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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r 28. 2020

혹시 나 전생에 왕이었던 건 아닐까

창덕궁 후원의 여름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Fujicolor C200

2019년 7월



(넷플릭스 '킹덤' 시즌2를 봤다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다. 생사역들이 떼로 몰려오던 바로 그곳)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의 가을

Rollei XF35

Kodak gold200

2019년 10월




 "혹시 나 전생에 왕이었던 건 아닐까?"


 아내와 함께 서울 고궁에 갈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여기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마치 예전에 걸어본 듯한 길이야. 이상하게 기시감이 든단 말이지.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 같은 궐의 정전에 갈 때마다 왠지 마음이 편해져. 히, 창덕궁 후원에 가면 잊고 있었던 기억의 장면들이 몇몇 떠오르는 것 같다면서.


 나는 분명 전생에 이곳에서 나고 살았던 왕이나 왕족이었음에 틀림없다. 지난 여름과 가을, 참 좋았던  후원 산책하던 중에도 어김없이 그놈의 입방정은 왕족 타령을 계속 해 댔다. 예매를 하고 기나긴 줄을 서서 마침내 들어 온 후원의 근사한 풍경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


 한참이나 얼토당토 않은 내 이야기를 애써 참으며 듣고 있던 아내가 마지못해 나직이 대답했다.


 "왕이 아니라 내시였을 수도 있지."


 이토록 드마틱한 신분 하락의 순간이라니. 아내의 말 한 마디에 계급이 급전직하 하고 말았다. 저, 저언하ㅡ 소인 한 가지 청이 있사온, 제 거기만은 살려 주시면 안되나이까.


 이번에는 아내 차례다.


 "나는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인 '광산김씨' 출신이라 전생에 여기 궁궐에서 일했을 수도 있어. 나야말로 이곳이 왠지 익숙한데. 서포 김만중 알지? 내가 그분의 후손이야."


 괜히 기가 죽었다. 나는 흔치 않은 성씨인 '용궁김씨' 출신이다. 뭐야, 용궁이라니. 실제로 존재하는 성씨 맞다. 처음 이걸 들은 아내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용궁이라니 용궁. 아하하. 너는 그럼 선조님께서 바다 속 용궁에서 오셨니, 네가 무슨 별주부의 후예라도 되는 거야. 아이 참, 실제로 존재하는 성씨라니까 진짜. 네이버에 검색해 봐도 나와. 우리 시조는 신라 왕족이셨던 김 존 자 중 자 님이시고, 용궁이라는 건 경북 예천에 있던 옛 지명이라고. 괜히 역정을 내며 설명을 해 준다. 예전에 족보 대백과사전을 뒤져가며 공부했던 내용들이다.


 어릴 땐 그게 이상하게스리 무척 창피했다. 학교에서 '조상에 대해 알아보기' 따위 숙제를 내주면 고민 아닌 고민의 늪에 빠져 밤새 잠에 들지 못했다. 내일 학교에 가면 뭐라고 해야 하지. 이런 숙제 너무 싫다 정말. 애들이 놀릴 게 뻔한데. 다음날엔, 너는 어디 김 씨니, 하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참, 너네들은 잘 모르는 성씨 있어, 거 영군김씨라고, 너네 잘 모를 거야. 용궁이라고 말하면 친구들이 토끼 잡으러 왔냐고 놀려댔으니 괜히 입을 오므린 채 발음을 뭉개가면서 '영군', 혹은 '용군' 같은 단어를 말하며 있지도 않은 상상의 가문을 새로이 창조해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심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나 엄마 성씨 따라서 '김해김씨' 하면 안 돼요?" 


 그건 사람들이 다들 아는 유명한 성씨잖아요. 다소 심한 외탁이라고 하면 되잖아요. 지금에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아버지, 참말로 죄송합니다. 그땐 그런 생각까지 했어요. 하지만 바야흐로 양성평등 시대를 맞이한 지금, 자식이 꼭 아버지 성씨를 따라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다.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 아니, 있다 하더라도 법이 바뀌어야지 이제.


 어릴 때는 깟 성씨를 비롯해서, 뭐가  부끄러운 게 많았다.


 용궁김씨 족보에 올라가 있는 것도, 친구들에 비해 팔다리에 털이 수북하게 많은 것도, 아직까지도 두발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휘청거리는 것도, 나이키나 리복 같은 메이커 운동화 한 켤레 없는 것도, 왠지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홧홧해져서 여자아이들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는 것도, 신호등이 빨간 불임에도 아무도 없을 때 건널목을 후다닥 뛰어갔던 것도, 별 것 아닌 일에도 뭐가 그리 부끄러울 게 많았는지. 괜히 숨이 가빠지고 땀이 삐질삐질 흐르던 일들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뻔뻔해진다. 가문이며 집안이 무슨 상관이야 물려줄 재산이 많은 게 최고지, 다리털이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서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길거리를 활보할 수도 있고, 어린 여자애들에게 능글맞게 대화를 주고받기도, 지켜보는 이가 없으면 당연한 듯 바닥에 쓰레기를 스윽 버리거나,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땐 신호위반을 하며 차를 달리기도 하고,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나이 어린 후배에게 아무렇지 않게 떠넘기기도 한다.


 예전에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을 법한 일들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면서 살고 있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건 '부끄러운 게 별로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까. 렇게 된 걸 보면 아무래도 전생에 성군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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