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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Oct 06. 2021

유등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그때 그시절 로미오와 줄리엣들

진주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2017년 10월)

가을이면 색색의 유등들이 밤을 밝히는 진주의 밤




 2017년 가을, 추석을 맞아 아내와 함께 진주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이런 날에 꼭 나남없이 하는 명절 음식 만들기는 예년과 달리 대충 마무리됐다. 이제는 본인의 시어머니가 살아 계시지 않기 때문일까.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해방되신 어머니께서는 번거롭고 귀찮으신지 마지못해 구색만 맞춰 놓고서 말씀하셨다. 더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너네끼리 밖에 나가 알아서 해결하고 오렴. 나에게는 어머니이자 아내에게는 시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하고, 아내와 둘이서만 진주 여행을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 온 아내에게는 이곳이 낯선 동네이니 아무 데나 돌아다녀도 여행 느낌이 날 터였다.


 시작은 냉면집에서부터였다. 만화책 <식객>에 소개될 만큼 제법 유명한 진주냉면집에 들렀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해산물 육수, 그리고 고명으로 얹혀 나오는 육전이다. 아내는 신기해하며 냉면을 먹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은 다음에는 오랜만에 진주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구 법원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기서 남강변을 따라서 주욱 걸어가면 서울의 예술의 전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화예술회관, 그리고 축제가 벌어진 야시장과 진주성을 지나가며 거리의 유등 구경을 할 수 있다. 추석 즈음해서 열리는 '개천예술제' 행사 덕분에 내걸린 유등들이다. 개천예술제란, 10월 개천절 즈음해서 진주에서 열리는 종합문화예술축제이다. 1949년부터 제1회 영남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열리기 시작해서 2019년까지 (한국전쟁 때 몇 회를 건너뛰는 바람에) 69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유서 깊은 행사. 몇 주 간의 축제 기간 동안 남강을 비롯해서 주요 건물 거리마다 고운 색깔의 유등들이 도시의 밤을 환히 밝힌다.  


 그런데 이 수많은 유등들은 누가 만드는 것이냐. 어딘가의 업체에 외주를 주는 게 아니다. 바로 진주 학생들이다. 이곳의 모든 초중고교 학생들은 가을 무렵이면 '미술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제각기 열심히 등을 만든다. 개중 괜찮은 것들은 선별돼서 거리에 내걸다. 정말 잘 만든 작품들은 한 군데 모아서 전시를 한다. 전시장에서 행적을 찾아볼 수 없으면 본인의 등을 찾아 진주 온 거리를 헤매는, 연등 찾아 삼만리의 고생을 해야 한다. 공물로 바쳐지는 바람에 강제 이별을 당한 내 등을 다니면서 생각했다. 아주 잘하거나 아주 못하거나 하지 않고 애매하게 곧잘 하면 이런 고생을 하는구나. 오랜만에 마주하는 연등들을 보며 아내에게 짐짓 자랑했다.

 "나도 고등학생 때 잘 만든 유등에  번 뽑혀서 전시장에 내걸렸던 적이 있어."

 "에이, 네가 만든 게 상을 받았다고? 믿을 수가 없는데."

 "진짜라니까. 지금은 안 그래 보여도 그땐 손재주가 제법 있었다니까."

 아내는 도저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종종 이케아 가구를 손수 조립할 때 나의 재주를 익히 봐왔음에도 괜히 또 이런다.


 오랜만에 진주 거리를 걷다 보니 예전에 비해 산책로가 정비돼 있다. 강변을 따라 한가로이 걷기 좋다. 축제 기간 특유의 꿈결 같은 아스라한 분위기도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달큰한 술과 매캐한 연기에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 얼굴이 불콰해진 채 시끌벅적한 사람들, 배경음악처럼 은은하게 깔리는 트로트 음악 소리, 여기저기 걸려서 반짝거리는 색색의 등불들과 싸이키 조명까지. 과연 지방 도시의 축제 기간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거 어쩌면 좋나. 예고 없는 불청객처럼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아직 남강 강물 위에 띄워놓은 유등을 보지도 못했는데. 다행히 빈 천막이 하나 있어서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우리도 무리에 껴서 잠시 동안의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갑자기 펑 하는 축포 소리가 울렸다. 한낱 비 따위로는 정해져 있는 행사 시간표를 멈수 없다는 듯, 축제의 전야제인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어두운 하늘을 수놓았다.


 우리는 유등을 보러 나왔건만 쓸데없는 불꽃만 실컷 구경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없길래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우산을 쓰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결국 이번에도 아내는 진주의 유등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청계천에 띄워놓은 자그마한 유등 따위 진주 남강 유등에 비하면 아주 볼품없다면서, 채만한 유등들이 불을 밝히고 강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양새가 그렇게나 장관이라며, 서울 촌놈은 진주 유등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거라며, 그동안 자랑을 해 댔었는데 어째 매번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 괜히 큰소리만 뻥뻥 친 꼴이 돼버렸다. 그 전 해에도 장마가 겹쳐서 제대로 된 유등 구경 못했고, 몇 년 전에는 태풍 때문에 예술제 초반 며칠 아주 망쳤다고 한다. 작년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아예 축제가 취소되기도 했. 최근 몇 년간은 여러모로 진주 개천예술제에 축제의 신이 미소를 지어주지 않는 모양이다.


 버스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모교의 멋없던, 무채색 일변도의 교복도 볼 수 있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지만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녀석들도 밤늦게까지 어딘가의 행사에 동원되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진주 학생들은 축제 기간 동안 비단 유등 제조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니 경연이니 하면서 이런저런 행사에 계속 동원된다.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진주시에서 지역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학생들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착취한 것 같기도 . 그래도 그땐 불만이 별로 없었다. 다들 그러니까, 그동안 그래 왔으니까, 이제서야 우리가 뭔가를 바꿀 순 없을 테니까. 미처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눈은 뜨고 있지만 잠들어있는 인간처럼 살았다. 불평을 할라 쳐도 선생님들 매가 무섭기도 했고 방과 후 야자를 빠질 수도 있고, 일과가 일찍 끝나고 PC방에서 친구들과 포트리스나 카트라이더 같은 게임 몇 판 하다 보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럼에도 불만이 딱 하나 있다면, 축제 기간만이라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다, . 귀 밑 2센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교칙 때문에 밤톨같이 빡빡 깎은 머릴 해야만 했던 우리. 버스에 탈 때면 여고 학생들이 못생겼다고 손가락질하는 듯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실은 우리 같은 난이들에겐 관심도 없을 텐데. 괜한 걱정했다. 가뜩이나 인물도 별로라서 머리라도 길러 가려줘야 그나마 볼 만하다고. 어휴, 그놈의 귀 밑 2센티. 몇몇 잘생긴 친구들은 머리 따위 상관없이 여전한 잘생김을 자랑했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런 축복을 받지 못했다. 타고난 격차를 따라잡지 못한 들은 왜 이런 부적절한 외모를 물려주셨냐부모님 탓을 무던히도 했다. 어휴, 엄마 아빠.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고 잘생김을 물려주셨어야죠. 게다가 내가 다니던 곳 옆의 남고는 교복이 없는 곳이라 사복으로 멋도 내고 두발 자유화 학교라 머리도 기르고 젤도 바르고 있으니 어찌나 비교되는지. 머리를 빡빡 깎고 시커먼 교복을 입은 우리 학교 아이들은 외모 경쟁력이 심히 릴 수밖에 없었다.


 고3이 되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들리는 소식따르면 진주 고등학교 교장들이 어느날 모처에서 모여 협의를 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을 학교별로 다르게 하자. 그 말인즉슨, 우리 학교가 마치는 시간이 밤 10시라면 다다음 정거장에 있는 여고는 밤 9시 반에 일찍 야자를 끝내서 버스에서마저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마주치지 못하게 하자, 라는 미였다. 가히 '남녀고3부동석'이라 일컬을 만한 지독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었다. 교장 선생님들은 머릿속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축제도 못 나가게 하고, 머리도 못 기르게 하고, 여학생들도 못 만나게 하고, 밤늦도록 학교에 남아 야자를 시키고,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는데 축구도 못 보게 하고, 혹여나 몰래 TV를 보다가 들키면 전교생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매를 맞고. 그렇게 하면 학생들을 좋은 대학 보낼 수 있고 그거면 된 거라고, 그게 올바른 교육자의 자세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폭력의 시간을 견뎌냈을까.


 하지만 전쟁통에서도 사랑을 하고 아이도 태어나듯이, 그런 와중에도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뜨거운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매일 밤 눈물겨운 기다림과 상봉 장면을 연출했다. 여자 친구는 저9시 반에 학교를 마치고 나서 30여분이 넘게 버스정류장에서 연인을 기다다. 10시 마치는 종이 땡 하고 치자마자 남자 친구는 선착순 1등으로 달려 나와서 서둘러 버스를 탄다. 혹여나 늦어서 첫 번째 버스를 놓치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버스를 타자마자 정류장에서 홀로 기다리는 연인에게 연락을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이제 버스에 올라탔다고. 그리고 그 둘은 마침내 버스 안에서 감의 재회를 다. 힘들지, 많이 기다렸지. 아니야, 이렇게 볼 수 있으니까 좋아. 금기의 사랑에 불타오르는 둘은 금세 쌍쌍바 아이스크림처럼,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이산가족 상봉 방송에서 몇십 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처럼, 서로 들러 붙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니 여자 친구 진짜 열녀네, 장난 아이다카이."

 우리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놀림 반 부러움 반으로 이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들에게 경의를 표했. 그저 놀리거나 부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규칙과 억압에 잠자코 순응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 몇몇은 연애의 자유를 찾아 굳건했던 틀을 깨고 벗어난 존재였다. 라하고 싶지만 따라해선 안 되는 위험한 자들. 리는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가서 너 어제 여자 친구랑 뭐 했냐, 손은 잡았냐 어디까지 갔냐, 기분은 어떻냐, 고 물었다. 그런 두서없는 물음에, 선생들에게는 골칫거리였던 로미오는 우쭐거리며 무용담을 늘어놨다. 우리는 대답 하나하나에 열렬히 환호성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서로 포옹을 하고 혀를 비비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가슴을 만져봤다는 것 따위가 뭐가 그리 부럽고 아찔했던 걸까. 사춘기 남자아이들이란 별것 아닌 일에 쉬이 흥분한다.


 밤의 로미오와 줄리엣들을 탄생시키던 교육 방침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매년 입시철이 끝나고 '서울대를 몇 명 보냈다', 따위 학교 리스트를 찾아보면 진주 학교들이 꽤 상위권에 포진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졸업 당시 19명인가를 그 대학교로 보냈더랬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많아 봤자 고작 서너 명. 요즈음엔 외고나 과학고, 자사고, 혹은 대부분 서울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고 등에서나 서울대를 보다. 지방 일반 고교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개천에서, 아니, 지방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 긴긴밤을 교실에 붙잡아두는 강제 야자 시간, 엄한 선생님들의 매 타, 그리고 남고 여고 버스 통금 시간 학칙 같은 방법으로는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나마 우리 때까지는 을 텐데. 서울대 많이 보낸다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많다고 해서 좋은 학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작금의 진주 교장 선생님들은 속이 쓰리겠다.


 소득없는 진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씁쓸다. 갑작스런 비 때문에 이번에도 유등을 즐기지 못해서인지, 못생겼던 학창 시절의 덧없던 노력이 생각나서인지, 혹은 지방 일반 고교들의 커져가는 박탈감과 서울과 지방 간 지역 격차의 고착화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진주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 끝.





(2016년 5월, 진주에서)

해산물 육수와 고명으로 얹힌 육전을 특징으로 하는 진주냉면
진주성과 남강의 밤



(2017년 10월, 진주에서)

개천예술제 축제 행렬
축제 기간에 열리는 야시장에서 막걸리에 고기 한 점
사진에 반의 반도 채 담기지 않는 화려한 유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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