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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각각의 빛 Oct 23. 2023

사바 우동

일상 속 기쁨 리스트들

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준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내가 첫 번째로 소개할 것은 ’ 사바 우동‘이다.


남자친구와 지방에 갔다가 저녁을 뭘 먹을지 한참을 고민하는데 남자친구가 먼저 의견을 냈다.

새로 생긴 이자카야인데 리뷰가 좋아서 눈독 들여둔 곳이 있으니 가보는 게 어떠냐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모처럼 새로운 곳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들떴다.


리뷰대로 맛집인지 이미 가게 앞 의자에는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조르륵 앉아있었다.

웨이팅을 걸어놓고, 가게를 전체적으로 훑어봤다.

나는 가게 외관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냥 복붙 수준의 뻔한 이자카야 인테리어가 아닌 70-80년대 풍으로 꽤나 멋스러웠다.


따뜻한 느낌의 내부도 술집이라기보다 가정식집 느낌이었다.

의자도 폭신 폭신! 아주 좋군!


여러 다양한 메뉴가 있었는데 허접한 이자카야만 가봐서 대충 튀김 종류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초면이고 신기한 메뉴들이 많았다.

남자친구는 미식가로 꽤나 신중하게 모든 메뉴를 스캔하고는 사바 우동을 제일 먼저 골랐다.

그때 나는 못 참고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ㅋㅋㅋ


나 : 사바 우동??그런게 맛있을까? 으… 비릴 거 같아!


사바는 일본어로 고등어를 말하는데, 고등어가…우동에 올라간다..?

상상만 해도 비릴 거 같아서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안 그래도 비린 맛에 예민한 나라 더욱 오버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자신의 감을 믿어보라며 나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눈빛에 수긍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사실 맛없으면 꽤나 호되게 뭐라 했을 것이다ㅎ)

 우리는 후토마끼, 버섯전복내장볶음, 그리고 사바 우동을 시켰다.


요리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처음 온 장소에다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기다리는 게 묘하게 들떠서 가게 곳곳을 스캔하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스캔하고 주방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코를 킁킁댔다.

후토마끼와 버섯전복내장볶음이 먼저 나왔다.

짧게 말하자면 후토마끼와 버섯전복내장볶음 둘 다 훌륭했다.


사바 우동이 나오기 전까진…!

또 먹고싶다.사바 우동!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직원분의 손에 담긴 사바 우동을 보고는 그냥 알았다.

아.. 저건 맛있다!


깨끗한 유리그릇에 담긴 진하면서 맑은 국물과 탱탱한 면발 그 위에 내가 주인공이라는 듯 중앙에 대자로 누워있는 그 고등어를 보는 순간

우리는 눈이 동그래져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어서 그 직원이 테이블에 사바우동을 내려놓아주길 기다렸다.

다행히 전달되는 시간은 길지않았고 우리를 바로 국물을 맛봤다.

진한 가쓰오부시향과 고등어의 고소한 기름, 간장, 양파, 그리고 약간의 향식료 향이 났다.

아,,, 맛있는 맛이었다..

레몬을 고등어와 국물에 두루두루 뿌리고 다시 국물맛을 봤다.

한층 더 감칠맛이 살아나고 깔끔해진 느낌..!

우리는 동시에 “이거지~!!”라고 말하며 이번엔 잘 구워진 고등어를 큼지막하게 떼어서

설렘반 긴장반 고등어를 와앙 먹었다.

아아.. 그는 좋은 고등어였습니다.

살아생전 그 고등어는 아마 누구보다 행복한 고등어였을것이다.이 통통하고 부드러운 살코기가 증명해 줄 것이다.ㅜㅜ

 

어쨌든 고등어는 비린 맛이 단 1도 나지 않고 그 특유의 고소함과 국물을 잘 흡수해 촉촉하고.. 완벽했다.

우리는 이미 두 접시를 해치운 걸 잊은 듯 사바우동을 순삭하고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일상에 기쁨을 느낀 순간이 확실했다.


어째 다 쓰고 보니 사바우동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찬양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는데, 어찌 되었든

그만큼 맛있었다는 소리이다.


앞으로도 일상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 준 것들을 소개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많이 도전해 보고 기록해야겠다!!


Ps. 나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사바 우동을 뚝심 있게 고집해서 결국 맛볼 수 있게 해 준 남자친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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