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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Oct 07. 2021

믿어지지 않는 얘기

보라카이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3년 8월)

1. 믿어지지 않는 얘기 : 비행기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한없이 블루에 가까운, 보라카이의 푸른 바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었던 때는 보라카이 여행 이틀째의 점심 무렵이었다. 그곳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왠지 어울렸던 동남아 바닷가 삼겹살집서. 필리핀 돼지도 제법 맛있는데, 아니, 이건 수입산이려나, 당연히 한돈은 아니겠지, 같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한창 식사 중이었는데, 어째 여행 가이드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저 양반이 어디 아픈가, 걱정되던 참이었는데 그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우리 팀원분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참으로 죄송하다는 표정과 말투로 중언부언하며 말이 이어졌다. 무슨 내용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돌아가는 비행기가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였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불신으로 가득 찬 패키지 여행객들에게 가이드는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기사를 들이밀었다. 필리핀 저가항공사인 제스트에어가 안전규정을 위반하는 바람에 운항 자격 정지, 그 항공사의 모든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어제만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행복했다. 아닌 사람도 몇몇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국의 푸른 바다는 선연히 빛났다. 분명 바다라는 걸 처음 본 건 아닌데 그동안 알고 있던 바다는 뭐였을까. 기억 속의 바다들이 죄다 초라해졌다. 곳의 바다를 바라보면 눈동자가 블루 레모네이드 색처럼 파랗게 젖어드는 듯했다. 괜히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도 떠올랐다. 최초의 인상주의 그림으로 알려진 <해돋이>에서 바다는 전혀 푸르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바다, 하면 떠올리는 푸른빛은 하나도 쓰질 않고 새벽녘 돋을볕이 드리운 바다를 흰색, 노란색, 회색 따위로 칠해놨다. 시시각각 시간의 흐름과 빛의 반사에 의해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라 그랬을 터. 하지만 완고한 인상주의자들도 여기에 오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정신없이 파란 물감만 가득 칠하게 될 것 같았다. 렇게 근사한 바다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했다. 여름휴가 막바지에 떨이로 나온 걸 급히 결제한 69만 9천 원짜리 패키지여행치고 과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튿날 점심때부터 우리 모두는 불행해졌다.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가 없대니까. 일상의 삶이 순탄하지 않아 여행의 끝이 달갑지 않은 몇몇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회사에 미리 연락해서 휴가를 며칠 더 써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야 하나. 여자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가를 조금 더 길게 내는 건데. 어제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했다. 다들 입맛이 달아났는지 손길이 끊어진 삼겹살 덩어리들은 불판에서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미국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은 후의 심리 변화를 5단계로 나눠서 설명한다.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쳐,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때로는 죽음이 아니라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도 사된다. 럼 예기치 못한 재앙을 마주할 때도 통용되는 이론일까.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만난, 그저께까지만 해도 서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이론과 얼추 비슷 반응을 보였다.


 계획대로 이어지던 일정, 그러니까 평범한 날들 속에서는 다들 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범하지 않은 순간이 닥치자 이제 단 한 명도 평범이라는 표현으로 한데 묶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평범하지 않은 민낯을 드러냈다. 우울에 빠진 나와는 다르게 어느 아저씨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과 몇 분 사이에 분노의 화신으로 변해 있었다. XX, 그게 말이 되냐고. 비행기 내놔, 내놓으라고. 왜 하필 내가 여행 왔을 때 이런 일이 생기냐고. 반면에 어르신을 포함해서 손주까지 다 함께였던 일가족은 사태를 쉬이 수용했다. 나쁘지 않네요. 이렇게 좋은 곳에서 며칠 더 묵는 것도 괜찮지 뭘. 그러면서 마켓에서 망고를 잔뜩 사와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왠지 자영업 종사자로 보이던 중년 부부는 협상을 시도했다. 오케이, 그건 그렇고. 비행기 뜰 때까지 숙소하고 식사는 괜찮은 걸로 나오는 거죠. 나중에 피해보상도요. 방 속에서 금방이라도 계산기를 꺼내 들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은 어느 정도 수용하는 분위기였지만, 어느 젊은 커플 한 쌍은 끝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했다.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새로운 소식을 기다렸다. 이게 진짜일 리 없고. 만우절은 아니지만 혹시나 오보가 아닐까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여자 친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런다고 바뀔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며칠 동안 몇 번의 술자리를 함께하며 그 커플과 꽤나 친해졌다. 15명 내외의 패키지 일원 중 젊은 커플은 그들과 우리밖에 없어서 말이 통했다. 맥줏잔을 부딪치며 왜 그안절부절못하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희 사내커플인데, 회사 사람들한테는 비밀이거든요. 서로 다른 날짜에 휴가를 냈음에도 공교롭게 둘 다 일이 생겨 같은 날짜에 복귀하게 되면 다들 눈치챌 거라고. 이제 곧 마른 봄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소문을 걱정하던 것이었다.

    

 원래 여행이 끝났어야 하는 날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다행히도 H 투어는 이름난 여행사답게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에 따라 고객 대접에 소홀하지 않았다. 예기치 못하게 추가된 하루 동안 지난 2박 3일간의 숙소만큼 여전히 좋은 곳에서, 여전히 맛있는 음식들을 삼시세끼 먹을 수 있었다. 여전히 푸른 바다도 보고, 여전히 저녁에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데면데면함을 덜어내고, 여전히 귀국 비행기 편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보통의 여행객처럼 즐거웠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숙소가 바뀌었다. 호텔은커녕 변두리 어딘가의 흙으로 얼기설기 지은 가정집 같은 곳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에는 커버도 달려있지 않아 쪼그려 앉아 큰일을 봐야만 했다. 음식은 포로수용소에서나 지급될 법한 빵 몇 쪼가리와 맹물이 제공됐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우리는 환전해 왔던 돈을 끌어모아 밥다운 밥을 찾아 나섰다.


 무심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푸른 바다고 하얀 모래밭이고 뭐고 이제 그만 집에 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얼굴은 지겨움으로 물들어갔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한참만에 나타난 가이드는 저도 할 만큼 했다고요, 하는 표정으로 우리 모두를 보라카이 칼리보 공항에 데려다줬다. 공항 앞 식당에서 어제와는 달리 제법 괜찮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에서 제공하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저녁에 도착하는 대체 비행기 편을 타시면 됩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난민촌 같이 붐비던 공항의 바닥에 앉은 채 하루 반나절이 넘도록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찬 데 오래 앉은 탓에 치질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마침내 소동극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원래 도착일보다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그러니까 싼 게 비지떡이고 급하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체하는 법다. 69만 9천 원짜리 패키지여행치고 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는 그때 이후로 8년이 지났건만 저가항공사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딱 한 번, 3년 전에 일본 오사카 여행 때 국내 저가항공편으로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맞닥뜨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여행객들을 하늘이 시샘했는지 인천공항에는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꼈다. 비행기는 정해진 시각에서 3시간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이륙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뜨기 전까지 우리는 다리도 제대로 펴기 힘든 좁은 좌석에서 하염없이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해야 했다. 친 승객들에게 승무원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기다리시는 승객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 대신 특제 '치맥세트'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와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 모습은 흡사 훈련소 예배당에서 오랜만에 초코파이를 영접한 군인의 그것과 비슷했을 게다. 그리고 잠시 후에 받아 든 건, 닭다리 모양을 한 스낵과 맥주 한 캔이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장난치나. 이게 무슨 치맥이야. 아내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저가항공 안 탈 거야."






2.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감각의 기억들

도로 위를 사방팔방으로 헤집고 다니던 바퀴 세 개 달린 트라이시클




 흔히들 시각이야말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각만큼이나 후각이나 청각도 강렬하기가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보라카이를 생각하면 청량한 바다 빛깔만큼이나, 그곳의 교통수단인 바퀴 세 개 달린 오토바이 택시 '트라이시클'의 매캐한 내음도 떠오른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매우면서도 느끼한 기름기가 짙게 느껴지는 그 냄새. 어느새 코를 킁킁거리면서 아스라한 기름 냄새 같은 게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게 된다. 귓가에서는 윙윙거리는 오토바이 모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침없이 달릴 때 팔다리에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듯 갗에 소름이 살짝 돋으며 시원해졌다. 기억 속의 감각을 떠올렸을 뿐인데 잠시 동안 이국의 여행지로 돌아온 것 같다.


 수많은 트라이시클이 돌아다니는 보라카이 시내 도로의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비좁은 길을 쌩쌩 달리면서도 접촉사고 한 번 없이 요리조리 다들 잘도 피해서 다닌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른바 매일이 묘기 대행진이었다. 이곳에서는 버스나 택시 따위를 찾아보기 어려우니 숙소에서 번화가까지 오고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세발 오토바이를 타야만 했다. 하도 위태롭게 달리는지라 처음에는 무서워서 뭐라도 손에 잡히는 게 있으면 꽉 움켜쥐고서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감히 앞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타면 탈수록 점점 익숙해지면서 긴장감에 얼어붙었던 몸이 조금씩 녹는다. 나중에는 고개를 들고 밖을 내다보면서 손도 뻗어보고, 놀이기구라도 탄 듯 반대편 트라이시클에 탄 사람들에게 웃으며 눈인사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스쳐 지나가는 주위 풍광을 한가롭게 바라보기도 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어느덧 매캐한 기름 냄새와 시끄러운 모터 소리에도 정이 들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린아이들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 어린 시절 감각의 기억이 뭐가 있을까. 영원할 것만 같은 한없이 푸름에 가까운 푸른빛의 바다, 까맣게 탄 자신들과는 다른 여행객들의 하얀색 매끈한 피부(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하얗고 살찐 사람을 선망한다고...), 망고를 비롯한 동남아 열대 과일의 달큼한 과 맛, 그리고 트라이시클의 매캐한 기름내와 모터 소리 따위를 떠올릴까.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고향을 생각하면 떠르는 감각으로 남아있을까.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환경을 위해 트라이시클이 모두 전기로 가는 e트라이시클로 바뀌었다 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땐 말이야, 매연 냄새가 독한 트라이시클을 타고 다녔는데, 너넨 그게 뭔지 모르지. 쯧쯧, 요즘 어린 것들이 뭘 알겠어.


 나 역시 어렸을 적 기억 속에 새겨진 감각들을 떠올려봤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아궁이에서 장작불 피우는 걸 좋아했다. 거북이가 그려진 종이상자 갑에서 성냥 하나를 꺼내 치익 불을 댕겨서 신문지에다 불을 붙인다. 활활 타오르는 종이를 몇 개씩 집어넣다 보면 두꺼운 나무 장작에도 드디어 불이 붙는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불놀이 좋아하면 자다가 이불에 오줌 싼다는 어르신들의 걱정스러운 농에도 불구하고, 저녁밥 지을 때 불은 꼭 내가 지필 거라며 고집을 부렸더랬다. 그때 나무가 불에 타던 내음, 거뭇한 그을음 같은 게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비단 불냄새뿐이랴. 방과 후 학교 앞 떡볶이집의 매콤하고 달큼하고 뜨끈한 고추장 양념 내음, 놀토라는 게 없던 시절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어오르던 나른한 아지랑이, 주말 아침이면 늦잠을 더 자고 싶은데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끌려갔던 동네 뒷산에서 맡았던 새벽의 축축한 흙냄새와 이슬 방울이 알알이 맺혀있던 초록 나뭇잎 등등. 머릿속에 기억 저장소가 있다면 아마 '그리움-01' 같은 이름의 폴더에다 그때 그 순간의 감각들을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언제라도 꺼내서 펼쳐볼 수 있도록.


 그러고 보니 보라카이 여행에선 사진을 제외하면 시각과 후각, 청각 같은 감각적인 기억만 남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가이드가 하도 눈치를 줘서 마지못해 구매한 망고 엑기스 두 통도 여행의 끝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역시 패키지여행은 이게 문제다. 자유 여행에 비해 값이 저렴하기는 한데 일정의 말미에 다다르면 으레 현지 쇼핑센터를 강제 방문해야 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여행 온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건 사야 하고, 여기만한 가격이 또 없고, 한국에 돌아가면 선물할 게 필요하잖아요. 옆에서 가이드가 이런 말을 계속 해 대니 뭐라도 하나 살 수밖에. 쇼핑몰을 나오면서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으면 얼마나 흘겨보는지 모른다.  수 없이 값싼 망고 엑기스를 집어 들었더니 더욱 흘겨봤다. 아니, 이 양반아. 그럼 내가 중년 아재도 아닌데 몇십 만 원짜리 게르마늄 팔찌 같은 걸 살 줄 알았나.


 싸구려 엑기스는 영 맛이 없었다. 현지에서 생으로 먹는 망고는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맛있어서 한도 끝도 없이 입으로 들어가더니만. 분명 같은 부모에서 갈라져 나온 자식들일 텐데 이리도 다르다니. 열대 과일 세상에서의 출생의 비밀 같은 게 있었던 걸까. 맛없는 망고 물은 두 달이 넘도록 찔끔찔끔 꺼내 마시다가 절반이나 남았음에결국 냉장고에서 퇴출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남은 흔적들이 두 사라지고 난 후에야 마침내 여행이 끝 기분이 들었다. 안녕, 망고야. 안녕, 보라카이야.


 보라카이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3년 8월, 보라카이에서)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란 돛단배, 그리고 하얀 모래


동남아에 여행 왔으니 열대과일 하나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스노클링도 하고


사람으로 미어터지던 보라카이 칼리보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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