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하기 실력이 점점 늘고 있다
지난 5월, 대전의 동생네에 다녀왔다. 가족의 달이니만큼 온 가족이 모였다. 진주에선 부모님이 올라오시고 나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동생이 사는 원룸 근처 장어집에서 장어를 구워 먹고, 후식으로 차를 한 잔 마시고, 동생 방을 구경하러 모두가 들어갔다. 혼자 살기에 딱 맞는 방은 네댓 명이 들어가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지 못할 만큼 가득 찼다.
아이는 낯설은지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그새 침대 자리가 편안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곳이 마치 처음부터 제 자리였다는 양 편한 자세로 누워서 뒹굴거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양 해맑은 목소리로 외쳤다.
“삼춘, 왜, 왜 베개 두 개야?”
동생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말이 트이고 대화 주고받기를 즐기게 된 아이는 답답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이것 봐아. 이 베개 하나눈 삼춘 꺼고, 이 베개 하나능 누구 꺼야?”
동생은 이번에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얼굴이 점점 벌게져갔다. 아내와 나는 이 모습을 보며 끄윽끄윽거리며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계속해서 속으로 되집어 삼켰다.
“아유, 진아. 하나는 숙모 건가 봐. 삼촌 이제 장가가려나 보네. 삼촌, 축하해요, 해 봐.”
보다 못한 내가 농을 쳤다. 동생만 빼고 가족 모두가 와하하하, 하고 웃었다. 아이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따라서 웃었다. 그리고 예의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목소리로 또 외쳤다.
“숙모는 지금 어디 있엉?”
아이의 말하기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놀라울 정도다. 30개월이었던 작년 말 즈음엔 몇몇 사물과 사람, 희로애락의 몇몇 감정 표현만을 할 수 있었다. 떠듬거리며 겨우 서너 개 단어들만을 이어서. 질문을 건네면 단답으로 대답이 돌아오고 그걸로 끝. 제대로 된 대화가 오고 가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이는 조잘조잘 수다쟁이가 됐다. 갑자기 이런저런 단어들을 조합해서 길게 말하는데 말이 끝이 나질 않았다. 그뿐이랴.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오는 글자를 읽거나, 냉장고에 붙여둔 자석 알파벳을 들고 와서 단어를 만들기까지 했다. 듣는 사람들은 에이, 설마 하며 도통 믿지 않았지만 정말이다. 어느 날엔 TV에서 <나는 솔로>를 몇 번 보더니 알파벳 자석을 들고 와서 SOLO라는 영어 단어를 맞추기도 했다.
그로부터 고작 6개월이 지났는데 이제는 얼추 ‘사람 대 사람’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사람과 사물과 감정과 사건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최근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는 이런 말도 들었다. “혹시 진이가 집에서 따로 받는 말하기 교육 같은 게 있나요? 또래들에 비해 말을 너무 잘해서요.”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딱히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러다가 ‘자기아이천재설’ 시즌2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만 3살이 된 아이가 최근에 했던 말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개를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연꽃 어디 있어? 내가 사랑하는 연꽃 어디에 있는 거야?”
- 어린이집 선생님 연꽃(당연히 별명이다)을 부르면서 했던 말이란다. 선생님이 장난친답시고 잠깐 숨었더니 저렇게 말하면서 찾으러 다니더라고. 그것도 굉장히 애타는 목소리로. 연꽃은 순간 잠시 혼란스러웠다 말했다. 얘가 내 남자친구였던가, 하고.
“엄마, 혹시 배 불러?”
-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예를 들어 딸기나 고기반찬 등)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라며 욕심을 부리는 아이. 그럴 때마다 그러면 못 써,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하고 가르쳐줬다. 그랬더니 요즘엔 둘러서 말하기라는 방법을 쓴다. 귀여운 눈빛과 목소리로 혹시 배 부르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당신들은 배가 부를 테니 그만 먹고 나한테 다 줘,라는 거다. 얘가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을 하더니만 희한한 게 늘었다.
“오늘은 어린이집 갔다가 끝나고 배 놀이터, 자동차 놀이터, 뱅뱅이 놀이터 들렀다가 할미집 갔다가 이마트 갔다가 집에 가서 씻자씻자 하고 밥 먹고 타요 유튜브 3개 보고 잘 거야.”
- 아침에 일어나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하루 일정을 줄줄 읊어댄다. 근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 보면 계획형인 J가 나올 게 확실하다. 아이란 으레 제 하고 싶은 대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의 대사처럼 ‘아들은 다 계획이 있었다’는 것.
“고마해라.”
- 밥 먹을 때 장난치지 마라, 손으로 먹지 말고 수저를 써라, 반찬만 먹지 말고 밥도 먹어라. 부모라면 어쩔 수 없이 하는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약간의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실은 밥상머리 예절 교육을 하는 중이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갑자기 정색하며 고마해라,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너무 놀라서 쥐고 있던 밥숟가락을 놓칠 뻔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거야. 아마도 아내가 잔소리할 때 내가 툴툴거렸던 걸 보고서 그대로 따라 하는 듯하다. 내가 저런 표정으로 저런 말을 했었구나. 그러니까 아이 앞에선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ㅈ은 ㅈ이고 나는 나야. 나는 볼 거야.”
- ㅈ은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다. 등하원 때 걔네 할머니와 종종 마주치면서 이런저런 얘길 듣곤 한다. ㅈ네 집은 TV가 없어서 유튜브라든지 핑크퐁, 타요 같은 걸 일생 본 적이 없단다. 아이 교육 때문에 TV를 들여놓지 않은 듯했다. 우리 아이에게도 슬쩍 권유해 봤다. 진아, 너 어린이집 친구 ㅈ 있잖아? 걔네 집엔 테레비가 없대. 그래서 책을 많이 본대. 우리도 이제 테레비 없애고 타요 보지 말까? 네 생각은 어때?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예의 그 ‘고마해라’ 때의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ㅈ은 ㅈ이고 나는 나라고. 나는 걔와는 다르게 보고 싶은 걸 볼 거란다. 아이가 좀 더 말하기가 늘면 어쩌면 이런 말을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되는 거야. 아빠는 어른이 돼서 그런 것도 몰라?”
“나 애기 때 여기 가 봤어. 어어어제 그거 해 봤어.”
- 물론 우리집이라고 하루종일 유튜브 따위만 보는 건 아니다. 책도 많이 읽는다. 언제였더라, 세계 지도와 나라별 국기가 나오는 페이지를 읽으며 말해줬다. 진아, 여기가 미국이야 미국.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지난번에 봤던 엄마의 큰 고모가 여기 살고 계셔. 그랬더니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알아, 나 여기 가 봤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생애 가장 멀리 가 본 게 제주도면서 무슨. 에이, 네가 언제 미국에 가 봤어? 아이는 답답하다는 듯 다시 대꾸했다. “애기 때 가 봤어, 진짜야.“ 이거 봐라, 이제는 없던 일까지 꾸며내서 말을 하네. 아이는 과거형 표현을 아직 알지 못하는지라 며칠 전 혹은 몇 달 전 일을 ‘애기 때’라거나 어제보다 훨씬 더 어제라는 의미로 ‘어어어제’라는 단어를 만들어내 말한다. 아직도 애기면서 나 이제 애기 아니고 형아야, 라는데 웃겨 죽겠다 정말.
“오늘 하루도 재밌었어.”
-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즈음 하는 말. 아침에 일어나서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놀고,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에 가서 누구누구와 놀았고, 어떤 친구는 아파서 못 왔고 다른 어떤 친구는 여행 가서 안 왔으며, 하원하고는 놀이터 몇 군데를 들렀고, 집에 와서 씻고, 저녁을 무얼 무얼 맛있게 먹었으며, 타요 유튜브는 3개를 보고, 간식으로 먹은 수박이 맛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끝나고 나면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나면 아이가 오늘 하루도 꽤나 괜찮게 보냈구나, 하면서 안심된다. 나 역시 아무리 힘들었던 하루를 보냈더라도 이 말 한마디에 마법이라도 부린 듯 좋지 않았던 날이 좋았던 날로 변하는 것 같다. 아이도 나도 아내도 늘 ‘재밌는’ 오늘을 보내면서 지낼 수 있길.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한다.
※ 2023년 11월, 나의 동생이자 아이의 삼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이제 삼촌을 볼 수 없다. 당연히 숙모라는 존재도 만나지 못하게 됐다. 먼 훗날, 아이는 삼촌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