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린나 Aug 09. 2018

만화로 보는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시대(2)


만화로 보는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시대(2)


전편에서 언급했듯, 남아공 인종차별정책은 단순히 생활상의 차별을 넘어 '분리'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관련한 일련의 조치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의 정당한 의사 절차를 통해 추진되어간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차근차근히.


그중 하나의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결혼금지법이다. 영문 법안명은 Prohibition of Mixed Marrages Act. 제대로 번역하면 혼혼(混婚)금지법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법은 이름처럼 백인(Europeans)과 非백인(Non-Europeans)간의 결혼을 금지한다.


왜 이런 법을 만들었을까? 흑인을 떼어버리고 백인만의 남아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다문화가정은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뒤에 다룰 Group Areas Act(집단거주지법)에서는 인종별로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을 정하는데, 백인과 흑인이 결혼해서 컬러드(혼혈) 자식을 낳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남아공은 대외적으로는 서구권에 속한 영연방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서슬 퍼런 아파르트헤이트 레짐이었다 하더라도 나라에서 인정한 가족을 생이별시키는 데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 애초에 가족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방법을 찾아버렸나 보다

..

이 법을 위반한 사람은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징역형은 아니고 벌금형이긴 한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에서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가족이 아니므로 집단거주지법에 의해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관련한 흥미로운 실제 사례가 있다. 영화「Skin(2008)」에서도 소개된 산드라 랭(Sandra Laing)의 사례이다. 백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산드라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피부색이 짙었고 머리도 곱슬이었다. 백인의 자식이므로 당연히 백인 학교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신체적 특징들이 더욱 도드라졌다. 급기야 다른 백인 학생들의 부모가 항의하기 시작한다. 유명한 인종 확인 방법인 "머리카락에 연필 꽂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연필이 머리카락에서 탈출하지 못하여) 쫓겨나게 된다. 백인 아버지는 딸의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지지부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혼혈인들의 학교로 들어간다. 거기서 만나는 친구들은 혼혈인 아니면 흑인이었므로 자연스럽게 그녀는 유색인종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는 흑인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백인임을 부정당했으므로 그 결혼은 유효한 것이었다. 다만 부모님은 결사반대하여 딸과 연을 끊었고,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후에도 딸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 세대까지 전부 백인이었던 산드라 랭의 가족. 알고 보니 그 먼 옛날에 한번 혼혈의 역사가 끼어있었다. 많은 세대를 거치며 사라진 줄 알았던 흑인 할머니의 유전자가 우연히도 산드라 랭에게서 발현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법 제정 당시만 해도 전체 신혼부부 중 백인-비백인 부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0.23%에 불과했다고 한다. 1만 쌍 중 23쌍, 46명이다. 다른 정책들에 비해 희생자가 적은 분야이다. 그리고 산드라 랭의 사례에서 보듯이 법이 아니었어도 관습적으로 이미 흑백간의 결혼은 금기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법으로 인해 큰 반발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결혼금지법은 다른 아파르트헤이트 법안들을 지탱해주는 하나의 기둥으로 작동했다.


이 법은 외국에서 혼인하고 들어오는 편법을 금지하기 위해 한번 개정되었다가 1985년에 폐지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