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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Oct 21. 2021

없었을 때의 유럽여행 고군분투기

프랑크푸르트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1년 10월)

십수년 전, 하이델베르크 성 앞에서 어렸던 나




 신입사원 시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출장 갔던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10년 전 가을이다. 매년 그곳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서전이 열린다. 세계 최대의 도서 관련 행사라고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다. 현지에서는 '부흐메쎄'라고 발음한다. 아는 독일어 고작 한 마디를 이어 붙여서 말하자면 "구텐 탁, 프랑크푸르트 부흐메쎄"다. 매년 주빈국을 선정해서 특별 전시관을 마련해주는데 내가 갔던 2011년엔 아이슬란드가 주빈국이었다. 이때만 해도 아이슬란드가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후일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나서야 아아, 정말 멋진 곳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알게 돼서 괜히 미안했다.


 당시에 출판 관련 부서 소속이라서 도서전에 가게 됐다.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신입 주제에 잘도 그런 좋은 델 가는구나. 아는 사람들은 안쓰러워했다. 너 R 본부장하고 같이 간다며, 고생 많겠다. 그는 일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장가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갔던 사람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며칠 동안 함께해 보니 정말이었다. 사흘 동안 모든 전시관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돌았다. 받아 온 팸플릿과 명함은 커다란 캐리어 하나 분량만큼이나 쌓였다. 들르는 부스마다 어설픈 영어로 질답을 하면서 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 싶은 내용들을 수첩에다 죄다 적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부지런한 본부장은 자기 관리를 한답시고 야심한 시각 혼자서 호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을 했다. 나더러 같이 하자며 끌고 가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일만 하는 출장은 아니었다. 유럽까지 왔는데 어떻게 일만 하나. 북페어 전문 패키지 여행사를 통해서 온 만큼 마지막 이틀은 관광 코스가 포함돼 있었다. 하루는 단체 일정, 다음날은 자유 일정이었다. 단체 일정은 뻔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로 관광버스를 타고 가서 고성과 대학을 구경하는 내용이었다. 성에서는 여행객들이 으레 들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포도주 통'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에 소주를 부으면 61만 병이 들어간답니다, 라는 안내 멘트를 듣고 우와, 하는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자유 일정도 뻔했다. 나남 없이 하는 것처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 들렀다가 뢰머 광장을 걷고 플리 마켓을 구경하고 거리의 식당 아무데나에 들어갔다. 밥과 함께 이곳의 특산물인 아펠바인이라는 사과주를 마셨다. 사과의 기미가 진한 그 술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독일은 역시 맥주에 소시지라니까. 식사를 마치고는 서울 한강에서 하던 것처럼 마인강 유람선을 타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이틀의 관광 코스는 어떤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 예전에 이것과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었다. 회사원이 되기 6년 전 즈음, 아직 군 미필이던 대학생 때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런던 인, 프랑크푸르트 아웃으로 한 달여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6개국을 다니는 일정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1박 2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냈다. 그렇다. 그때에도 똑같은 코스로 이곳을 여행했던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들르고 뢰머 광장을 헤매고 마인강을 보며 강변을 거닐었다. 아니다.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그땐 하이델베르크 역에서 고성까지 가는 버스비를 아낀답시고 눈밭을 헤치며 1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사과주를 마시는 여유를 부리지는 못하고, 마트에서 물보다 값이 싼 이름 모를 탄산음료만 잔뜩 사서 마시고 다녔다. 맥주에 소시지가 웬 말이랴.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호화로웠던 식사는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먹었던 빅맥 세트였다. 기억을 하나하나 따져보니 회사원의 여행과는 아주 달랐다.


 인생 첫 번째 유럽여행 땐 지갑이 마치 근래 다시 유행하는 냉동 삼겹살처럼 얇디얇았다. 대학생 주제에 무슨 돈이 있었겠나. 그럼에도 군대를 가기 전에 무언가 대단한 걸 해 보고 싶었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유럽여행이었다.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유럽여행, 국토 대장정, 자전거 전국일주, 워킹 홀리데이 따위는 '대학생 때 꼭 해 봐야 하는 일' 리스트에 있는 것 같다. 그리 대단치 않은 결정을 내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모름지기 특별한 경험을 통한 나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려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따위 손쉬운 방법을 택하면 안 된다. 오롯이 내 힘만으로 여행을 가자. 그래서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알바를 하면서 여행 경비를 모았다. 그래 봤자 이국의 땅에서 한 달여를 다니기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짧은 새 지갑이 삽시간에 두꺼운 통삼겹살로 변모하지는 않았던 것. 어떻게든 '싸게' 여행을 가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만 했다.


 우선 왕복 비행기 삯부터. 십수 년 전이라서 최저가 비행기표를 찾아주는 스카이스캐너 어플 같은 건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끈기와 인내가 필요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참이나 모니터와 씨름하다가 마침내 발견한 캔슬 표. 출발을 얼마 앞두지 않고 예약이 취소되어 정상가의 60~70% 정도에 구매 가능했다. 다만 날짜와 인 아웃 장소는 내가 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 국가와 일정은 비행기 시간표에 맞춰 역순으로 짰다. 일정을 정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보통의 여행과는 정반대의 순서였다. 고정된 인 아웃 날짜에 맞춰 계산을 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타는 일수만큼의 유레일 패스도 예매했다. 그마저도 기차표 값을 아끼기 위해, 남들은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갈 때 으레 해저 열차를 타고 가지만 나는 유로라인이라는 버스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기로 했다. 버스로 어떻게 바다를 건너냐고. 다 방법이 있다. 커다란 화물선에 짐짝처럼 실려서 간다. 거기서 한 번 더 경비 절감의 묘수를 발휘, 하루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밤배를 타고 갔다. 출렁거리는 파도 때문에 밤새 뱃멀미에 시달린 끝에 새벽녘에 프랑스에 도착했다. 잠은커녕 밤새 헛구역질만 했다.


 숙박비를 아끼는 방법은 또 있었다. 간단하다. 숙소에 묵지 않으면 된다. 화물선에 실린 버스 안에서 1박을 했던 것처럼 기차에서도 며칠 밤을 보냈다. 일부러 동선을 길게 잡아서 국경을 넘을 땐 꼭 밤에 기차를 탔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갈 땐 침대칸에서 밤을 보냈다. 영화 <비포 선셋>처럼 낭만적일 줄 알았지만 영화는 영화, 현실은 현실이었다. 물론 내가 에단 호크처럼 생겼으면 현실도 영화였겠지만 어쨌든. 기차는 밤새도록 덜컹거리고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고 시끄럽고 비좁았다. 이탈리아발 스위스행, 스위스발 네덜란드행 야간열차에서는 침대도 없이 일반 좌석에 앉아서 대여섯 시간 동안 쪽잠을 잤다. 유럽은 눈 떠도 코 베이는 곳이라길래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세라 배낭을 몸에 단단히 묶은 채였다. 그걸로도 안심이 안 돼서 딸랑딸랑 경박한 소리가 나는 조그마한 종도 달아놨었다. 기실 가방 안에 든 거라고는 여행책자 한 권, 속옷 몇 벌, 양말 몇 켤레뿐이라 훔쳐가도 별 문제없긴 했는데. 지갑과 여권은 가방 대신 바지 주머니에, 외투는 가방에 여벌을 챙기지도 않고 한 달 내내 단벌신사, 아니, 단벌거지 행색으로 다녔다. 그런 꼬락서니로는 에단 호크의 에 자라도 꺼내면 양심이 불량한 것이었다.


 교통비, 숙박비를 아꼈으니 그다음으로는 식비였다. 여행 내내 점심은 무조건 맥도널드에서 제일 싼 값의 치즈버거로 때웠다. 1유로 남짓한 가격이었는데 정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이 치즈 하나, 패티 하나, 맛없는 빵 쪼가리 두 개뿐이었다. 종종 한인 민박집에 묵었을 땐 아침과 저녁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점심을 건너 뛰어도 배가 고프지 않게. 도미토리에 묵었을 땐 조식이 나왔다. 아침 뷔페에서 남들 눈치를 살피며 이런저런 음식을 몰래 비닐봉지에 싸 와서 점심 겸 저녁으로 먹고 다녔다. 아아, 그런 추한 짓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얼굴이 홧홧해진다. 여행 막바지엔 동행했던 사촌 형과 함께 끝말잇기처럼 먹고 싶은 음식 이름 대기 놀이를 했다. 김치찌개와 흰쌀밥, 짜장면과 짬뽕, 삼겹살에 소주, 양념 치킨에 맥주, 파전에 막걸리... 아아, 행님. 이제 고마하자. 우리는 괜한 짓을 했다. 허기만 더욱 사나워졌다. 배고픔에 지친 나머지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그동안의 한풀이라도 하듯 프랑크푸르트 공항 맥도널드에서 가장 비싼 빅맥 세트를 사 먹었다. 고작 햄버거 하나에 일생 되어 본 적 없는 자본가로 신분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나 고군분투했음에도 마지막 날엔 수중의 돈이 바닥났다. 비행기 출발 시각은 다음날 이른 아침이니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열차에서 독일 스킨헤드 녀석들과 마주쳤다. 빡빡 민 머리, 혹은 하늘로 치솟은 빨갛거나 파란 머리, 시커먼 가죽 재킷, 딱딱해 보이는 군화, 팔다리에 두른 금속 체인. 그들의 험상궂은 자태에 우리는 바싹 쫄았다. 갓 제대했던 사촌 형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아니, 행님.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 뭐 이래 쫄았노.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 마. 괜히 쟈들하고 눈 마주치지 마래이. 결국 노숙은 포기했다. 형의 비상용 비자카드를 긁어 현찰을 뽑은 뒤 한인 민박집으로 돌아가서 하루를 더 묵었다. 고생담을 더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니 여기에서 이만 줄인다. 그러고 보니 일찍이 이렇게 예산 절감 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덕에 훗날 회사원이 되었을 때 예산팀에 근무하게 된 건가 싶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출장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팀에서 예산팀으로 발령이 났다.


 돈이 없어 고생하지만 낭만적인 대학생의 여행이냐, 체력은 부족하지만 돈은 써댈 수 있는 직장인의 여행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얼 선택할까. 예전에는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자를 선택했다. 그래도 청춘이 낫지. 아프니까 청춘이지.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생각이 바뀌어간다. 가진 게 없더라도 꿈 하나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렵다. 좌초하기 십상이다. 나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다. 먹고살고 생활을 하고, 꿈을 꾸고 실패하고 다시 꿈을 꾸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지난번 여행 땐 돈이 없던 탓에 독일까지 왔는데 독일식 족발 요리인 슈바인학센도 못 먹어봤잖나. 이번 여행에서는 소시지에 맥주에 슈바인학센에 슈니첼에 아펠바인까지, 게다가 독일의 어느 한식당에 가서 삼겹살에 소주도 마셨다.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걸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돈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기는 하다. 그리고, 아프면 병원을 갈 수 있게 도와줘야지 청춘 타령 따위 되도 않는 소릴 하면 안 된다.


 몇 해 전 기획사 YG의 수장 양현석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는 젊은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말했다.

 "전 재산 다 내놓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갈래? 그러면 전 바꿔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몇천 억의 자산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젊음이에요. 저는 여러분이 가장 부럽습니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그때로 돌아갔는데 만약 서태지를 만나지 못한다면. 거대 기획사의 대표 자리며 수천 억 원의 자산은 고사하고, 한때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에서 날렸다는 추억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별 볼 일 없는 늙은 춤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빈털터리 젊을 때로 돌아오고 싶다 그래서 이게 무슨 꼴이야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후회하지 않을까. 주변 어르신들도 양군과 비슷한 말을 종종 내뱉는다. 돈이 다 무어냐, 젊음이 최고여,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거야, 나 때는 말이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제 먹고살 만하게 된 아재들의 배부른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멋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먹고 싶은 걸 먹고 자고 싶은 데서 자고 타고 싶은 걸 타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한다. 과거의 여행은 고생스러웠지만 나름 즐거웠다며,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간직하는 걸로.


 프랑크푸르트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1년 10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교외로 나가면서
2011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전경



(2005년 2월, 런던-파리-베네치아-로마-인터라켄-암스테르담-뮌헨-프랑크푸르트까지)

런던 마담투소에서 왕실 사람들과
우리는 런던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귀여운 척 하고 있던 나
베네치아의 구불구불한 골목에서 지도책은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구글맵 같은 게 있지도 않았다
로마 날씨는 겨울임에도 따뜻했다
인터라켄에서 유럽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열차를 탔다
네덜란드 풍차는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만찬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빅맥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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