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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Sep 23. 2019

그래서 교사가 될 수 없었다

군산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8년 6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바로 그 초원사진관
풋풋했던 때의 심은하와 한석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때아닌 이른 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뭐라도 먹고 마셔야만 했다. 그래서 군산 시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적산가옥을 고쳐 만든 카페였다. 다다미방에 앉아 시원한 차 한 잔을 들이켜자 6월의 열기에 달궈진 속이 다소 가라 앉았다. 목을 축였으니 이제는 배를 채울 차례. 다음으로 들른 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70년 된 노포 중국 요릿집 빈해원이었다. 여행객이라면 으레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요리를 맛봐야 하는 법. 우리는 그동안 익히 들어왔던 '물짜장'을 주문했다. 전라북도 특유의 짜장이라고 하는데 춘장 대신 간장이 들어가고 전분 함유량이 높아 걸쭉해서, 어찌 보면 짜장면이 아니라 울면 같기도 했다. 맛은 뭐,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실은 여행을 다닐 때마다 유명한 곳을 한두 군데는 꼭 들르는데, 유명세와 맛이 정비례했던 적은 별로 없어서 음식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하지 않는다.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나름의 여행 전략이다.


 몸을 추슬렀으니 이제 본격적인 군산 여행 시작이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인 초원사진관이었다. 영화에서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스크림 하드를 쪽쪽 빨면서 사진관으로 걸어갔다. 군산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라 웬만하면 걸어서 이곳저곳을 다녀볼 수 있다. 사진관은 영화에서 나온 그대로였다. 아내와 나는 역시나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곳의 소파에 앉아서 정겹게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는 선풍기 바람을 쐬었다. 한여름 햇볕에 숱하게 솟아올랐던 땀방울이 어느새 다 사그라들었다. 정원과 다림처럼 나란히 앉아 투게더(영화를 다시 보니 투게더는 아닌데 여하튼 그 종류) 아이스크림을 퍼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왠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 영화뿐만 아니라 허진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애정한다. <봄날은 간다>, <외출>, <호우시절>과 같은 90년대 분위기의 멜로 영화들을.


 그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묘한 경험을 한다.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진다. 작년에 봤을 때와 올해 다시 봤을 때의 느낌이 다르고, 아마 내년에 보면 또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올 거다.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해의 방향 굴절이 일어난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처음 봤을 땐 그냥 심은하 예쁘다, 정도의 단세포적인 감상만 남았다. 그다음에 봤을 땐 정원과 다림이 조심스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싱그러운 장면이 내 감성을 간질거렸다.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되니, 정원과 다림이 아닌 아버지(신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한부 아들의 마지막을 뒷짐을 진 채 담담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봄날은 간다>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대학교 새내기였을 무렵에는 은수(이영애)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X처럼 느껴졌는데,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은수의 처지가 이해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은수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나, 이혼이라는 상처를 한 번 겪은 사람에게 서투르게 다가섰던 상우(유지태)가 철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야 인마, 여자한테 김치 담글 줄 아냐고 물어보지 말고 그냥 사서 먹어. 그 장면에서는 괜히 버럭 화도 낸다. 이제는 대놓고 은수 편을 드는 걸 보니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싶다


 영화 감상 방향의 달라짐을 생각하다가 문득 대학 졸업 무렵 교생실습 나갔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전공이 국어교육인지라 팔자에도 없는 문학 작품을 가르쳐야 했다. 영화만큼이나 문학 역시 읽을 때마다의 감상이 달라진다는 게 퍽 난감했다. 나조차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하나의 텍스트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게 되는데, 이걸 어떻게 저마다 생각이 다른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가 있는 건지. 예술 작품을 가르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술을 즐기는 방법도 제각각일 텐데 마치 정해진 공식 같은 감상법이라는 게 존재할까.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런 걸 가르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고시생 생활을 접고 난 후였다. 고위 공무원이 되긴 글렀으니 이런저런 구직 활동을 하던 중이었는데 '정 안 되면 선생님이나 하지 뭐. 국어교육과 졸업하니까'라는 치기 어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 교생실습을 나갔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실습 기간 동안 맡았던 수업은 고전소설 <구운몽>을 가르치는 것. 단원 목표는 '문학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해하기'였나 뭐였나,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어차피 교육과정이라는 건 자주 바뀌니까 지금은 그런 학습목표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여하튼 구운몽이라는 수업 소재를 받아 들고선 당황했다. 나조차도 8명이나 되는 선녀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가르친담. 같은 팀이 된 02학번 선배 한 명과 낑낑대면서 수업 PPT를 만들었다. 한 문단만 읽어도 졸음이 마구 쏟아질 것 같은 고전소설을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8 선녀 소개에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 사진을 넣고, 결말 부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시 인기 있었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 영상을 삽입하는 등 제법 애를 썼다.

 준비했던 노력에 비해 수업은 역시나 엉망이었다. 서투른 교생들이라면 으레 그렇기도 하거니와 나도 선배도 교직보다는 구직에 힘쓰던 중이라 수업에 그리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던 탓이다. 특히 5교시 수업에 들어갈 때가 가장 힘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다 좋은데 목소리가 너무 졸려요."

 나도 졸린데 너네는 얼마나 졸리겠니. 게다가 나른한 계절 5월인데. 대체 왜 열여덟밖에 안 먹은 아이들이 이 화창한 봄날 점심밥을 먹은 직후에 수백 년 전의 소설을 공부해야 할까. 교육과정을 짜는 높으신 분들 중에 어떤 양반께서 구운몽 따위를 고1 국어 수업 소재에 끼워 넣은 걸까, 라는 불평을 매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닥친 졸업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생실습을 통과해야 했다. 두 개 교시에 걸쳐 꾸역꾸역 구운몽 배우기라는 힘든 고개를 넘은 뒤에 학생들에게 과제까지 내주면서.


 그저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가르치는 게 수업 목표는 아니었다. 이런 문학 작품을 수용자들이 어떻게 이해했냐를 확인해야 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구운몽이어야 하냐고. 다른 문학 작품도 얼마든지 많은데. 선배와 함께 또다시 투덜거렸다. 문학이든 영상이든 영화든 뭐든 어떤 예술작품이라도, 모든 작품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소위 열린 결말(지금 생각해도 궁금하다. 신세경과 최다니엘은 정말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걸까, 혹은 자산 계급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도피에 성공했을까)이라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책이나 참고서에 나와있는 작품 주제 말고, 너희가 이걸 읽고 나서 느낀, '진짜' 주제가 무엇인지 써서 제출하면 돼. 이해하겠지 얘들아?"
 기실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대충 참고서나 인터넷 여기저기서 베껴서 내겠지, 라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인생무상이라든지 호접지몽이니 일체유심조니 하는 그런 것들 있잖나. 그러고 보니 열여덟 먹은 아이들이 대체 왜 그런 걸 알고 있어야 하지. 과제를 걷으면서, 한 반에 서른 장 남짓, 합쳐서 백여 장이 넘어가는 종이 쪼가리들을 어느 세월에 다 읽어보고 일일이 코멘트까지 달아주나 하는 근심에 빠졌다. 지금 내 취업 자소서 쓰기도 바쁜데, 내 코가 석자라고 정말.


 대충 끝내야지 하면서 한 장 두 장 읽다 보니 슬슬 재밌어졌다. 아이들은 제법 재미난 생각들을 했다. 이따금씩 놀랍기도 했다. 마지막 장을 읽고 코멘트를 단 뒤엔 자못 심각해졌다. 아아, 나는 절대로 교사가 될 수 없겠구나. 과제물엔 하나하나 반짝이는 대답들이 적혀 있었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많이 잊어버리긴 했는데 아이들이 말하길 구운몽의 진정한 주제는,

 "귀양 가서 실의에 빠진 작가가 본인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쓴 거다."

 "유교 사상에 젖은 조선 사회에 반발하기 위해 불교 포교용으로 만든 소설이다."

 "나는 절대로 주인공처럼 꿈에서 깨지 않고 8명의 미녀와 평생 불타는 밤을 보낼 거다."

 "그냥 한 번 여쭤보는 건데 선생님도 솔직히 여자 많이 만나보고 싶으시죠? 당신의 욕망에 솔직해지시죠."
 등이라고 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는 아이들한테, 짐짓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교과서적인' 주제를 주입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 반짝거림을 흐릿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무어라고 감히.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그러고 있을 텐데?"
 사범대를 졸업했으면서 왜 교직의 길을 가지 않고 취업을 택했냐는 물음에 위와 같이 장황하게 대답하니, 그걸 듣던 회사 선배 Y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또 그렇다. 굳이 내가 교사를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이미 이 작품의 주제는 인생무상이니 일장춘몽이라며 달달 외우게 시키고, 시험 문제를 내면서 객관식 5지선다로 '이 글의 주제는?' 따위를 넣었을 테고, 중요하다 말해지는 단어마다 밑줄을 그어놓고 a니 b니 연결을 시키라며 그러고 있을 거다. 그동안의 학교 국어 수업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대변혁이 있지 않았다면. 내가 받았던 교육과 지금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이 크게 다르지 않을 터. 그리고 그런 문제를 잘 풀어야 시험 성적이 오르고, 그래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마침내는 성공할 거라면서, 이게 다 나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희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윽박지름도 함께일 거다. Y 선배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차라리 네가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망치는 게 어땠을까? 그런 고민을 했으면, 남들보다는 조금은 덜 망치지 않았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젠 돌아가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역사에 '아마도'라는 말은 없지만, 내가 교사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덧없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군산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8년 6월, 군산에서)

선유도에서 짚라인 타기


모던뽀이가 된 기분으로 미즈커피 건물로 들어서며


거리마다 남아있는 적산가옥들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뉴트로 유행


군산에 왔으면 이성당 단팥빵을 먹어야 한다더라


일본식 사찰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빈해원에서 물짜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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