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2023년 3월부터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아이가 2020년 5월생이니 물경 34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는 사회생활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는 내내 집에만 있거나 몇몇 가족들만 만났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 자주 들르는 아내의 할머니댁에서는 증조할머니와 고모할머니. 종종 지방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 여기서 더해 봤자 작년 가을에 잠시 머무르고 간, 미국에서 온 아내의 큰 고모님과 사촌들 정도. 쪼그라든 아이의 세계를 넓혀줘야 하는데, 새로운 관계를 쌓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다양한 경험을 해야 발달이 빠르다던데, 하며 걱정했다. 아무래도 집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문화센터니 짐보리니 하는 곳들에도 다녀봤다. 하지만 오래도록 만나는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걱정만 하다가 이제야 어린이집에 나가게 된 것.
기약 없는 기다림은 올해 초에야 끝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가 태어나고 출생 신고를 마치자마자 동네 어린이집 다섯 군데에 입소 신청을 했지만 역시나, 우리 차례는 오지 않았다. 유례없는 저출생 시대라더니만 동네 어린이집은 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동네가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어서 그런 걸까. 우리집은 다둥이도 아니고, 맞벌이도 아니고, 국가유공자니 뭐니 하는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 대기자 순위가 올라가질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3순위 혹은 4순위에 머물러 있었다. 늦어도 만으로 3살이 될 때 즈음에는 사회생활을 해야 할 텐데. 부모와 아이의 애착 형성을 위해 어린이집에 너무 빨리 보내는 건 좋지 않다지만 홀로서기가 너무 늦는 것도 문제인데. 낯선 이와 마주하면 슬그머니 뒤로 숨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하루빨리 우리 차례가 오기만을 기도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회사 어린이집에 입소 신청을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젊은 직원들이 별로 없다 보니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입소가 확정됐다. 하지만 입소 안내 전화를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의 불안함은 잔불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제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집에서 회사까지 강변북로를 30여분이나 달려야 한다. 가는 중에 울기라도 하면 어쩌지, 갑자기 똥오줌을 지리면 큰일인데, 강변북로는 차를 세울 갓길도 없는데 어떡하나. 별별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러다가 올해 초,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동네 어린이집이었다. 우리 아이 차례가 왔단다.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서너 군데 어린이집들에서 동시에 전화가 이어졌다. 우리는 그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다. 걸어서 5분 거리의 동네 어린이집으로.
그렇게 마침내(실은 이제 시작이니 끝을 표현할 때 쓰는 ‘마침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 끝났다는 데 안도하며),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막을 올렸다.
1. 걱정 말아요 그대
등원 전날 OT가 있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아내와 함께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생활할 ‘ㄷ’반에 들어가서 방을 둘러보고 장난감도 만져보고 의자에 앉아보고 이불에 누워도 보고 화장실에 가서 손도 씻어봤다. 아이는 새로운 곳이 신기하고 재밌는지 연신 까르르거렸다. 아이와는 달리 우리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 만지는 것 하나같이 걱정투성이들뿐이었다.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낯선 곳에 혼자 잘 있으려나, 일생 장난감을 나눠 가져 본 적 없는데 친구들과 놀다가 다투지는 않을까, 그동안 잠은 항상 집에서 자는 습관이 있는데 여기서 낮잠은 제대로 잘런지,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가리기는 하련지... 등원하기로 마음먹었음에도 등원날의 해가 뜨는 것이 적이 두려웠다.
드디어 맞이한 등원 첫째 날. 출근 시각 때문에 등원을 함께할 수 없어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회사에서는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전 9시 반 즈음, 등원을 마쳤을 때가 되자마자 아내에게 연락했다. 홀로 된 아이가 울지는 않더냐고, 엄마 제발 가지 마라며 치맛자락을 붙잡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아내는 놀람 반 (어쩐지) 실망 반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뒤도 안 돌아보던데. 새로운 데가 재밌는지 엄마 얼른 가라고, 귀찮다는 듯이 휘휘 손을 내젓더라고."
아내는 놀라우리만치 어린이집에 금방 적응하는 아이가 대견했단다. 동시에 이렇게나 금방 엄마를 필요 없어하는 아이에게 섭섭하기도 한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너와 내가 쌓은 정이, 함께한 시간이 얼만큼인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헤어질 수 있냐고. 나는 그동안 아이를 너무 아이로만 여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텐데 우리 둘 다 너무 걱정이 많았다.
2.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아이가 요즘 들어 자주 부르는 노래가 있다. 코미디언 김영철의 '막가리'라는 EDM 트로트다. 아내의 할머니댁에 들렀을 때 TV에서 우연히 본 <미스터트롯2>의 무대. 이게 아이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사랑은 퀵퀵퀵, 이별은 슬로우슬로우. 오 가리가리, 막 가리가리, 너에게 막 가리"라는 아직 뜻을 이해하지도 못할 가사를 어설픈 발음으로 흥얼거리는데, 어린이집 역시 그 가사대로 적당히 빠르고 적당히 천천히 적응할 수 있게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첫째 주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시간만 있게 했다. 어린이집이 처음인 아이들은 그마저도 힘들어하기도 한다. 엄마나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지자마자 훌쩍거리다가 마침내 으앙, 하고 울음이 터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란다. 겨우 진정하고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놀다가도 금세 엄마 아빠를 찾기도 하고. 어른들도 낯선 곳에 가면 긴장하기 마련인데, 인생 처음으로 낯선 환경에 던져진 아이들은 어떻겠나. 그런 아이들의 적응을 돕는 차원에서 처음에는 1시간의 제한을 두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도 역시 아이는 아이였던 걸까.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적응한 줄 알았더니만, 짧은 1시간의 등원을 마치고 엄마를 마주하자마자 달려와서 품에 꼬옥 안기더란다. 엄마, 왜 나를 버려두고 갔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ㅡ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
둘째 주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서 2시간, 셋째 주는 점심까지 먹고 왔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밥도 잘 먹는단다. 간식도 잘 먹고. 다만, 본인의 입맛이 확실한지라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를테면 딸기와 치즈는 금세 먹어치우고 더 달라고 하지만 삶은 달걀과 요거트는 시큰둥하단다. 넷째 주부터는 낮잠까지 자고 왔다. 평생을, 그래봤자 고작 34개월이지만, 집에서만 잠을 잤던지라 과연 밖에서도 잘 수 있을지 걱정했더랬다. 낮잠을 못 자면 칭얼거릴 텐데 어떡하지. 처음에는 걱정한 바대로 잠을 도통 자지 못했다는데 다행히도 며칠이 지나자 어느 정도 낮잠을 자는 데 성공했다. 예민한 성격 탓에 여전히 깊게 잠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1시간 정도는 자 준단다. 4월부터는 오후 시간에 체육이며 음악놀이 같은 특별활동까지 해서 이제는 오후 4시까지 머물다가 하원한다.
어느새 이렇게 적응했다. 요즘 말로 하면 어린이집에 그야말로 ‘어며들었’다.
3. 즐거운 나의 하루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후로 아이의 하루 일과는 이러하다. 아침 먹고 어린이집, 오후에 하원하고서 동네 놀이터 두어 군데 원정, 아내의 할머니댁에 가서 재롱을 피우고 이쁨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 그리고 아빠 엄마와 놀다가 취침. 내내 집에만 있거나 동네 산책 정도나 했던 예전과는 달리 하루 일정이 빡빡해졌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 동안 몸을 쓰는 게 부쩍 늘었다. 그동안엔 집에 있을 때 앉아서 그림책을 보거나, 바닥이나 소파에 장난감 차를 굴리거나, 반쯤 누운 자세로 유튜브 영상을 잠시 동안 보거나 하면서 놀았다. 요새는 으아아아아, 하는 소리를 지르며 거실을 뛰어다니거나 탱탱볼을 집어 들고 던지면서 공놀이를 자꾸 하자고 조른다. 우리 아이는 아들치고는 참으로 얌전하구나, 싶었는데 뭔가 굉장히 착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활기찬 아이였다니. 같이 따라다니면서 놀아주다 보니 힘이 부친다. 숨이 차서 헉헉거리고 무릎이며 어깨가 저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대체 아이가 왜 이렇게 변했나 싶었다. 어린이집에서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사진과 매일 적어주는 날적이를 보고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오후 특별활동 중 하나인 ‘체육놀이’ 때문이었다. 외부 강사를 모셔 진행하는 수업 겸 놀이. 농구공을 들어 골대에 집어넣고, 장애물 사이를 껑충 뛰어서 통과하고, 바깥나들이를 나가서 흙을 밟고 뛰어다니고 바닥에 뒹굴기도 한다. 한 나절을 이렇게 놀다 왔으니 집에서도 가만있기에는 몸이 근질근질할 터다. 어린이집에서 했던 놀이를 아빠하고도 하자면서 몸을 계속해서 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도 피곤한지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어린이집에 나가기 전엔 오후 10시, 11시가 넘어서야 자던 것이 이제는 시곗바늘이 9를 가리키면 눈이 떼꾼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금방 아이를 재우고 육퇴할 수 있겠구나, 싶어 우리 눈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이게 다 어린이집 덕분이다.
4. 니가 알던 내가 아냐
"진이는 질문이 참 많은 아이네요. 그리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을 잘 안 듣네요."
어느 날의 날적이에 적혀있던 말. 우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밖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아이가 말을 잘 안 듣긴 하지.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종종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분명히 말귀를 알아들으면서도 일부러 엄마 아빠 말을 안 듣고 끝끝내 자기주장을 계속할 때가 그렇다. 어린놈의 자슥이 벌써부터 고집만 세서 어쩌지 이걸. 누굴 닮았을까 대체. 아내도 나도, 본인이 어렸을 땐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면서 상대방 탓을 한다.
그래도 선생님이든 친구든 누구에게나 잘 웃고 다닌다 하니 다행이었다. 평생을 가족하고만 지낸 탓에 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걸 어색해하면 어쩌나 했는데. 나도 아내도 MBTI 검사를 해 보면 내향적인 'I' 성향이라 아이도 으레 그럴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는 극 'E'의 외향적인 성격인 듯하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를 등원시켜 주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물었단다. 저희 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나요,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는 수줍음 많은 아이라서요. 그러자 선생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단다. “설마요, 어머님. 저것 좀 보세요.” 아이는 예의 그 ‘막가리’를 또 부르면서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웃는 얼굴로 춤을 추고 있었다. 하도 그 노래를 불러 댔더니 어린이집 친구들이 우리 아이더러 이름을 부르지 않고 ‘까리까리’라고 부른단다. “진이 왔다, 안녕!” 하는 게 아니라 “까리까리 왔다아아아.” 라고.
옆자리 짝꿍이라는 ㅅ도 우리 아이에게 배웠는지(혹은 물들었는지) 어느 날부턴가 “오 가리가리 막 가리”라며 따라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걔네 엄마는 그간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노래를 아이가 부르고 있으니 대체 이게 무슨 노래냐고 물어봤단다. ㅅ은 우리 아이가 매일 부르는 노래라고 대답했을 테고. 그 이야기를 듣고 어째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기 상어’ 같은 아이다운 노래를 열심히 들려줄 걸 그랬나 보다. 아니, 그런데 본인이 좋아한다는데 억지로 다른 걸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5.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아이에게 매일같이 물어본다.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재밌게 놀았어? 누구하고 놀았어? 어떤 친구가 제일 좋아? 그랬더니 아이는 또박또박 이름을 말하면서 대답했다. ㅇ이 좋단다. 이놈 봐라, 여자 이름인데 이거.
“ㅇ이가 좋아? 걔가 왜 좋아?”
“음… 눈이 예뻐서 쪼아.”
물어본 내가 더 놀랐다. 좋아하는 데 구체적인 이유가 있구나. 김현철은 “누굴 좋아하는 데 이유가, 그런 이유가 어딨겠어”라고 노래 불렀는데, 아이는 제 나름의 명징한 이유가 있었다. 또 누가 좋냐고 물었더니 ㅈ과 ㅅ도 좋단다. 역시나 여자애 이름이었다. 쪼그만 것이 벌써... 걔네들의 눈이 얼마나 예쁜가 하고 어린이집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찾아봤다. 아이가 이름을 말한 여자아이들은 모두 쌍꺼풀이 없는 작은 눈이었다. 쪼그만 것이 벌써부터 일관된 취향이 있다. 어리다고 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혹시나 해서 아이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아빠 눈은 어때? ㅇ이만큼 예뻐?”
“아니, 짝아서 몬생겨써어.”
아니, 언제는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이 예뻐서 좋다더니.
한동안은 남자아이들은 싫다고 했다. 낮잠 잘 때 양 옆에서 잔다는 ㅈ과 ㅅ하고는 재밌게 노냐고, 물어보면 걔네는 시러, 라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녀석이 여자들하고만 노는 건가 하고 걱정됐다. 그래도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지 언제부턴가는 ㅈ과 ㅅ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서먹해 보였던 ㅎ과도 이제는 친해졌는지 같이 자주 논다고 말했다. 역시나 사진을 찾아봤더니 다들 준수한 외모를 가진 듯하여 나름 F4라 이름 붙여줬다. ㄷ반의 꽃미남 4인방. 물론, 이 반에는 남자아이가 네 명뿐인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요즘엔 다들 딸을 낳나, 성비가 왜 이렇지.
6. 전 감기에 걸려있구요
아내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삶의 여유를 일부나마 되찾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동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카페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신다거나, 방해받지 않고 집안일을 하고, 병원에도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고, 천천히 점심을 꼭꼭 씹어먹고, 짧지만 달디 단 낮잠도 한숨 잘 수 있다. 나 역시 저녁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가 일찍 잠들어 주는 덕에 넷플릭스로 밀린 드라마도 보고, 인터넷 유머게시판에서 시답잖은 글과 사진들을 보며 키득거리고, 오랫동안 누워서 잠을 푹 잘 수도 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있을 땐 소중함을 몰랐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어린이집은 장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에 걸리는 ‘중’이다. 진행형으로 표현한 건 아직도 감기가 낫지 않고 있어서다. 노마스크 시대, 코로나19를 비롯해 그동안 걸려 본 적 없는 온갖 질병에 하나둘씩 다 걸리고 있다. 4월부턴 감기가 걸렸다가 나았다가를 반복했다. 5월이 시작되자 기침이 점점 더 심해지고 고열까지 동반돼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코로나19 재감염에다가 근래 유행하는 독감까지 겹쳤단다. 기관지에는 염증 때문에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눈에도 염증이 번져서 눈곱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루 세 번씩 약을 먹이고 눈에 안약을 넣는데, 아이는 싫다고 울고불고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대체 언제쯤이면 지긋지긋한 병증을 떨쳐낼런지.
팬데믹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참말로 고생이다. 전대미문의 질병 탓에 아이들이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닌 탓에 상대방이 말하는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언어발달이 전반적으로 늦었다고 한다. 낯선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고, 심지어 무서워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당연히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을 테고. 툭하면 집 안에 갇혀 단체 활동을 하지 못했으니 사회성이라는 게 제대로 길러졌을 리 만무하다. 우리 아이도 뒤늦게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걱정할 필요 없이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게 많다. 지금의 세계를 만든 어른들 중 한 명으로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여하튼 코로나19 격리기간이 끝나는 다음 주부터는 어린이집에 다시 나갈 수 있길.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길 바란다.
※ 나름 BGM 리스트
1. 걱정말아요 그대 - 들국화
2.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 노 리플라이 & 타루
3. 즐거운 나의 하루(feat. 신민아) - 토이
4. 니가 알던 내가 아냐(feat. 사이먼도미닉) - 그레이
5. 소녀시대 - 이승철
6. 전 감기에 걸려있구요 - 시월애 OST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