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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린나 Aug 05. 2019

빈센트 반 고흐의 사람들, 애증의 친구 라파드

빈센트 반 고흐, <감자를 먹는 사람들, 1885>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고, 그의 삶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고 많이 알려져 있다. 정말일까?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왕피셜,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


사귀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빈센트는 외톨이는 아니었다. 적어도 미술가로서의 빈센트는 더더욱 그랬다. 그는 많은 동료 화가들과 교류했고 때로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고흐와 다른 화가 친구들(고갱을 포함한)은 당시 미술계의 주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던 '개척자'들이었다. 달리 말하면 주류가 아니고, 덜 유명했으므로 대부분 돈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으쌰으쌰해주는 동료였고, 서로가 서로의 그림을 알아봐 주는 '깨어있는' 미술가였다. 빈센트는 다소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인해 사귀기 편한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사람을 싫어하는 괴짜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친구, 사랑, 그리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내가 무슨 길가에 서있는 소화전이나 가로등도 아니고..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벨기에 보리나쥬. 1879년 8월11일~14일.


친구 라파드와의 만남.. 왕자와 거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1880년, 동생 테오의 강한 권유에 따라 빈센트는 네덜란드 화가 안톤 반 라파드와 만난다. 당시 라파드는 벨기에 브뤼셀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 중이었다. 라파드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미술을 한다고 부모님과 등을 지고, 동생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빈센트는 거의 떠돌이 유랑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이 둘의 첫 만남은 꽤나 이상한 것이었다.


어색한 첫 만남.
빈센트의 첫 화가 친구. 안톤 반 라파드. 빈센트와는 달리 금수저 출신이었다.
브뤼셀에서 빈센트와 만났던 날은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빈센트가 제 작업실로 온 건 아침 9시였어요. 처음에는 함께 지내기 어려웠지만 나중에 몇 번 같이 그림을 그리고 나니 괜찮아졌어요.

안톤 반 라파드가 빈센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
1890년.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더 없는 그림 친구가 되다.  

하지만 둘은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로 통하는 부분을 발견했고 곧 서로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밀레, 브레튼을 동경했던 빈센트.

친해진 두 사람은 시골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드로잉, 스케치 등을 서로 보여주면서 많은 의견을 나누는 동료가 되었다둘은 서로를 격려하면서도 서로의 그림을 혹평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잡지에서 좋은 삽화를 발견하면 서로 추천해주고 또 그 복사본을 주고받기도 했다. 빈센트가 돈 봉투를 잃어버렸을 때는 라파드가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빈센트가 션이라는 여인과 함께 살던 것을 이해해주었던 사람 중 하나도 라파드였다. 빈센트의 부모님도 라파드가 찾아오는 것을 반길 정도로 둘은 사이가 좋았다.


의견 충돌  

물론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이 언제나 모든 면에서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빈센트와 라파드는 서로의 그림에 대해서, 그리고 그림을 바라보는 태도 등에 대해서 의견이 부딪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반대되는 의견을 말할 때라도 주저함이 없던 두 사람이었다.



라파드가 아카데미에 등록하려 할 때였다. 빈센트는 그런 라파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지에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화가는 스스로 깨달아가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라파드는 빈센트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화가가 된 것은 더 먼저였기에 이런 설교스러운 조언은 마냥 듣기에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파드, 내가 보낸 편지는 잘 보관해두고 있나? 시간이 된다면, 그리고 내 편지들이 아직 불속에 타 없어지지 않았다면, 내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게나. 이런 얘기도 거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난 자네를 위하는 온전한 마음에 그것을 썼던 것이거든. 너무 노골적인가 싶긴 했지만... 아마 자네는 내가 정말로 고집 센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내가 실제로는 무슨 교리 같은 거를 설파하는 중이라고 말이야. 

라파드에게 다시 쓴 편지. 
에텐, 1881년 11월. 
라파드에게서 답장이 잘 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
아하! 내가 정말로 고집스러운 사람이었구나! (...)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네. 내가 (고집스러운지) 확신이 없었는데 자네가 확실히 해주었어. (...)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전 고집스러운 사람이었군요. 

라파드에게 쓴 편지.
에텐, 1881년 11월. 
윗 편지의 답장이 안 좋게 온 듯하다. 


이 일 말고도 빈센트는 라파드의 일에 딴지를 자주 걸었는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식이었다.

라파드가 누드모델을 고용했을 때 -> 옷 입은 사람을 그려라.

라파드가 전시회에 응모할 그림을 그릴 때 -> 나는 안목 없는 사람들이 여는 전시회에는 관심이 없다.

라파드가 수채화를 그리려 할 때 -> 수채화보다는 흑백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떠냐.


빈센트는 도대체 왜 이런 말을..? 돈이 없는 자신은 못 하는 일에 대한 부러움에 내뱉은 말이었을 수도, 아니면 마음 맞는 친구와 공감대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후자 또한 돈이 없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지만...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했고 그저 직설적인 성격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겨진 빈센트의 편지에서 유추하건대, 유복한 집안의 라파드는 자기 스스로와 자신의 그림을 말할 때에 '귀족스러움'으로 포장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대인관계에서도 남을 얕보고 깔보는 건방진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라파드가 빈센트에게 쓴 편지는 단 한 통만 남겨져 있긴 하지만, 라파드가 먼저 도발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림 디스전의 끝

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이 틀어진 것은 1885년이었다. 빈센트가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막 완성하고 나서다. 이 그림은 빈센트가 자신의 첫 번째 대표작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그린 것이었다. 그 그림을 그리는데에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들였고, 그림 속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연습을 되풀이해온 빈센트였다. 그러나 빈센트가 그림을 다 그린 후 뿌듯한 마음으로 라파드에게 '석판화' 샘플을 보냈을 때, 믿었던 친구로부터의 반응은 혹평 일색이었다.

 


그림 좀 혹평한 걸로 싸웠다.라고 생각한다면 빈센트가 좀 쪼잔해 보일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개인 취향이 있는 건데 칭찬 좀 안 했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라파드의 편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은 혹평이 아니라 모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절교할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까지..?라고 생각될 정도다. 아래 편지에서 직접 느껴보시길.

난 고흐 자네가 이런 그림을 진지하게 그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자네도 동의하겠지? 자네가 원래는 이거보다 더 잘 그릴 능력이 있다는 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런데 왜 이렇게 사물을 피상적으로만 보는 건가? 왜 인물의 움직임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 거야?


아래 편지의 혹평과 비교해보세요.


뒤쪽 여자를 보게. 교태를 부리는 듯한 손 모양을 하고 있어.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그림인가?! 

그리고 커피 주전자랑 테이블이랑 손은 어떻게 된 건가? 주전자가 어떻게 돼있는 거야?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손에 들린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란 말인가? 

또 오른쪽 남자를 보게. 그 사람한테는 왜 무릎, 배, 가슴이 없는 거지? 아니면 등짝에 붙어 있나? 왜 이 남자의 팔은 1미터나 짧아야 하지? 또 왜 코는 절반이 모자라야만 하는 건가?

그림 왼쪽에 있는 여자의 코에는 꼭 이렇게 각설탕을 붙인 것같은 담뱃대를 그려놓아야만 했나? 

그림을 이런 식으로 그리면서 자네는 어떻게 밀레와 브레튼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단 말인가? 이보게. 적어도 내게 미술이란, 이렇게 대충 그려져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이라네. 

라파드가 빈센트에게 쓴 편지.
1885년 5월24일. 
제3자가 읽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친구로부터의 가시 박힌 비난은 큰 상처가 됐다. 라파드의 편지를 받고 빈센트는 분노의 답장을 적었다. 평소에는 기본적으로 네 장, 다섯 장씩 편지를 적어 보내던 빈센트의 단 네 줄짜리 편지. 그가 얼마나 화난 상태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빈센트는 라파드가 보냈던 편지를 버리는 대신 자신의 편지와 동봉하여 되돌려 보냈다. 

내 친구, 라파드에게.

자네 편지를 방금 받았다네. 놀라웠어. 여기 다시 가져가게나.

라파드에게 쓴(?) 편지.
뉘넨. 1885년 5월25일.
글씨 대신 분노로 가득 채워진 편지


재밌게도 라파드의 모욕적인 편지는 빈센트가 이렇게 되돌려 보낸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빈센트는 자신이 받은 편지를 잘 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를 찾아가지는 않게 되었다.


빈센트를 위한 변명

라파드가 비난했던 그림은 사실 빈센트가 라파드의 이해를 돕고자 급하게 옮겨 그린 석판화였기에 실제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진짜 그림만큼 공을 들이진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라파드는 좀 심했다.

빈센트가 라파드에게 보낸 것이라고 추정되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 석판화
어느 날 빈센트가 찾아와 석판화용 돌을 구해달라고 했어요. 돌을 구해주었더니, 빈센트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게 안에서 말이에요. 그 사람은 사전 스케치도 없이 석판화 크레용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샘플 그림도 없었죠. 머릿속 기억으로 그림을 그렸죠. 굵고 거친 선으로 테이블과 농민들을 그렸어요. 램프 불빛 아래서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었죠. 그건 빈센트에게 있어 첫 번째 석판화 작업이었을텐데도 그는 주저함이 없었어요. 뾰족 칼로 스크래치 작업을 시작했고, 엄지와 다른 손가락에 덕지덕지 때를 묻혀가며 작업하는 데 마치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어요.

당시 그림 상인 Dimmen Gestel이 문제의 석판화 제작 과정을 목격하고 남긴 증언.


<감자를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1885>

어찌됐든.. 문제의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지금은 고흐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빈센트는 한동안 이 작품을 자신의 것 중에서 가장 잘 그린 그림이라고 꼽을 만큼 이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런 그림, 소박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기 위해 빈센트는 화가가 되기로 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 접시를 향하는 그 손으로 힘겹게 땅을 일구었고, 그렇기에 그들의 식사는 매우 정직하게 얻어진 것이지. 나는 여기서 우리 도시 사람들의 삶과는 온전히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이유도 모른 상태로 이 그림을 감상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뉘넨. 1885년 4월30일.
빈센트 반 고흐 <감자를 먹는 사람들, 1885>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빈센트 화가 인생의 첫 대작답게 다른 그림들보다 크기가 확연히 크다. 직접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다른 뒷 이야기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그림은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소위 최종본이다. 빈센트는 이 최종본을 완성하기까지 세 번의 스터디 그림을 그렸다. 초기 스터디에는 그림 속 사람이 네 명뿐이었다. 추가된 한 명은 위 그림의 젊은 여인, 왼쪽에서 두 번째 사람으로, 빈센트가 좋아한 여인이라 추가되었다는 달달한 썰이 있다.

네 명으로 구성된 초기 스터디 작품. 빈센트 반 고흐<감자를 먹는 사람들, 1885> 

    

마지막 스터디에는 여인이 한 명 추가되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추가된 여인의 얼굴을 그린 연습작
농촌의 젊은 여인은 도시의 부인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아. 그녀의 때 묻고 기워진 파란색 치마와 재킷조차도 날씨와 바람과 햇볕을 받아 가장 섬세하게 아름다운 색을 하고 있지. 이 여인이 도시 여인의 옷을 입는다면, 그 진정한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릴 거야.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뉘넨. 1885년 4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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