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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린나 May 15. 2019

고흐의 편지와 그림 이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동생과 친구에게 쓴 빈센트의 수많은 편지들. 

우리는 빈센트의 편지를 읽으며 빈센트의 목소리로, 빈센트의 그림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세상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자상한 큐레이터 같은 고흐의 편지를 통해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

 

오늘 읽어볼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지내던 시절에 그린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다. 1888년, 빈센트가 남쪽의 스튜디오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때, 그리고 고갱과 크게 다툰 이후로 마음이 아파지기 3개월 전에 그린 그림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여동생 빌라민(Willemien)에게 쓴 편지에서 자상한 오빠의 목소리로 소개되고 있다. 편지에서 그는 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아름다운 밤하늘을 검정색을 쓰지 않고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밤의 카페 테라스, Cafe Terrace at Night>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크기: 81cm x 65cm

위치: 크뢸러 뮐러 미술관(네덜란드)

제작 시기: 1888년 9월–1888년 9월 16일

재료: 유화


빈센트가 여동생 빌라민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요즘 그리고 싶은 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야. 밤이 낮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색을 가지고 있는 것 같거든. 아주 진한 보라, 파랑, 초록색을 볼 수 있어. 하늘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어떤 별은 레몬색으로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다른 별은 핑크, 초록, 또 물망초같이 옅은 파란색으로도 보이지. 옛날처럼 단순히 검정과 파랑색만 섞어서 그린 하늘에 흰색 점을 찍는 것으로 밤하늘을 그릴 수 없다는 거,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테라스에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 커다란 노란색 랜턴이 이 테라스를 비추고, 건물 외벽을 비추고, 그리고 길거리의 자갈돌에도 빛을 비추고 있어. 빛을 받은 자갈돌은 마치 보라색이랑 핑크색으로 보이지. 별이 박힌 파란 밤하늘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 옆에 서있는 집은 위쪽 벽을 짙은 파랑이랑 보라색으로 했고, 나무는 녹색으로 했어.     


이게 바로 검정을 쓰지 않고 그리는 밤 풍경이야. 단지 아름다운 파랑, 보라, 초록을 쓸 뿐이야. 그리고 그 안에서 밝게 빛나는 광장은 옅은 황록색이랑 레몬그린색으로 칠했어.


요새는 밤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리는 게 좋아. 예전 화가들은 낮에 그려놓은 드로잉을 가지고 밤 그림을 그렸었는데, 나한테 더 잘 맞는 건 밖에 나가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는 방식인 것 같아.

  

파랑으로 어둠속의 초록을 표현하고, 분홍색 라일락을 또한 파란색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건 결코 틀리지 않아. 그게 바로 옛날에 밤을 그렸던 방식, 즉 힘없이 희미하고 희끄무레한 빛이 보이는 검은 밤하늘을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지. 사실은 아주 작은 촛불이라도 엄청나게 진한 노랑과 오렌지색 빛을 뿜어내거든.     


사랑하는 동생아, 난 우리가 지금 자연의 풍요로움과 웅장함을 그려야만 한다고 생각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격려, 행복, 희망, 그리고 사랑이야.     


내가 더 못나게 되고, 늙고, 비루해지고, 아프고, 가난해질수록, 난 그렇게 될 수록 더 눈부시게 밝은 색깔로 복수하고 싶어. 왜 보석상도 비싼 보석을 잘 배치하는 법을 터득하기 전에 이미 늙고 못나지잖아. 그림 그릴 때는 색을 잘 배치해서 색깔들이 아른아른 빛나게 하고, 서로 짝꿍이 되는 색을 써서 도드라지게 해야 해, 그게 바로 보석을 배열하는 거나 옷을 디자인 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이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네가 말했던 어머니 사진, 정말 가지고 싶다. 그러니 잊어버리지 마렴. 엄마한테도 안부 전해줘. 두 사람을 정말 자주 생각해. 그리고 이제 네가 나와 테오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도 정말 기쁘다. 테오가 너무 많이 외로움을 타지는 않을지 걱정돼. 그래도 곧 내가 말했던 벨기에 화가가 테오에게 갈 거고 파리에서 잠시 지낼 거야. 그리고 다른 화가들도 곧 돌아갈 거야. 여름내내 그린 그림들을 가지고.




<밤의 카페 테라스>는 고흐의 유명한 밤하늘 그림 3형제 중 하나로 나머지 두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과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이다. 편지에서 설명하듯 빈센트는 밤하늘에서 낮 보다 더 풍부한 색채를 느끼고 그림에 담았다. 검은색을 쓰지 않고 그린 밤, 그의 그림에서 밤하늘이 특히 더 아름다게 보이는 이유다. 그리고 그런 밤하늘을 배경으로한 랜턴빛은 아를의 햇볕만큼이나 따뜻하다. 저 멀리 다가오는 마차, 지나가는 행인, 조약돌에게까지 따사로운 빛을 나눠주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특유의 별 빛 표현이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천문학자들은 연구를 통해서 그림 속 별의 위치가 당시의 실제 별 위치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고 믿었던, 밖에 직접 나가 그리는게 좋다고 편지에 썼던 화가의 생각을 볼 수 있다. 


빈센트는 이 그림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그림을 그의 진품이라고 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이렇게 편지로 자세히 설명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편지에서 설명하듯 이 그림에서는 밤하늘을 검은색 없이 표현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이 <최후의 만찬>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림 속 테라스에서 가게 문쪽으로 들어가는 그림자가 예수님이라는 것. 빈센트가 테오에게 썼던 편지에서 이 작품을 소개할 때 '종교적 열망'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아직은 주장일 뿐이다.


그림의 배경이 된 카페는 카페 반 고흐(Cafe Van Gogh) 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프랑스 아를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로 이 카페였다. 명작의 배경을 놓칠 수 없어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 갔을 때는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영업일로 소개된 날이었음에도 이틀 연속으로 문을 닫았다. 커피 한 잔 해보고 싶었는데.. 카페가 있는 광장 주변에는 나처럼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아를의 낡은 카페까지 찾아온 관광객들이 허무하게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카페 반 고흐가 있는 광장 주변
이틀을 투자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장사 안하나 싶었던 카페 정면 모습. 너덜너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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