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Dec 06. 2023

여고 동창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언제였을까. 학창 시절, 그중에서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대학교는 물론 아닌 , 여고시절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소녀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고 그렇다고 숙녀 반열에 오르기는 한참 모자라는 '학생'이라는 호칭이 가장 무난한  여고 시절, 지금처럼 고3병이라는 신종어가 없었던 걸 보면 학교 공부에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비밀 아닌 비밀을 이야기하며 깔깔대며 웃던  우리들, 엄격한 학교 규칙을 피해 오르내리던 치맛단과 머리길이가 유일한 일탈이었다, 라디 심야방송을 통해 디스코 음악과 팝송을 즐겨 들으며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우리들의 꿈은 오직 하나 현. 모. 양. 처였다. 


모두 하나같이 꿈을 이룬 단발머리 여고동창생들이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어 만났다.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친구가 고국을 방문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친구들의 전화번호는 모두 바뀌어서 찾을 수가 없다가 한 친구와 연결되어 소식이 닿았다.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만난 우리들, 그중에는 무려 졸업 후에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다.


"네가 누구였더라"


친구의 얼굴조차 서로 일아보지 못할 만큼의 세월이었지만 잠시 후 세월 속에 감춰져 있던 얼굴이 새록새록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여고시절의 모습이었다. 깊은 바닷속에서 유물을 건져내 듯 우리의 보물 같은 추억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학창 시절의 추억등. 대화가 잔잔하게 이어진다.  


친구들 중 몇 명은 아쉽게도 일찍 자리를 일어서야 한단다. 손주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 할머니들은 아직도 육아가 끝나지 않고 있다. 어쩌랴  우리의 꿈이 현모양처였으니 이 또한 꿈을 이루는 일인 것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가 2불짜리 지폐를 두 장씩 꺼내 선물한다. 웬 돈을? 의아했지만 미국에서는  2불짜리 지폐 구하기가 어려위서 그걸  지갑 안에 소지하면 복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2불짜리 미국지폐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친구는 우리 모두에게 늘 지갑을 채우고 살라는 복을 선물했다.

처음 이민을 갔을때와 달리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모국이 발전한 덕을 톡톡히 보고 산다며 든든한 친정을 가진 딸같은 표정을 짓는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며 같은 문화를 접하고 산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어도 서로 통한다. 하물며 같은 교실에서 3년이란 시간 동안 미래를 꿈꾸며 함께 지낸  여고동창생들은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다. 지금껀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살면서 잊고 살았던 우리들의 이름이  오늘은 원 없이 불리어 지고 있다.


여고동창생이라는 말 만으로도 싱그럽다. 처음 만났을때 느꼈던 세월의 흔적은 어느새 다 지워져버리고 우리는 모두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 연어처럼 지금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다.


왠지 이 카페를 나서면  흰머리 하얀 할머니로 되돌아가게 될 것 같아 오래오래 자리에 머무른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챈 듯 카페주인은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준다.


치~~ 즈 아니 김~~ 치


사진 속에 단발머리 여고생들이 웃고 있다.  모두  이 마법같은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표정들이다.

마음만은 그때 그 시절 여고동창생





이전 03화 무 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