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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08. 2021

모르는 이를 위해 눈물 흘려 본 적 있나

난징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5년 5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들렀던 난징대학살 추모관 앞에서




 몇 해 전 중국 난징으로 출장을 갔다. 부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몇몇과 함께였다. 나 홀로 말단 실무자였기에 고생스러운 여정이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임원 수행을 이유로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고, 여비 규정에 정해진 것보다 비싼 호텔에 묵었고, 상대방 측에서 제공하는 식사들 또한 훌륭했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음식들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 특히 제철이라 맛이 일품이라는 가재 요리는 배가 터질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연신 입으로 가져왔다. 그네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대가리를 비틀어서 딴 뒤 몸통을 눌러 속살만 쏙. 곧이어 독한 술 지람 한 잔 . 입 안에서는 얼얼한 맛의 조그마한 천국이 생겨났다 사라지기계속했다. 아직 영화 <범죄도시>도, 거기에 등장하는 장첸이라는 인물 세상에 존재하기 몇 년 전이라, 훗날에야 그 요리의 이름이 '마라룽샤'라는 걸 알게 됐다.


 중국어도 조금 공부하긴 했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건 고작 한 마디.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배운 말이었다. 어쩌다 보니 현지 코디 일행과 헤어지는 바람에 부사장, J 부장, 나 이렇게 세 명만 외따로 난징행 고속열차에 오르게 됐다. 둑시니 같은 코디 양반 때문에 이거 큰일 났구먼. 도착지까지 적어도 서너 시간은 걸리는 기차 안에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중국어라고는 하나도 못하는데 예치 못한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떡하, 우리끼리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하며. 다행히 J 부장은 S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왔기에 중국어 몇 마디를 할 줄 안단다. 웃음기가 사라진 내 얼굴을 보며 그가 걱정 말라는 말했다.


 "김 과장,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이거 한 마디만 외워 둬."

 "그게 뭡니까, 부장님."

 "삐주 싼 핀."

 "무슨 뜻인데요?"

 "맥주 세 병."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렇다. 역시 장거리 기차 여행은 맥주와 주전부리만 있으면 다른 건 필요 없다. 맥주 몇 병의 힘을 빌어 다행히도 별일 없이 난징에 도착했다. 코디 일행은 다음 편 기차로 금방 뒤따라왔다. 밤이 늦었기에 서둘러 숙소로 가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길거리 어느 가게의 만두와 콜라로 이른 식사를 해결했다. 코디의 말로는 여느 흔한 호텔 조식보다 이게 더 기억에 남을 아침일 거란다. 그의 말마따나 그때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만두 맛이 아니라 뜨뜻미지근 콜라의 이도저도 아니었던 온도가. 봄의 끝자락이었던 때라 한낮에는 반팔 옷을 입어야 할 만큼 더웠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얼음물이나 시원한 음료라고는 마시지 않았다. 따뜻한 차를 즐겨 마시는 문화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  콜라마저도 차갑지 않게 해서 마실 줄이야. 런 걸 목으로 넘기게 될 줄은 상상 못했다. 나저나 '미지근한''콜라'의 조합이라니. 이건 마치 달콤한 라면, 전에 와인, 대머리에 헤어 왁스, 사인을 잘해주는 야구선수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식사 후 장쑤 방송에 들러 업무 관련 일정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은 금방 끝났다. 음으로는 치 이게 본디 일정이었다는 듯 이런저런 관광지를 들렀다. 마지막으로 '난징대학살 추모관'에 갔다. 가이드를 해 주던 현지 직원이 난징에 오면 여긴 꼭 들러봐야 한다면서 데리고 갔더랬다. 한국으로 치면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형무소 같은 곳과 비슷하겠지, 며 시큰둥했다. 렇게 별 기대 없이 갔던 곳이었는데 여기서 이번 출장 겸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마주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가 당한 것과 비슷한 아픔의 역사를 그네들도 겪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출구로 나오 중. 그곳에서는 아이들 몇몇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그냥 다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라고, 마치 가족을 잃은 사람들처럼 대성통곡을 하며.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라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울고 있는, 멀리서도 짠내가 느껴질 만큼, 가히 '울음바다'라 할 만했다. 대체 왜들 저러지. 자기네들 친척 어르신들 중 누군가가 희생됐. 동행한 통역분께 물었다.


 "저 아이들은 왜 우는 거예요?"

 "너무나도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울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희생자들과 연고가 있어서 그런가 보네요."

 통역은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누더니 내게 말했다.

 "아니오. 전혀 관계는 없답니다. 같은 중국인으로서 슬프답니다."


 통역을 하던 젊은 중국인 여성도 어느새 눈시울이 촉촉해져 있었다.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부럽기도 했다. 알지도 못하는 이에 대해 인간애만으로도 울어줄 수 있구나, 하고. 맹자께서 말씀하신 '측은지심'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여태 본 적 없던 광경이었다. 한국의 아이들은 이런 추모관에 견학 오면 으레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거나 몸을 배배 꼬 재미없어한다. 그동안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의 위안부 관련 전시 등을 다녀본 바로는 단 한 번도 울먹거리는 아이들을 본 적 없. 이건 우리 역사 교육의 부실함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가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각박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너를 밟아야 내가 올라설 수 있는, 밀려나면 벼랑 끝으로 떨어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살다 보니 타인의 아픔에 무감해진 거라.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세월호 참사 때 단식하는 희생자 유족들 앞에서 폭식을 하며 조롱하는 괴물들도 태어나게 됐을 .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하나 느끼지 못하는 괴물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세상이 된 것 같아 걱정다.


 그 후로 몇 해가 지났다. 중국어는 여전히 하나도 늘지 않았지만 중국 청년들의 모습은 TV에서, 뉴스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중국 대표로 출연했던 장위안과 왕심린은 유쾌했다. 하지만 로 본인 중심의 중화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이뿐 아니다. 최근의 홍콩 민주화 시위 때는 대학가에 붙은 지지 벽보를 중국인 유학생들이 훼손하기도 했다. 중국 출신 아이돌들 역시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을 SNS에 일사불란하게 올렸다.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 대만을 국가로 표현했다, 신장 자치구의 면화를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 중국 젊은이들은 글로벌 브랜드에 대 불매운동을 이끌기도 다. 부러 그런 것만 찾아보는 것도 아닌데 어째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뿐이다. 


 김인희의 책 <중국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에서는 그런 현상에 대해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극도로 흥분하는 이들이 최근에 나타났다고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인터넷 기반 극우 청년집단인 이른바 ‘분노청년’들이다. 애국을 절대시하고, 중화주의를 강조하며, 외국을 악마화하는 이들. 저자는 중국 청년들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1989년 안문 사건 이후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이 강화고, 90년대 이후 중국 경제발전의 수혜를 받아 자신감이 생긴 세대에서 이 같은 정서가 양산됐다. 게다가 소위 '만리방화벽'이라 해서 구글이니 트위터니, 유튜브 같은 주요 외국 사이트와의 접촉을 차단해 놨으니 한쪽으로 경도된 성향은 더욱 굳어졌을 게다. 실제로 최근의 몇몇 설문 조사에 따르면 중국 청년들의 10명 중 9명은 다시 태어나도 중국인이고 싶다, 8명은 누군가가 중국인을 비판하면 나 자신을 비판하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난징대학살 추모관 앞에서 울던 아이들다시 떠올려본다. 놀라워하고 동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왠지 기분이 섬뜩다. 그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보통의 인간의 한 명으로서 자연스레 느끼는 아픔이었을까, 감히 우리 중국인들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이방인들에 대한 극도의 분노였을까. 돌이켜 보니 눈에 가득 고인 투명하고 반짝이는 눈물 너머로 시퍼런 불꽃 비슷한 걸 엿봤던 것도 같다. 중국 청년들처럼 국가 민족 같은 공동체를 무조건적으로 우선시하는 삶, 혹은 한국 청년들처럼 웃이건 공동체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잘 살면 된다고 외치는 삶, 둘 중 뭐가 더 나은 건지. 그들도 우리도 그릇된 삶을 살고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난징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5년 5월, 난징에서)

난징 기차역 앞에서


호텔방 침대 머리맡마다 놓여져 있던 시진핑 주석의 얼굴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이 게걸스럽게 먹던 그 마라룽샤. 그떈 뭔지도 모르고서 맛있게 먹었다


중국 공원에서 아침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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