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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린나 May 05. 2019

빈센트 반 고흐의 삶(6) : 별이 되다.

악수를 건네며, 러빙 빈센트



1890년, 빈센트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퇴원했지만 예전처럼 아를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 이유가 바로 아를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빈센트가 귀를 자른 이후로 아를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퇴출 탄원을 내기까지 했다. 영화 <러빙 빈센트> 시작 부분에 소개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빈센트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가기로 했다. 그곳은 파리에서 가까워 테오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평화로우면서 아름다운 곳이라 그림 그리기에도 좋았다. 이미 다른 화가들이 여럿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빈센트의 그림을 알아봐 줄 가셰 박사도 그곳에 있었다.



닥터 폴 가셰(Paul Gachet)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정한 화가에게는 더없이 좋은 의사였다. 빈센트는 곧 가셰 박사와 친해졌다. 대체의학을 믿었던 가셰 박사는 빈센트에게 그림에 집중하는 것이 치료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했고, 빈센트는 이에 충실히 따랐다. 오베르의 밀밭, 가셰 박사의 정원, 오베르의 교회 등 만나는 사람과 찾아간 장소 어디든 그림으로 남겼는데, 하루에 하나씩 작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열심이었다. 가셰 박사의 처방이 옳았던 것일까? 빈센트의 마음에도 볕이 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잠깐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빈센트는 1890년 7월, 테오의 집에 방문했는데,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이 만남 이후로 빈센트의 마음속 어딘가가 다시 크게 잘못되어 가기 시작했다.


고흐는 이 때 테오의 새로운 사업 계획에 대해 들었다. 테오가 구필 화랑 일을 그만두고 처남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고흐는 심난해졌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 것이었다. 이미 지난 수년간을 지겹도록 가난에 시달려온 빈센트였다. 동생의 새로운 꿈이 자기 앞날을 더욱 어둡게 가리는 먹구름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은 또 다른 자괴감이 되어 고흐의 마음을 좀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테오의 집에서 팔리지 않은 자신의 그림들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있는 것을 봤다. 빈센트는 불쾌해했고, 조(테오의 부인)와도 불편함이 생겼다. 그 해 초 태어난 리틀 빈센트를 키우느라 정신없던 테오의 가족이었다.


림은 팔리지 않고,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팔리지 않는 그림으로 테오와 제수씨에게 싫은 소리를 하게 됐고, 그 와중에 앞날은 더 불투명해져 가고 있는 상황. 빈센트의 마음은 다시 요동치고 있었다.


다시 여기에 돌아오고 나니, 여전히 너무 슬픈 기분이 드는구나. 너에게 몰려드는 먹구름이 나 역시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어쩌면 좋을까. 내가 언제나 꽤 유쾌한 사람이려고 노력하는 걸 알 거야. 근데 내 삶은 뿌리 깊이 망가졌고, 내 걸음도 비틀거리고 있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1890년 7월10일 경     


우울함이 잔뜩 묻은 편지를 받은 테오와 조는 깜짝 놀라 빈센트를 달래려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가난에 대한 걱정과 정신병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큰 캔버스에 그림을 3개 더 그렸어. 광활하게 펼쳐진 밀밭과 그 위로 곧 거센 비바람이 일 것 같은 하늘을 그렸는데, 사무치는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해보려고 했지. 네가 곧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빨리 파리로 이 그림들을 가져가서 보여주고 싶다. 이 그림들이 내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을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야. 시골을 대할 때 떠오르는 활기차면서 안심되는 느낌 같은 것 말이야.

테오에게 쓴 편지.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1890년 7월10일 경
빈센트 반 고흐<흐린 날의 밀밭,1890>

오베르의 밀밭을 그리고 보낸 편지에서는 그림을 그리며 우울함을 이겨내 보려는 빈센트의 노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농촌을 보며 느꼈다는 ‘활기차면서 안심되는 느낌(healthy and fortifying)’은 빈센트의 마음을 다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그의 흔들리는 마음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1890년 7월 27일, 여느 때처럼 그림 도구를 가지고 밀밭을 향했던 빈센트는 그곳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라부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듣고 테오가 파리에서 급히 달려왔지만 빈센트는  테오의 곁에서 이틀 뒤에 눈을 감았다.


가셰 박사가 그린 빈센트의 마지막 모습



1890년 7월 29일, 빈센트는 언젠가 편지에서 얘기했던 "죽음이라는 기차"를 타고서 그리도 바라던 별로 떠났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그림은 별이 되었다. 오늘의 우리는 그가 밤하늘 별을 바라보던 눈으로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오래도록 남아 빛을 내는 화가의 삶과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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