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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Dec 13. 2021

아이에게 5 더하기 6을 가르치는 방법

강화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8년 7월)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을 바라보며




 몇 해 전 여름, 아내와 함께 강화도 여행을 떠났다. 때는 바야흐로 한국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더위를 맞이했던 시기. 8월에 들어서자 전국 평균 폭염일수가 31.2일을 기록하면서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1994년의 31.1일을 넘어섰다. 평년에는 고작 10일 남짓한 폭염일수의 3배를 넘는 수치였다. 그런 살인적인 더위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직 젊기에'를 주문처럼 되뇌며, 실은 그리 젊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실로 성실한 여행자의 자세였다.


 무려 고구려 소수림왕 때 창건되었다고 해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불리는 전등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첫 화에 등장하는 신미양요의 배경으로 다시금 유명해진 초지진과 덕진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이곳에 설치한 외규장각, 최근의 유행인 건지 어느 관광지에 가더라도 찾을 수 있는 높은 산에서 타고 내려오는 케이블카와 루지 카트까지 빠짐없이 출석 도장을 찍었다. 우리는 단군의 후예랍시고 마니산 참성단까지 오르려고 했지만 다행히 매표소 이모님께서 말려주셨다. "젊은이들, 이 날씨에 거기 오르다간 죽어." 상냥하고도 섬뜩한 충고. 덕분에 폭염의 등산은 건너뛰고 남은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런 강화의 이런저런 장소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을 꼽자면 섬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던 고인돌 유적지다.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이자 고대의 무덤인 고인돌. 강화에만 무려 160여기가 있다. 이 중 70여기는 고창, 화순 지역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히 사적 137호인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고인돌,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 그대로의 고인돌이다. 수직으로 세운 커다란 굄돌 두 개가 편평한 덮개돌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탁자식 고인돌뿐만 아니라, 땅 속에 무덤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고인돌', 땅 속 무덤 방 위에 곧바로 덮개돌을 쌓아 올린 '개석식 고인돌' 등의 단어들도 생각났다. 세상에, 이런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요즘에는 불과 어제 점심때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역시 공부는 어릴 때 해야 한다는 어르신들 말씀이 맞았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 고인돌은 퍽 단순한 구조이다. 돌 두 개를 세운 뒤, 그 위에 편평한 돌 하나 덮으면 끝이니까. 뭐 어려울 거 있나 싶다. 하지만 고대인들의 기술력으로 이런 걸 만들려면 꽤나 힘겨운 일이었을 게다. 부근리 고인돌 앞에 서 있는 안내문에는 '고인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우선 커다랗고 무거운 굄돌을 줄에 묶어 수직으로 세운다. 그 사이에 흙을 채워 언덕을 만든 뒤 역시나 커다랗고 무거운 덮개돌을 끌어올린다. 마지막으로 흙을 제거해서 돌 세 개만 남기면 끝. 읽으면서 생각했다. 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을까,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설득시키고, 마침내 실행까지 이르게 했을까. 선사시대 사람들에겐 이런 일련의 과정이 복잡 다단한 수학적 지식을 요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을 터. 아주 오래전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고인돌 생각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기억 하나. 회사 동기인 H 형, Y 형과 나눴던 '아이에게 5 더하기 6을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대화였다. 고인돌 만들기만큼 어려운 건 아니겠지만, 아이에게는 인생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고난도의 계산인 '5+6'. 추상적인 개념인 '수(數)'에 대해서, 그리고 그 수를 활용한 간단한 덧셈과 뺄셈이라는 응용에 이어, 합이 10을 넘어갈 때 자릿수가 달라진다는 십진법의 세계까지 이해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 이런 개념을 아이에게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겠다 싶었다. 주변에 꼬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많을 나이다 보니 어째 이런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나누게 된다. 따져 보, 30대 아저씨들의 대화 주제는 보통 회사 욕, 주식, 부동산, 운동양제. 그걸 빼고 나면 남는 건 결국 아이 키우는 이야기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첫째가는 딸바보로 손꼽히는 H형. 그가 첫째 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고작 네 살 먹은 꼬마 아이. 지난 주말, 이 아이에게 덧셈을 가르치는데 정말로 힘들었다고 한다. 5+6=11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서란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의 인내심은 고작 여기까지구나, 하며 괴로웠단다. 그는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자기 아이 천재설'의 신봉자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 20이 넘어가는 숫자들을 죄다 소리 내어 읽을 줄 안다면서 어찌나 자랑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영재는커녕, 우리 아이가 둔재만 아니기를 매일 꼭두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까지는 아니지만 여하튼 열심히 기도하는 중이다. 하소연을 듣고 있던 우리는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가르쳤길래 애가 이해를 못 했어요?"

 "이렇게 설명했죠. 일단 5 더하기 5는 10이지. 그렇지? 우리 딸, 여기까지는 알잖아. 이렇게 10이라는 숫자를 먼저 만드는 거야. 그다음에 원래 더하려고 했던 6에서 5를 빼고 나면 1이 남아 있지. 아까 만든 10에다 남은 1을 더하면 11이 되는 거야. 짠. 이렇게요."

 그는 마치 딸아이에게 하듯 우리에게 두 자리로 넘어가는 덧셈의 오묘한 원리를 가르다.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Y 형도 점점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 대체 어떤 아이가 그런 말을 이해합니까. 그건 너무 어려운 설명 방식 같다고 얘기했다. 숫자 10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처음부터 머리로 이해하냐고. 어린이 책을 보니 으레 열 개들이 초콜릿 접시를 채우면 다 접시로 넘어간다거나, 계란판에 열 개를 가득 채우면 큰 계란 하나가 완성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쉽게 설명하려 애쓰던데. 우리의 반응을 맞닥뜨리고 나니 그제야 H 형도 깨닫는 눈치였다.

 "난 아무래도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는 것 같네. 우리 딸이 손가락이 열 개밖에 없어서 10이 넘어가면 어려운가 봐요."

 "형. 그렇다고 사람 손가락이 스무 개, 서른 개일 순 없잖아요."

 "한 자릿수 덧셈은 기가 막히게 잘했어요. 이 가르치기 전만 하더라도 진짜 영재였다니까."

 H 형은 왠지 슬픈 표정으로 들릴 듯 말 듯한 푸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내 친구 딸은 다섯 살 때 삼각함수를 깨우쳤다던데."


 그나저나 정말 5 더하기 6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열 손가락이 모자라면 발가락을 하나 동원하면 될까. 아니, 그 방법도 20이 넘어가는 덧셈에는 별무소용이겠다. 고인돌을 바라보며 아내에게도 물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가르치겠냐고. 너는 그래도 S대 수학과 석사 학위까지 으니 국어교육과 출신인 나보다는 더 잘 알지 않겠냐고. 아내는 고인돌을 앞에 두고 그런 생뚱맞은 문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한참을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가르치는 건 다른 영역의 일 걸까. 기사, 선형대수니 해석이니 하는 세계를 날아다니던 이에게 5+6 따위 걸음마 시절을 떠올리고 가르쳐 보라니. 너무 오래돼서 녹슬어버린 기억의 상자 자물쇠를 라고 라는 꼴 아닌가. 우리는 사뭇 진지해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일순 픽, 하고 웃음이 터졌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강화에는 <1박 2일>에도 나왔던 유명한 생선구이집이 있다더라. 풀리지 않는 문제는 훗날로 유예하기로 했다.


 몇 년이 흘러 우리도 아이의 부모가 됐다. 어느덧 19개월의 나이를 먹은 아이. 아직 덧셈 뺄셈은 고사하고 숫자도 겨우 여섯, 일곱까지밖에 못 센다. 하지만 올해의 매듭달이 지나면 내년의 해오름달이 반드시 찾아오듯,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아이에게 5 더하기 6을 가르쳐야 하는 날이 치고야 말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야 지난날 훗날로 유예했던 문제에 대한 좋은 을 찾아야 한다. 류의 역사만큼이나 미 충분한 해답들이 있을 터. 배들을 따라 그저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될 일다. 그럼에도 나 역시 가르치는 중에 결국 H형처럼 연신 가슴팍을 내리치고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되려나. 아이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하며 애꿎은 연필만 빙빙 돌려대려나. 차 답답한 순간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고인돌 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보단 쉽겠지. 울... 거야. 그렇게 믿어 본다.



강화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8년 7월, 강화에서)

탁자식 고인돌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놨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던 덕진진


정조가 강화에 설치한 규장각인 외규장각을 둘러봤다


요즈음 관광지마다 유행처럼 만들고 있는 루지 카트라이딩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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