사람들이 옆에서 직접 보여주는 중이다. 한참이나 엉뚱한 데로 떨어지는 걸 헐레벌떡 뛰어가서 집어오거나, 아예 하늘로 날리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땅에 처박거나, 심지어 근처에 서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서 몇 번 던져 보지도 못하고 끝을 맺는 꼴들이 다들 엉망진창이다. 노리개를 날렸다가 돌아오는 걸 잡는 것. 간단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고난도의 재주였다. 기술도 기술이거니와, 반짝거리는 물건은 역시나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건지 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사장님은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다. 저 꼬마애들한테 하나씩만 팔아도 오늘 하루 벌이가 아주 쏠쏠하겠다.


 장사하는 곳 바로 옆에 역사 깊은 유자리 잡고 있지만 주변 노점상들은 그런 덴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행락지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제와는 전혀 상관없난감이며 주전부리를 파는 비슷비슷한 노점들의 행렬. 전에는 이런 모습을 혐오스러워했다. 숭고한 역사와 유적지를 더럽히는 무리들, 그저 돈벌이를 위해 몰려든 개미떼 같다면서. 하지만 어느 날, 땀에 절은 모습으로 꾸깃거리는 지폐 조각을 한 장 두 장 세어보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모습을 마주하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무어라고 누군가의 땀에 절은 생업을 함부로 멸시하고 우월감을 느낀단 말인가. 먹고사는 일만큼 숭고한 게 또 없다. 백 년이 됐건 천 년이 됐건 유적이 먹고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나, 훼손하지만 않으면 되지. 당장 오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문학이건 역사건 철학이건 예술이건 무슨 소용이랴. 죄다 죽은 것들의 흔적이며 배부른 자들이 부르는 노랫말일 뿐이다.

 

 '첨성대 주연이어야 할 영화에서 씬스틸러를 담당하고 있는 노점상 사장님, 많이 팔고 부자 되세요.'

 들리지 않을 응원을 마음속으로 보냈다.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그 첨성대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하면 된다. 분에 먹고 살 수 있었다고, 고마웠다고.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부터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예술을 생각하면 될 일이다. 여하튼 일단은 먹고삽시다 우리.


 경주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6 6, 경주에서)

경주 시내에서 얻을 수 있는 관광지도를 보면서 코스 짜기. 스탬프 투어도 할 수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길거리의 노점상들 (by Nikon FG-20 필름카메라)
동궁과 월지의 야경 (by Nikon FG-20 필름카메라)
신라의 미소
노오란 조명이 들어오던 밤의 첨성대
대릉원 입구
대릉원의 시그니쳐, 천마총 앞에서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우아한 자태. 에밀레- 에밀레-
불상 옆에 돌을 고이 쌓아 소원을 빌어본다
불국사, 그리고 석가탑과 다보탑
포석정. 여봐라 술잔을 띄워 보거라
무열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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