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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06. 2021

그 많던 포켓몬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속초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6년 10월)

1. 그 많던 포켓몬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 포켓몬 성지였던 속초 청초호
오매불망 기다리던 피카츄를 잡던 순간. 아내의 손가락이 번뜩였다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가 한국에서 서비스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딱 한 군데 강원도 속초만 예외로 한 채. 어쩌다 보니 그 동네만 지리적으로, 뭔가 알 수 없는, 기술과 규제의 사각지대라서 접속이 가능하다고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새로운 걸 해 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소위 힙스터들은 속초를 향해 몰려들었다. 주말 속초행 고속버스는 연일 매진 행진이었다. 대체 이깟 게임이 뭐라고 속초는 때 아닌 관광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시청에서는 혹여나 혈세를 들여 엄한 외산게임을 홍보하는 걸로 오해를 살까 봐 포켓몬이라는 단어를 대놓고 쓰진 않았다. '포켓몬스터' 대신 '주머니괴물'이라는 순화어(?)를 쓴 플래카드를 내걸고서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려 애썼다. 여기가 바로 힙스터의 성지, 주머니괴물 등장 명소 11개 처가 있는 곳입니다, 라고. 이게 바로 한 나라의 지방정부 정도는 얼마든지 흔들 수 있는 이른바 4차 산업과 글로벌기업의 위엄인가 싶었다.


 나는 휴대폰 게임 같은 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들 난리인데도 요즘엔 별스러운 유행네, 하며 심드렁했다. 하지만 생전 이런 덴 무관심하던 아내가 어찌 된 영문인지 포켓몬에 빠져버렸다. 아내는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홍상수 영화 <우리 선희>의 대사를 한 구절 빌려서 표현하자면, '파고 또 파고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성격의 소유자. 유럽 여행 때도 아름다운 풍경 감하기보다는 포켓몬 고가 실행된다면서 더 기뻐하더니만, 이번에는 갑작스레 예정에도 없던 속초 여행을 떠나잔다. 아마도 서울에서 우회 접속하는 꼼수로는 도저히 성에 안 찼나 보다. 내 손으로 직접 '왔노라, 보았노라, 잡았노라' 하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너 설마 포켓몬 따위 때문에 강원도까지 가자는 건 아니지?"

 "아니야.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맑은 공기도 쐬고 그러려고 가고 싶은 거지. 속초 좋잖아."

 "진짜지? 그럼 가자. 동해 바다 보러 갑시다."

 아내가 정말 속초가 좋아서 그러는지 포켓몬을 잡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울산바위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멋진 곳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속초를 향해 차를 달려갔다.


 며칠 동안이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여행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속초의 그 유명한 하얀 순두부찌개도 먹고, 더 유명한 만석 닭강정도 먹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도 오르고, 내려와서는 등산객들이 들어찬 신흥사에서 북적거리는 가운데 한가로운 정취를 즐겼다. 초 8경 중 하나인 청초호에서는 예쁘게 물든 저녁놀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남은 닭강정에 맥주도 마셨다. 닭강정은 어째서인지 식은 게 더 맛있었다. 아침에는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작심삼일일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굳은 다짐 했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새벽 어둠을 몰아내고 눈부시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게으르게 살겠다고 다짐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아내는 강원도의 아름다운 도시 이곳저곳을 속속들이 즐기면서도 한 손에는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종종 검지손가락을 바쁘게 놀리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했다. 마지막 일정으로는 그냥 떠나기 못내 아쉬워서 한 번 더 바다 풍경을 눈에 담고자 속초해수욕장을 찾았다


 해변의 풍경은 낯설었다. 며칠 동안 들렀던 속초의 유명 관광지들에서 스쳐갔던 사람들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림잡아 두세 배는 더 많아 보였다. 그것도 바닷물 안도 백사장 위 아니라 어느 식당 앞에 다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손에는 휴대폰을 쥔 채로.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영문 몰라하고 있는데 아내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더니 포켓몬 고를 실행시켰다. 아아, 이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포켓몬러들이구나. 아내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하필 여기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해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성마른 질문을 던졌더니 과연 이곳이 희귀한 포켓몬들이 많이 나오는 소위 '포켓몬 성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설악산과 동해 바다의 절경, 장엄한 해돋이 장면, 하얀 순두부나 오징어순대, 홍게찜 같은 속초의 멋진 풍경과 맛난 먹을거리를 뒷전으로 한 채 다들 여기 쭈그려 앉아서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그러던 중 저쪽 어디선가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피카츄가 떴다!!!"


 그 순간 더욱 놀라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앉아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곳을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닌가. 빠르기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같았다. 어디? 어디야! 어디냐고!!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뛰어가는 모습이 흡사 영화 <28일 후>나 <부산행>의 좀비 떼들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에, 그놈의 피카츄가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반쯤 미치광이로 만드나.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내는 일순 망설이는 듯했다. 며칠 동안 만나본 적 없던 귀하디 귀한 피카츄가 바로 저기에 있다.  걸음만 내딛으면 닿을 수 가까운 곳에. 렇다면 나도 저 무리들에 껴서 이성 잃 짐승 같은 뜀박질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한가로이 여행을 마무리할 것인가. 곁에서 지켜보니 짧은 침묵 속에서 깊은 내적 갈등이 이어지는 듯했다. 이윽고 아내는 결심한 듯 휴대폰을 내려놓고서 내게 말했다.

 "우리 다음 달에 속초에 또 오자. 여기 너무 좋다."


 아내의 원대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속초에 다시 왔다. 속초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양양 낙산사에 들르고, 이름난 오징어순대 맛집에서 밥도 먹고,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마른 오징어와 젓갈도 사고, 저녁에는 빛 무더기가 바다 위에 내려앉은 포구를 배경으로 홍게찜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아침에는 변함없는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한 달 전과 마찬가지로 작심삼일일 게 분명한, 열심히 살겠다는 굳은 다짐을 또다시 했다. 사람은 왜 떠오르는 해를 보면 지키지도 못할 단한 약속이나 포부를 다짐하게 되는 걸까. 이유를 모를 일이다. 아내는 이번에도 열심히 포켓몬을 잡았다. 들르는 장소마다 포켓몬 성지라며 신나했다. 여행이 끝날 즈음엔 노란 괴물 피카츄는 이제 지겨울 만큼 많이 잡았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속초 여행에서는 굳이 나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도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포켓몬 고는 속초가 아닌 전국 어디에서도 잡을 수 있게 됐다. 한동안 거리에 나가보면 나남 할 것 없이 다들 휴대폰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밀어대면서 포켓몬들을 잡았더랬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 된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다 옛날 얘기. 요에도 그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역시나 잠시 반짝거리다 이내 덧없이 사그라한때의 유행이었. 샤기컷, 스키니진, 밤과 음악 사이, 대왕 카스테라, 퀸의 음악, 방 탈출 게임 같이 이제는 최신 유행이라 하기에는 민망해진 것들처럼. 그때 그곳에서 피카츄를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을 비롯해서 근래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을 보며 종종 생각한다. 그들은 변화하는 세계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일까, 혹은 자기 취향이라는 세계의 빈약함을 메꾸기 위해 남들의 세계를 따라하기 바쁜 사람들일까. 확실한 건 둘 다 끈덕지지 못함은 마찬가지다.


 그런 가짜 힙스터들과 나는 다르다는 듯, 아내는 오늘도 여전히 포켓몬 고에 열중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걸 여태 홀로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설악산에 몇 남지 않은 희귀 동물 하늘다람쥐를 실제로 마주하는 것 같다. 파고 또 파고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데다가 꾸준하기까지 한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2. 낙산사의 풍경 소리는 슬프다

왠지 구슬프게 들리던 낙산사의 물고기 모양 풍경 소리




 강원도의 풍경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니 동음이의어인 낙산사의 '풍경(風磬)'이 떠오른다. 천년고찰, 하지만 2005년 큰 화재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이제야 겨우 예전 모습으로 복원된 이곳. 유일하게 화마와 풍파를 이겨 내고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홍련암의 지붕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뱉어냈다. 땡그랑땡그랑. 동해의 파도 소리도 어울려 함께였다. 규칙적으로 철썩철썩. 그 소리를 들으니 시끄러웠던 마음이 조용해졌다. 그간 마음 속에  때가 씻겨나갔다. 풍경 소리를 쫓아 찰의 중심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디딜 때마다 우리는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다. 이곳은 한 발자국만 더 내밀면 초월이 가능해지는, 마치 성과 속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듯한 장소 같았다. 북적거리던 관광객들도 어딘가로 사라진 듯 몇 남지 않았다. 남아있는 건 그저 파도와 목탁과 바람과 풍경 소리뿐.


 걷는 것을 멈추고 잠시 동안 풍경 소리에 젖어 있었다. 이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물고기 형상으로 깎아놓은 나무 장식 곁에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매달려있는 걸 발견했다. 물고기 녀석은 뭐랄까,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모양새다. 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자세히 살폈다. 한참을 톺아보다 보니 왠지 이 녀석의 눈망울이 슬퍼 보였다. 혹시나 물에 살던 물고기였기에 바다를 그리워 울고 있는 것 아닌가.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고 싶지만 절간 처마에 묶여 있는 신세가 되어버려서 떠날 수가 없다고.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에서 향수 때문에 애달픈 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고 아름답게 들리던 풍경 소리가 왠지 서글프게 들린다. 사람의 감각이라는 게 이다지도 가볍고도 흔들거린다. 단지 생각을 고쳐 먹었을 뿐인데 귀에 들리는 것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가 있.


 익히 알려진 이야기인 원효 대사의 '해골물' 설화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산장잡기 편 '하룻밤에 한 강물을 아홉 번이나 건너면서'도 비슷한 내용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땐 그렇게나 달콤하게 목을 축여줬던 물이었지만, 다음날 아침 밝은 해가 비치자 그 물이 해골바가지에 고여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내 역겨움을 참지 못 토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낮에는 굽이치는 강물을 눈으로만 보느라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던 강물 소리가, 어두운 밤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낮에 들었던 것과 다르게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울부짖음처럼 느껴지더라는 경험도 같은 결론을 말해준다. 뭐든지 간에 사람 마음먹기 나름이다, 라는 깨달음이다. 다음에 낙산사를 또 들르게 되면 그땐 어떤 풍경 소리가 들리게 될까. 아마 그때의 내 마음에 달려있을 게다.

 

 절에 왔더니 제가 큰스님이라도 된 양 선문답을 혼자서 주고받는 것이 참으로 우습다.  


 

 속초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6년 10월, 속초에서)

낙산사 의상대에서
구름인지 안개인지에 가려진 울산바위 자태
설악산 신흥사 입구에서
동자승에게 소원을 빌어본다
동해 바다의 일출
강원도, 하면 옥수수 아니더래요?
속초에선 하얀 순두부찌개를 먹어봐야 한댔다
동해까지 왔으니 홍게찜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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