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Feb 21. 2024

 졸업이 졸업에게

 ㅡ

~오랫동안 정들었던 나의 학교야

선생님 저희들은 떠나갑니다~


어떤 가사든 '올드랭 싸인'의 곡에 붙여 부르면 슬픈 노래가 된. 하물며 졸업가가 올드 랭 싸인이라니 이건 작심하고 아이들을 울려보겠다는 뜻 아닌가,  넓은 강당 안에 졸업가가 울려 퍼지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물도 하품처럼 남 울면 따라 우는 '우드로우' 효과가 있어  졸업식장 안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다.


반세기도 훨씬 전 우리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눈물 콧물로 시작했고 마무리는 으레 조촐한 자장면이었지만 만찬처럼 즐기며 마쳤다.


며칠 전 손녀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었다. 전후세대에 태어난 우리들 졸업식장이 이별의 무대였다면 MZ세대들의 졸업식장은 축제의 장소였다.


미리 나눠 준 졸업가운을 입고 있어선지 아이들이 모두 근엄해 보인다.

교장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 졸업장을 학생들 손에 쥐어 주었다. 학교를 빛낸 공로상이라든지 모범상 따위는 없었다 모두 평등하게 졸업장과 함께 부상으로 준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교장선생님의 말씀도 짧고 경쾌했다. 졸업 후 각각 흩어져 종학생이 되는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었고 늘 든든한 응원자가 되겠다고 하셨다.  기독교 재단학교인지라 목사님의 축사도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며

"Don 't give up"을 외쳤다.


아이들의 표정은 밝고 명랑하다. 오히려 일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담임 선생님이 더 서운해하셨다.


여기 빛나는 졸업장을 받고 서운한 한 사람이 있다. 교직에 몸 담고 있다가 은퇴하고 나서 곧바로 손녀의 육아에 합류한 남편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와 하교를 책임졌다.  


자동차에 손녀를 태우고 등 하교를 전담하면서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은퇴자들이 대부분 느낀다는 은퇴 이후의 공허한 삶을 느끼지  못했던 건 할 일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손녀아이의 졸업은  남편에게 제2의 은퇴를 안겨 준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옆에서 잠을 자던 남편은 벌써 일어나서 딸네집으로 출근을 한 뒤였다. 엄마 아빠의 출근시간보다 더 늦게 등교하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아이 주변의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아파트 경비원들도 매일 같은 시간에 성실하게 방문하는 남편에게 호의적이었고 아이의 친구들도 제 할아버지인 양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오늘은 아이의 졸업식이기도 하지만 남편에게는 일상의 루틴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기도 하다.


기분이 묘하다 서운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도 않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든든한 반면 곁에서 한발 멀어지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마 남편은 나보다 더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함께 등 하교 길을 오고 가며 또 다른 우정을 쌓았던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내민 카드를 보고 가족 모두 빵 터졌다.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준 건 '운전상'이라고 적은 일종의 감사패였다.


'위 사람은 ZH를 위해 매일매일 운전하여 안전하게 학교에 데려다주셨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할아버지가 받은 최고의 상

 

이보다 더 큰 상이 있을까?  

                                

삶의 한 과정을 무사히 지나고 또다시 새로운 삶을 맞이하면서 졸업은 마침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한 말을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오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두 명의 졸업생을 위하여 성대한 자장면 파티를 했다.


이전 11화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