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거주지법
지난 편에 살펴본 결혼금지법, 배덕법에 의해 마리카케와 음대린나 가족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는 지경으로 내몰려졌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그래도 꿋꿋하게 가족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카케린나 부부.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올 거라 믿으며 가족이 아닌 척 함께 지내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는 그렇게 허술한 것이 아니었으니...
인구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과 집단거주지법(Group Areas Act)에 의해 '정부 인증'을 받지 않은 다문화 가정이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구체적으로 인구등록법은 사실상 '인종'등록법인데, 개개인별로 백인, 흑인, 혼혈 3가지 분류(나중에 인도가 추가)하고, 이 공식적인 인종에 따라 집단거주지법에서 거주지를 지정한다. 사례에서는 엄마는 백인, 아빠는 흑인, 아이들은 혼혈로 모두 다른 인종이 되어 같이 살 수 있는 곳이 없어진다.
집단거주지법은 인종간의 균형적인 발전이나 (혼혈에 따른) 질병 방지 따위의 명분을 가지고 제정되었으나 실상은 남아공에서의 백인 우월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디스트릭트 식스 편에서도 잠시 다루었듯이, 소위 돈 되는 알짜배기 노른자 땅은 공교롭게도 모두 백인 전용이 되었다.
위 지도는 이 법이 적용된 후의 케이프타운 인구(인종) 분포를 보여준다. (인구가 가장 적은) 백인의 전용 구역이 훨씬 넓은 모습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오늘날에도 이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다. 케이프타운 안에서도 오늘날 유명 관광지가 된 지역("와, 여기는 그냥 유럽이네." 싶은 지역)은 이 백인 구역을 따라 퍼져 있다. 반면에 케이프타운 공항 주변에는 도로를 따라 쓰러져가는 판자촌이 늘어서있다. 위 지도에서의 흑인 지역인 Nyanga 이다.
한편 지도에서 보듯이 백인들이 흑인을 멀리멀리 쫓아내지는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광산, 공장 등의 산업에서부터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에 이르기까지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하는 데에는 값싼 흑인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 전체에서 흑인을 모조리 쫓아낸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은 백인이 다 가져가되 거기서 일할만큼의 흑인 노동자들은 변두리 버려진 땅에서 살 수 있게 했다. 그에 따라 백인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쿼터를 두어 흑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법에 의해 인종별 지역 할당을 선포할 권한과 강제 퇴거 권한이 정부에 부여되었다. 특정 인종 전용 지역으로 선포되면 적용까지 1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진다. 이 안에 다른 인종의 기존 거주민은 모든 부동산과 소유권을 처분하고 자기 피부 색깔에 맞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알박기족은 강제 퇴거될뿐더러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된다.
대표적인 강제퇴거 사건으로는 케이프타운의 디스트릭트 식스와 요하네스버그의 소피아타운이 있다. 이 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참가자들은 같은 시기에 통과된 반공법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로 규정되어 탄압받았다. 이런 무력 탄압으로 인해 시위들은 때때로 유혈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넬슨 만델라가 무장 투쟁 노선을 선택하게 된다.
이 법은 1991년에 폐지되었지만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 첫째로 케이프타운의 경우에서 보듯 현재의 빈부격차 지도와 인종 분포 지도가 예전의 인종별 전용 지역 지도와 겹친다. 법은 없어졌지만 경제적인 장벽에 의해 인종별 분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둘째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흑인 출입 금지였던 대도시의 도심(요하네스버그, 더반 등) 지역은 집단거주지법 철폐와 함께 슬럼화 되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남아공 치안과 관련된 도시전설들이 바로 이렇게 슬럼화 되어버린 도심에서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만화로 돌아가.. 결국 카케린나 가족은 서로 가족이라 불러서도 안되고, 몰래 같이 살아서도 안된다. 나라가 분단된 것도 아닌데 이산가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